세가지 색 : 기획, 출연, 분류

by 윤동규

콘텐츠엔 기본적으로 세가지로 나뉘어집니다. 편의상 기획자, 출연자, 큐레이터로 분류하겠습니다.


1. 기획


기획자는 콘텐츠를 연출하는 사람입니다. 탤런트가 좋다면 기획자가 출연자를 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일단 두개 이상을 겸하는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어떤 것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 만들어진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기획과 촬영, 편집으로 놓을 수 있어요. 이 포지션이 방송으로 치면 PD와 작가에 해당하고, 광고나 뮤직비디오로 치면 CD와 감독의 포지션입니다. 하지만 유튜브, 나아가서 숏폼 콘텐츠로 이어지면서 구분의 의미가 얕아집니다. 말하자면 "굳이 작가가 필요해?", "굳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필요해?"의 경우가 늘어나요. 이거 어차피 티비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극장에 걸리는 것도 아닌데 라는 말을 덧붙여서요.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섞여 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합쳐서 만들던 영화나 방송, 광고보다 이것 저것 다양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해지는거죠. 기존의 큰 파이 하나를 여럿이서 나눠 먹은게, 작은 파이를 수십개를 1인당 하나씩 나눠 먹는 꼴이 되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파이의 크기만 줄어들면 다행이지만, 맛도 모양도 건강도 형편없었어요. 무엇보다 투자 대비 성과의 불확실성이 큽니다. 전문가 모아서 힘을 주어 만들었다고 해서 조회수 높은거 아니고, 구독자 느는거 아니에요. 방송도 마찬가지라고 하기엔, 방송은 편성 팀이 따로 있고. 애초에 방송국이라는 곳이 있잖아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멀티 플레이어가 부상하기 시작합니다. 어른신들의 기술 배워라, 기술 배워라는 최소한 콘텐츠에는 통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기술을 배운다면. 하나만 죽어라 파기보단 이것 저것 다 건드려야 오래 갈 수 있습니다. 예전엔 큰 무대에 올라서기 위해 런어웨이만 갈고 닦는 모델들이. 지금은 직접 무대를 만들어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그 모델 이야기로 넘어갑시다.


2. 출연


출연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 선상에 놓고 볼 수 없는 오리지널을 갖춥니다. 흔히 말하는 탤런트나 마스크, 핏, 목소리, 나이나 성별 등 연출자가 제 아무리 멀티 플레이어라고 해도 출연자를 겸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디 앨런이 제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풋풋한 젊은이들의 사랑을 그리고 싶다면 엘르 패닝과 티모시 샬라메를 캐스팅해야 하는 것 처럼요. 하지만 우디 앨런은 데뷔작부터 수십편이 넘는 작품에 직접 출연했습니다. 어찌 보면 가장 이상적인 멀티 플레이어는, 연출자가 직접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밴 스틸러나 보 번햄, 타이카 와이티티나 앤디 샘버그 같은 경우가 떠오릅니다. 앤디 샘버그나 우디 앨런,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 보 번햄이 그렇듯. 코메디언의 경우 출연과 연출을 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왜 그럴까요?


저는 코메디언도 배우도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아는 척 해보자면. 결국 웃음이야말로 가장 높은 가치의 감정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사람을 웃기는건 쉬울지도 모릅니다. 어 나 저번 술자리에서 엄청 웃겼는데? 그렇지만 상황을 조금만 비틀어봐도 쉽지가 않아요. 그 술자리에 아무도 술에 취하지 않았고. 모두 처음 보는 사람인데, 그들은 팔짱을 낀 채 당신을 "어서 웃겨봐"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 술 없는 술자리엔 다들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왔으며, 큰 웃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보란듯이 웃겨버리는 존재가 코메디언입니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아서 플렉이 되고 말거에요.


