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이야기 #3 - 이탈리아 편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머리를 짧게 자른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앉았던 스페인 계단을 찾았다. 영화 속의 날씨를 기대했지만 우리가 로마에 머무는 동안에는 스산한 늦가을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하늘은 곧 비가 내릴 것처럼 잔뜩 흐려있다가 가로등이 켜지는 시간에 맞추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비와 함께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고 스페인 계단을 찾은 사람들의 손에는 색색의 우산이 하나씩 들리기 시작했다.
여행자들은 오드리 헵번처럼 계단 아래에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람들 틈을 이리저리 피해서 계단 제일 꼭대기까지 단숨에 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검게 젖어가는 바닥과 대비되는 색색의 우산을 구경하고 있을 때에 계단참에 있는 배수구가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 살펴보았다.
빗물이 흘러나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배수구였다.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자리에 구멍이 뚫려있고 그 위를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별이 자리하고 있었다. 조각을 따로 만들어 붙여두지 않았다.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배수구 뚜껑이었다. 나란히 놓여있는 배수구를 가까이 살펴보니 모두 상해있었고 제 모습을 갖춘 건 하나뿐이었다. 계단의 난간을 장식한 대리석의 색과 비슷한 질감으로 미루어볼 때 애초에 함께 만들어 둔 것 같았다.
계단 아래에서는 이 배수구가 보이지 않는다. 계단을 올라야만 비로소 배수구를 볼 수 있게 된다. 바닥을 봐야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이 아닌 드러나지 않는 곳에 놓여있는 배수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내 마음 깊숙한 어느 곳에 배수구가 숨어있는지 아직도 찾지 못했다. 어쩌면 스페인 계단 중간에 만들어진 배수구처럼 내 마음의 바닥이 아닌 곳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존하는 돔 중에 가장 큰 돔을 머리에 이고 있는 건축물인 판테온을 찾았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돔 제일 꼭대기에 뚫려있는 Oculus라고 부르는 구멍이었다. 지름이 9미터나 되는 커다란 구멍이 있었지만 돔이 거대한 탓일까. 그 구멍은 결코 커 보이지 않았다. 로마에 머무는 동안 좋은 날씨가 거의 없었기에 판테온을 찾았을 때에도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밖에서 내리는 비가 판테온 내부에는 거의 들이치지 않았다. 전혀는 아니었지만 옷이 젖을 만큼의 비가 내리는 바깥과는 달리 내부에는 비가 흩날리는 정도였다. 아주 적은 비라도 계속해서 내리면 바닥이 젖고 물이 고이게 되어있는 법. 분명 물이 빠져 가나는 곳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바닥을 살폈다. 내 생각이 맞았다. Oculus 바로 아래에는 괴물의 숨구멍 같은 타원형의 작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네 개의 구멍은 겨우 새끼손톱정도의 크기였다.
굴뚝효과라고 부르는 물리적인 현상 때문인 걸까.
내부의 데워진 공기는 상승기류를 만들고 이내 천정의 구멍으로 빠져나간다. 그 기압으로 외부의 공기는 아래로 들어올 수 없다. 밀어내는 공기의 힘 때문에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건물 안으로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Oculus는 판테온에서 제사를 지낼 때면 제물을 태울 때 나는 연기가 빠져나가는 구멍으로 만들어 둔 것이라고 한다. 물론 태양을 신성시하던 것처럼 태양을 형상화해서 만들어 두었을 거라는 추론도 있다.
그때에는 지속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불을 피웠기 때문에 내부의 온도 상승은 지금보다 더 높았을 거라고 추측해본다. 2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둥 하나 없이 벽과 돔 만으로 버티고 있는 이 건축물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모두를 뜻하는 판(Pan)과 신을 뜻하는 테온(Theon)처럼 바로 이런 곳이라야 신이 머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판테온에서도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곳이 아닌 위치에 배수구가 있었다.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계단을 올려보기만 했지 내려보지는 않았다. 사진은 올려보는 곳이라야 사진이 잘 나온다. 하지만 아래에서 볼 때에 배수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판테온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많이 머무는 커다란 구멍만 쳐다보았지 바닥의 배수구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스페인 계단과 판테온의 배수구처럼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은 아닐까. 아니 억지로 잊으려 애쓰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