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닐슨 May 17. 2021

엄마, 꼭 같이 가

조각 수필 #19

아내가 깰까 싶어 조심스레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방을 나와 어두운 거실의 TV 전원을 누르자 눈이 부셨다. 하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어떤 생각에서 시작된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출발점을 더듬어 봤다.

멀리서 희미하게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생각의 시작점을 찾았다. 




그날, 

구급차에서 내리는 아저씨가 하품하며 기지개를 켰었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어. 어제가 크리스마스였는데 나는 슬리퍼에 러닝셔츠 차림이었지. 추위를 느끼지도 못했었나 봐. 들것을 들고 어슬렁거리며 뒤따르는 구급대원 아저씨를 거의 끌다시피 해서 집으로 들어왔지. 엄마는 거실에 그대로 누워 있었어. 처음엔 엄마가 의식이 있었다고 생각해. 엄마 팔과 다리를 주무르면서 내 목소리가 들리면 팔을 움직여보라고 했는데 오른팔을 슬며시 움직였거든.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매일 아침에 엄마 옆에서 조간신문 헤드라인을 읽어주곤 했어. 엄마는 출근하기 전 커피믹스를 한 잔 마시며 내가 읽어주는 기사를 들은 다음에야 집을 나섰지. 그 시간이 엄마에겐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가지는 시간이었을지도 몰라. 출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잖아. 하지만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아들이 옆에서 신문을 읽어준다고 생각해봐. 그것만으로도 출근하는 이유가 생길 것 같지 않니. 하지만 그날 엄마는 제법 오랫동안 화장실에 있었고 내가 조심스레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땐 화장실 바닥에 누워있었어. 머리를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어. 이불로 엄마를 감싸고 거실로 끌고 나왔지. 엄청 무겁더라고. 축 쳐진 사람의 무게가 엄청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구급차 안에서 듣는 사이렌 소리는 더 크게 들렸어. 병원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신분증이랑 집 열쇠는 챙겼던 것 같아. 새벽시간에 응급실에 도착하니 의사와 간호사들이 거의 기계적으로 엄마에게 달려들었어. 짧은 시간이었지만 불빛을 보고 몰려드는 부나방 같다는 생각을 했어. 엄마의 몸에 수십 개의 바늘과 링거 호스, 전선들이 연결되더라고. 순식간이었어. 


그리고 엄마는 중환자실로 옮겨졌어. 의식이 없다고 했어. 하루에 두 번, 15분 정도 면회가 되었지. 매일같이 찾아가 엄마를 만났고, 조심스럽게 손을 잡았어. 말은 걸지 못했지. 입을 열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았거든. 마지막까지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못 했어. 아니, 아무런 말도 못 했지. 병원 지하에는 작은 성당이 있었어. 세상에서 제일 간절한 기도를 했지. 하지만 그 간절함이 하늘에까지 미치지 못했나 봐. 엄마는 다섯 명한테 새로운 생명을 주고 떠났어. 동생과 의논해서 결정한 일이야. 그게 벌써 20년도 더 넘었네. 그때는 장기기증이라는 말이 흔하지 않았나 봐.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엄마는 헌혈을 하고 싶어 했지만 한 번도 못했어. 무슨 수치가 부족해서 헌혈하면 안 되는 몸을 가지고 있었거든. 그런 엄마가 원을 풀 수 있게 장기기증을 하기로 했어. 각막 두 개, 신장 두 개, 그리고 췌장. 다섯 명 모두 잘살고 있기를 빌어. 


엄마의 장례식에 엄마가 있으면 참 좋아했겠다 싶었어. 정말 많은 사람이 모였거든. 내 친구들, 동생 친구들, 명절에도 보기 힘든 친척들 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떨어져 지내던 아버지도 오셨지. 장례식을 마치고 우리 집에 외가 친척들이 모였어. 그날은 다들 우리 집에서 잠을 잤던 것 같아. 나는 그때 술을 조금 과하게 마셨나 봐. 엄청나게 울었지. 장례를 치르는 동안 흐르지 않던 눈물이 그제야 터졌나 봐. 너무 외로웠거든.

나는 밖에서 있었던 일들을 엄마한테 이야기해주는 걸 좋아했어. 엄마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으면 그 옆에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고 성당 친구 이야기를 하곤 했지. 그런데 앞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엄마의 존재가 없다는 걸 그제야 느꼈던 것 같아. 그날 엄마를 땅에 묻으러 가는 길에 본 것들이 계속 생각나더라고. 이제 그 이야기도 들어줄 엄마가 없는 거지. 


“엄마, 오늘 엄마가 좋아하는 눈이 내렸어. 아주 조금 내린 눈에도 차가 미끄러지는 거 같더라고. 엄마도 운전할 때 항상 조심해야 해. 길 양쪽으로 논이랑 밭이 있는데 눈이 내리니까 참 예뻤어. 다음에 같이 가. 혹시 엄마 자라탕 먹어봤어? 가는 길에 그거 하는 집이 있더라고. 가게 이름이 무슨 자라탕이었는데 생각이 안 나네. 위치는 기억하니까 걱정하지 마. 몸에 좋은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 이 아직도 있나 봐. 가게가 엄청 커 보였어. 참, 좌회전해서 조금 더 올라가는 길에 청국장 파는 식당이 있더라고. 직접 콩을 띄워서 청국장을 만드나 봐. 된장찌개도 있다네. 거기도 한 번 가보자. 맛이 좋을 거 같아. 반찬도 정갈할 것 같고. 비싸지 않아 보였어. 꼭 같이 가. 응?” 





작가의 이전글 만남은 필연이 아니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