그러니 코메디언이 가지는 능력을 분석하는게 곧 연출자가 출연자를 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코메디는 필수적으로 타이밍의 싸움입니다. 같은 농담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면, 그것은 타이밍의 문제인 경우가 절반입니다. 운 좋게 얻어걸린게 아니라면, 코메디가 통하는 타이밍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편집 리듬감과 닿아 있습니다. 좋은 코메디언은 컷이 언제 넘어갈때가 더 웃긴지를 이미 체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웃음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에 목적이 있기에, 꼭 경박한 웃음만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그 웃음은 때론 강아지와의 행복한 시간이며, 연인과의 코코아 한잔이 됩니다. 자유자재로 웃길 수 있다는 것은 곧, 관객의 감정을 원하는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고. 연출자에게 그보다 더 필요한 능력이 있을까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출연자는 꼭 코메디언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춤을 좀 잘 추거나, 혹은 메이크업을 잘 하거나. 옷을 잘 입거나, 여행이나 캠핑을 즐기거나 IT 기기를 잘 다루거나, 뭔가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능력을 갖춘 모든 사람들이 출연자에 속합니다. 출연자는 단지 자신이 잘 하는 행동을 늘어놓기만 해도 사랑을 받습니다. 이 점이 연출자와 조금 다른 부분입니다. 차은우가 카메라 보고 한시간 동안 떠들기만 해도 수십명이 몇달을 고생해서 만든 영화보다 재밌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콘텐츠의 힘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출연자가 단지 잘 생겨서, 춤을 잘 춰서, 옷을 잘 입어서 보는 영상이라면 그것은 클립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비하하는게 아닙니다. 그걸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집니다. 하지만 강원도 정선군에 잘생긴 청년 보다는, "킬러들의 수다에 걔"가, "TOP의 걔"가 더 원빈을 말해주지 않나요.


출연자로서의 탤런트가 없는 연출자로서 감히 조언을 드립니다. 연출자가 출연자가 되는 길은 어렵습니다. 노력으로 잘생겨지거나, 없던 끼가 생기거나 목소리가 하루 아침에 바뀌거나 할 수는 없어요. 거기에 쏟을 노력을 출연자를 섭외하는 것으로 대신하는게 연출자입니다. 하지만 출연자는 달라요. 여러분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보여주는 방업을 고민하셔야 해요. 그 휴대폰 대충 세워놓고 유행하는 노래 유행하는 필터 씌우고 재능 낭비하지 마시구요. 어떻게 하면 나를 제일 효과적으로 보여줄지를 고민해주세요. 하루에도 다섯개가 넘는 오디션장을 돌아다니며, '감독님이 언제 날 불러주실까'고민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누구나 감독이 될 수 있다면, 이왕이면 잘 생기고 예쁜 감독이 유리한 세계입니다.


3. 분류


이야기가 조금 난방향으로 펼쳐지고 있는 와중에. 마지막으로 큐레이터입니다. 이 계열은 어찌보면 신종 포지션이 아닐까 해요. 왜냐면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아무리 콘텐츠가 많아도, 자기 방송사의 콘텐츠. 협업이 약속된 콘텐츠. 저작권이 클리어 된 콘텐츠만 소개할 수 있었고, 큐레이션의 취향도 개인적일 수 없었으니까요. SBS에서 KBS 언급할때 K본부라고 부르던 시절, 기억 나시나요? 아직도 배텐에서 유튜브를 땡튜브라 부르고 있지만, 더이상 다른 콘텐츠들을 건드려선 안될 금단의 영역으로 보는 시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야흐로 대 통합의 시대에, <어떻게든 널리 퍼지기만 하면 장땡>의 마인드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이기에 비로서 빛날 수 있는 큐레이터의 포지션이죠.


