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맨홀 뚜껑

바닥 이야기 #2 - 이탈리아 편

by 닐슨

“’S.P.Q.R’ 이게 뭐지?”

알파벳 순서대로라면 P.Q.R.S가 되어야 하는데 S가 맨 앞에 있네. 무언가 의미가 있는 것일까.

로마니까 제일 뒤의 R은 Roma의 앞글자로 추측할 수 있겠다. 그럼 나머지 글자는 뭐지.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하면서 내가 봤던 맨홀 뚜껑에는 S.P.Q.R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처음 발견한 맨홀 뚜껑뿐 아니라 로마 시내에서 발견한 거의 모든 맨홀에는 모두 똑같은 S.P.Q.R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의미이길래 모든 맨홀 뚜껑에 똑같은 글자가 적혀있을까.

사진을 먼저 찍고 길 한편으로 비켜서서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했다. 아주 쉽게 결과를 찾을 수 있었다.

로마_맨홀.JPG


S.P.Q.R은 Senatus Populusque Romanus의 줄임말이다.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말은 로마 공화정 시대, 바로 그때를 이르는 말이었다.

공화정이란 그 국가의 주권이 왕이나 황제에게 집중된 것이 아닌 시민을 대표하는 시민단체에게 그 권한이 있는 정치의 한 형태이다. 지금의 민주주의 국가와 비슷한 정치제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우리나라도 대한민국 공화국이듯 말이다. 북한도 스스로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하고 있지만 그 결은 전혀 다르다.


로마는 그 당시 사용하던 주화나 국가의 공식적인 문서 마지막 부분, 공공사업 등의 기념물에도 이 단어가 적혀있었다고 한다. 이 말은 지금도 이탈리아 수도인 로마의 공식적인 모토이며 도시의 문장이고 시내의 모든 공공시설물과 맨홀 뚜껑, 심지어는 분리수거용 쓰레기통에도 적혀있다. 즉, 로마의 모든 공공재에 적혀있다는 말이다.


로마가 기원전 510년 경에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 수립했으니 이 단어도 그즈음부터 생겨난 말로 짐작할 수 있겠다. 25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용어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니 한 시대를 풍미했던 로마 공화국의 영향력이 지금에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현재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수도 로마는 우리가 생각하는 도시의 개념보다 훨씬 넓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때의 제국 로마를 그리며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로마_맨홀2.JPG


서랍 깊숙이 넣어둔 연애편지처럼, 맨홀에 쓰여있는 글자 덕분에 나 혼자만 아는 소중한 비밀을 간직하게 된 것 같았다. 무심코 지나쳤다면 로마는 콜로세움이나 판테온 같은 고대 건축물이 많은 도시라고 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많은 여행자들처럼 말이다.


습관처럼 땅과 바닥을 보며 걷다가 발견한 알파벳 네 글자, 바로 그 글자가 로마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해 주었다. 조각난 채 기억하고 있는 역사를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낚싯줄처럼.

여행이란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알게 해 준다.

이렇게 여행의 즐거움을 또 하나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