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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넬의 서재 Jun 23. 2021

플라스틱이 사실 환경을 살린다고?

[서평]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마이클 셸런버거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Apocalypse Never)  by 마이클 셸런버거 (Michael Shellenberger) 




이 책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환경주의는 결국 다 돈싸움이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은 그동안 사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상식을 뒤엎는 책이다. 


책 추천사를 써준 인사들 목록만 봐도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와이어드의 대형 언론사는 기본, 스티븐 핑커, 조너선 하이트 등의 아이비리그 유명 교수진들까지 찬사를 아끼지 않은 곳이 없어보인다. 사실 추천사야 마케팅의 일부이니 저 정도 사회적 지위를 지닌 환경운동가가 쓴 책이라고 하니 써줄만 했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러나 이런 자본주의에 무뎌진 사고가 얼마나 마이클 셸런버거의 진심에 실례되는 생각이었는지 앉은 자리에서 600쪽 가까이 다 되는 책을 다 읽고서야 알 수 있었다. 


종말론적 환경주의자들이 오히려 지구를 망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항적인 부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목차부터가 읽은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내용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믿어온 상식과는 다르게 셸런버거는 환경보호 관련 파격적인 주장들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그 중 일부 주장들을 펼쳐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지구의 허파는 불타고 있지 않다 

-플라스틱 탓은 이제 그만하자

-저임금 노동이 자연을 구한다 

-지구를 지키는 원자력 

-신재생 에너지가 자연을 파괴한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세뇌되어온 환경과 관련된 이미지는 제법 한결같다.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열대우림이 불타고 있어, 아마존이 사라지면 세계 산소를 책임지는 곳이 사라진다.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때문에 해양생물들이 고통받고 있으니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 

-나이키, H&M 등 대형 브랜드들이 저소득층 나라에 공장을 지어 노동을 착취하며 자연도 파괴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는 핵무기 발전의 근본으로 기형아 및 저능아를 출산하는 어마무시한 사라져야할 대상이다. 

-신재생 에너지 사용을 적극 권장하여 더이상의 자연파괴를 막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등의 스토리가 그러하다. 


놀랍게도, 셸런버거에 의하면 이 모든 '사실'들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러한 우리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들이 거짓일 뿐만 아니라, 정 반대로 자연을 해한다고 믿었던 행위 중 오히려 자연에 도움을 주는 행위가 대다수였다. 이미 머릿속에 고착된 환경에 대한 편견 때문에 그의 주장들이 말도 안되는 것이라 할 수 있었지만, 그러기에 셸런버거의 주장들은 너무나도 탄탄했고 또 사실에 근거한 내용들이었다. 


그 중 어떤 주장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쉽게 반박이 되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이런 거짓말에 홀라당 속아 넘어가버렸을까 싶을 정도였다. 환경보호를 앞세워 대단한 도덕적 정의을 하는 것마냥 위장하고, 뒤로는 자신들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과 종말론적 환경주의가들의 복잡한 돈 관계가 얽혀서 만들어낸 스토리텔링의 결과였다. 


일례로,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이 불타고 있다는 말은 아예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딸랑 한 문단으로 반박을 해버린다. 아마존이 생산하는 산소가 많은 건 맞지만 호흡하는 과정에서 산소를 다시 빨아들여, 아마존 '생태계' 전체를 놓고 볼 때 아마존이 세계 산소에 기여하는 양은 사실상 제로라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은 아마존 열대우림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의 참견까지 받으며 삼림 개간을 저지당했다. 그로 인해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에 사는 농민들은 농경을 늘려 경제적 상황을 개선시킬 수 없었고, 이로 인해 국가 경제력이 뒤쳐지는 것 또한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삼림 파괴가 심해지고 보존 가치가 높은 생물종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종말론적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아마존이 지구의 허파로써 조금이라도 소실되면 지구가 종말한다는 주장은 당장 그 지역에 사는 브라질 원주민들과 브라질의 국력을 해치는 일이었다. 이미 선진국들은 산림이고 바다고 할 것 없이 자연을 뒤엎어가며 산업발전을 이뤄놓고, 아직 개발 중인 국가들에게는 극단적인 자연보호 주장을 펼쳐나가며 한 나라의 성장 자체를 억제하고 있었다. 선진국적 사고만을 대입하여 당장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지 않으면 먹고 살 길이 없는 사람들에게 대의를 위한 지구환경을 보호해야하니 땅을 개간하지 말라는 주장이 씨알이나 먹힐까? 결국 이는 근거없는 위험을 부풀려 이미 배부른 사람들이 아직 배고픈 사람들에게 어째서 더 큰 희생을 하지 못하냐고 핀잔을 주는 꼴밖에 면하지 못한다. 