먼저 최악의 케이스부터 소개하자면, 사이버 렉카가 있겠습니다. 어디 어디에서 이슈가 되는 사건이 있다 싶으면, 영상 그대로 가져와서 앞 뒤로 뿌슝 빠슝 넣고 병신 TV에 올려서 달달한 조회수 맛 보는 경우. 처음에 저는 이 경우는 큐레이션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취향이나 전문적인 지식 없이, 무작위로 이슈가 되는걸 퍼오는 행위니까요. 하지만 "어떻게 저렇게 병신같은 것만 퍼오지..."싶은 생각이 쌓이다보니, 병신 같은 취향을 가진 큐레이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분석해봅시다. 사이버 렉카는 3가지가 없습니다. 카테고리, 디스플레이, 브랜딩. 사실 브랜딩이 다른걸 다 포함하긴 하지만, 그래도 세가지로 늘려서 말하고 싶었다구요.


먼저 카테고리입니다. 나는 어떤 것을 모으는 사람인지가 없습니다. 차라리 시원하게 사이버 렉카답게 최신 뉴스만 퍼오던가요. 철 지난 떡밥이나 쓸모 없는 정보, 치사량 넘는 국뽕 콘텐츠 등등 조회수만 놓으면 상관 없다 식의 작품 선정은 카테고리라 부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영화, 음악, 만화 등 대분류로만 구분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요. 그것은 마치 미술관에 뭘 전시할거냔 물음에 "미술"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미술인지를 선정하는 것.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이며, 동시에 출발선과 같습니다.


다음은 디스플레이입니다. 미술품의 경우, 전시 작품이 벽에 걸릴지 바닥에 깔릴지 모니터에 슬라이드 쇼로 나올지, 작품을 어떻게 보여주냐를 고민합니다. 영상 콘텐츠에 영상을 담는 경우, 편집이 이에 해당할지도 모릅니다. 음악을 큐레이팅 하고 싶다면 아티스트와 곡 제목, 혹은 가사를 어떻게 배치할지. 영화라면 어떤 장면을 어떻게 잘라서 보여줄지. 어쨌거나 목표는 그 작품을 보고 싶게끔 하는거 아니겠습니까. 도슨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괜히 큰 전시일수록 배우들 목소리로 녹음하는게 아니에요. 목소리도, 음질도, 대본도 신경써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냥 대충 인기 있는 작품 갖다 퍼와서 보여준다고 끝이 아니에요. 그걸로 끝난 것들도 조회수 달달한 경우 많긴 하지만... 이건 그딴걸 봐주는 우리의 문제구요.


마지막으론 브랜딩입니다. 출연자와 연출자는 그들의 얼굴이나 작업만으로 브랜딩을 대신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브랜딩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경우는 드물어요. 난 어떤 사람인가. 나에 대해서 끝 없이 고민하는 부류입니다. 하지만 큐레이터는 나를 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제가 편의상 큐레이터 큐레이터 거리고 있지만, 사실 콘텐츠 큐레이터는 전문직 큐레이터와는 완전히 다르니까요. 자신의 취향을 숨길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공영 방송도 아니고, 좋아하는 취향을 마음껏 보여주세요. 가끔 흥분한 목소리로 찬사를 내비치거나, 무언가는 경멸해봐요. 큐레이터는 얼핏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는 직업 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말로 훌륭한 큐레이터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가 훌륭하다는 보장은 없어요. 오히려 뜯어 말리면 말렸겠지요. 하지만 시대는 점점 취향이 무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없는 사람이라면, 나를 대신해줄 이야기를 모아봅시다.


자 참으로 길고 긴 시간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시간 넘게 글을 써본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제가 내뱉는 모든 말이 그렇지만, 이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헛점이 많아요, 큐레이터라는 직업 자체도 그렇고(글 말미에 생각난건데, 사서 라는 표현이 더 맞지 않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적어도 2022년 5월 6일 금요일 오전 11시 56분의 윤동규는 이게 맞다고 생각하고 쓴 글이니까. 시간 좀 지나서 읽어보고 창피하면 뭐 어때요. 창피한 만큼 시야가 넓어진거일지도 모르니까. 같이 넓어졌으면 해서 올려봅니다. 마음 한켠에선 '그래도 나 분석 잘 했지?'라고 자랑하고 싶은거도 있어요. 자 참지 말고 마음껏 칭찬해주세요. 야 너 좀 예리하다? 별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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