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과 걸음걸이

바닥 이야기 #1 - 시작하며

by 닐슨

자신의 걷는 모습을 정확하게 들여다본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내 걷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은 없다. 통유리로 만들어진 빌딩이나 쇼윈도를 지날 때 유리에 비치는 모습을 곁눈질로 살피곤 하지만 걸음걸이에 대해서 자세히 관찰해 본 기억은 없다. 하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은 걸을 때 나의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다는 것이다.


길을 걸을 때 내 시선은 늘 바닥을 향해있다.

걸음걸이도 일종의 습관일까. 습관이라면 언제부터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던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거북목 증후군을 달고 살지만 시선을 아래로 두고 걷는 데에는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간혹 길에 떨어져 있는 동전이나 반짝이는 머리핀 따위를 주울 때도 있고, 심히 갈등을 일으키는 신용카드나 버스카드도 길을 걸으며 발견하는 것들 중 하나다.


걸음걸이가 그렇다 보니 평소보다 더 많이 걸어야 하는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의 엄청난 규모의 성당에서도 멋진 건물을 본 후의 내 시선은 늘 바닥을 향했다. 깔려있는 대리석의 모양을 관찰했고 성당 바닥에 묻혀있다는 무덤들의 관 뚜껑을 살펴본다. 규칙적인 타일이 깔려있다면 그 패턴을 이리저리 조합해보고 가로와 세로의 비율도 계산해본다. 성당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인지 내 나름대로 추측도 해보곤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디선가 맨홀 뚜껑을 보게 되었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찍은 맨홀 뚜껑이 어디인지, 어떻게 생겼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그때부터 여행에서는 반드시 남겨둬야 하는 나만의 사진 카테고리가 생긴 셈이다.


맨홀은 'manhole'이라는 영어를 그대로 차용해서 사용하는 말이다.

사람을 의미하는 'man'과 구멍을 뜻하는 'hole'로 되어있다. 즉, 사람 구멍이라는 뜻이다. 단어의 뜻처럼 당연히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제법 큰 구멍이다. 밖에서 보이지 않지만 지표면 아래 기다랗게 깔려있는 하수구에 출입하기 위해 지표에서부터 하수도까지 수직으로 뚫어놓은 구멍을 말한다. 우리가 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 맨홀을 덮어 놓은 맨홀 뚜껑일 뿐이다. 그 뚜껑을 열어야 진짜 맨홀을 구경할 수 있다.


요즘에는 전기나 도시가스, 통신선 등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지하세계도 있기 때문에 하수도뿐만이 아니라 뚫려있는 구멍과 그것을 덮어놓은 쇠로 만든 뚜껑을 통칭하는 말이 된 지 오래전이다.

이제 나에게 맨홀은 밟고 지나치는 쇳덩어리가 아닌 여행지의 또 다른 관심거리가 되었다.

이제 그 여행지에서 만난 맨홀과 바닥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을까 한다.


주) 사진은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의 "쿠밀(Cumil, 엿보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