쁜만 아니라, 그는 플라스틱의 사용이 오히려 해양 생태계를 돕는다는 언뜻 바로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도 펼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연'을 사용하는 것은 좋고, '인위적'인 것을 사용하는 건 나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사탕수수로 만들어지는 '바이오플라스틱'을 예로 들어보자. 단순히 '바이오'라는 말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환경에 덜 유해한 제품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실상은 이런 바이오 플라스틱의 생애 주기를 살펴보면 분해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온실가스인 메탄을 화석 연료 기반 플라스틱보다 더 많이 배출한다. 이렇듯 바이오 플라스틱은 분해되며 일반 플라스틱을 매립할 때보다 더 많은 대기 오염 물질을 발생시킨다. 더군다나 바이오 플라스틱은 작물을 원료로 하여, 그 작물을 재배하는 땅까지 필요하다. 반면, 일반 플라스틱은 석유나 가스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추가 농경지나 삼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즉, 환경을 지키고 싶다면 자연물을 사용할 게 아니라, 인공물로 대체하는게 오히려 환경 보호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 중요한 역설은 지금까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펼쳐왔던 주장들이 얼마나 환경에 더 해가 되었는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셸런버그의 주장 중, 가장 도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그의 원자력 옹호이다. 그는 원자력 에너지가 어떻게 핵무기와 연관된 환경파괴적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정치적 배후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더 나아가, 원자력은 사실 정치적으로 악용된 이미지와는 다르게 인류를 위협할 정도로 위험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대단히 싸고 안전하고 효율 높은 에너지원"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자연 보호의 희망"이라고까지 부르는 원자력은 사실 연료의 에너지 밀도가 대단히 높아 그 비용 대비 효율적 측면에서 따라올 자가 없다고 한다. 겨우 코카콜라 캔 하나 분량의 우라늄만 있으면 한 사람이 평생 쓰고 남을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설령 최악의 원자력 사고가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는 미세 물질의 양은 매우 적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점들을 들어 그는 원자력 발전소를 없애고 화석 연료 발전소를 늘리는 것은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지불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셸런버그의 상식을 뒤집는 듯한 발언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가 사실 그동안 얼마나 기업적, 정치적 이윤추구를 위한 스토리텔링에 속아왔는지를 자각하게 된다. 우리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북극곰 멸종과 지구온난화 이미지를 머릿속에 각인하게 된 것도, 아프리카 등 저소득층 국가에 인프라와 공장을 지어 환경을 파괴하고 노동력 착취를 하고 있다고 믿게 된 것도 사실은 모두 자극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한 사적이윤추구를 위한 일이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다달아 그는 환경주의자와 친환경 사업의 겉과 속을 고발하며, 어떻게 힘 있는 자들은 항상 가장 좋은 해결책에 반대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 속에 가두어 두려고 하고 있는지를 까발린다. 사실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른 환경 보호법은 세계 최고 극빈층을 상대로 한 신재생 에너지 실험에 불과하지 않으며,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이들이 아직 사다리 아래 있는 나라들이 경제 성장을 이루게 하지 못하는 치사한 수법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결국, 위선으로 일군 환경 보호 운동을 내세워 우리는 가짜 환경 보호 종교와 환경 신을 만들어 숭배를 해온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금방이라도 지구가 종말할 것 같은 자극적인 종말론적 환경주의를 내세워 자연을 보호하기는 커녕, 파괴을 부추기고 저소득국가의 국가 성장을 방해하면서 말이다. 셸런버그는 이런 극단적 기후 종말론을 설파하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절망의 문화"를 퍼뜨려 영웅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심리가 자연에 전이된 것이라고도 본다. 사실 도덕성에는 "객관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임의로 절망을 탄생시키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주장에 따라 선과 악을 나눠버려 불멸에 도달한 듯한 느낌을 심어주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가 앞으로도 몇세기 더 살아갈 지구를 생각한다면 우리들의 행위가 자연에 도움이되는가, 그리고 또 인류를 번영케 하는가 이 두 가지만이 잣대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사람들이 자연을 보호하는 가장 간단명료한 이유는, 그 어떤 과학적 이유에서도,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아닌 단순히 우리가 동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라고 그는 이야기를 맺고 있다. 


책을 덮고 난뒤, 마이클 셸런버그가 과연 20여년 가까이 쌓아온 커리어와 자신의 평판없이 이 책을 출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가 하는 주장들은 정말로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었던 내용들과 정반대되는 내용이 대부분이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환경주의라는 가면 뒤에 얽힌 수많은 거래적 관계와 돈줄의 흐름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그의 신분과 평판상에도 대단히 위험한 일이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쓴 그의 용기와 또 자연을 향한 진심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세상에는 선량함을 가장한 위선이 너무 많아 사실 환경주의가 정치적인 수단에 불과했다는 점이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말로 이러한 행위들로 인해 몇 십억 인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지구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이 염려스러웠다. 만약 셸런버그의 주장들이 한치의 오차없이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자연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나가야 하는지 또 고민해보는 것이 앞으로 살아갈 자들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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