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수필 #20
나는 아직도 내가 처음으로 갖게 된 “나의 첫 책”을 가지고 있다.
많지 않은 책이 있는 책꽂이에 가장 오래된, 처음부터 내 것이었고 지금까지 온전한 내 소유의 책이다. 물론 이 책을 갖기 전에도 동화책이나 그림책은 여러 권 있었지만 꼬맹이들이 보는 책이 아닌 그림은 적고 글자가 많은 그럴듯한 모양의 책으로 한정한다면 바로 이 책이 나의 첫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주일학교 백일장에서 상품으로 받은 것이다.
제목은 “눈속에서 삼개월”. J. 폴셰가 지었고 구혜영이 옮겼다고 되어있다. 책 겉장을 들춰보면 붉은색으로 “상”이라는 도장과 “1980. 추계 백일장 대회 – 천주교 봉천동교회 초등부 주일학교”라고 적혀있다. 백일장에서 어떤 글을 썼는지는 기억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이 있기에 나의 작은 역사를 기억할 수 있다. 기록을 남겨둔다는 것은 시간이 흐른 후 나의 것을 오롯이 되짚어 보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혹, 알타미라 동굴의 초기 인류 흔적도 이 책의 겉장에 적혀있는 것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는 선물을 받으면 집으로 가져와 할아버지와 함께 열어봐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다. 이 책을 받았을 때에도 가방에 조심히 넣어두었다가 미사가 끝나고 집으로 달려와 할아버지와 함께 포장지를 끌러봤다. 푸른색의 표지가 나왔고 흰 염소를 끌어안고 잠자고 있는 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두껍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의 실망이 그 책과 함께 있었다.
이게 뭐야! 차라리 초콜릿이나 하다못해 색연필 같은 거라도 들어있어야지.
쓸데없이 책이 나오다니.
책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책 보다 조금 더 실용적이고 값이 나가는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 기억은 지금도 내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있어 실망이라는 두 글자는 기대했던 선물을 받지 못한 것이라는 의미로 각인되어있다. 내 실망을 눈치채지 못한 할아버지는 책 표지에 정성스럽게 내 이름을 써 주셨다. 공부나 글쓰기가 사람이 하는 가장 고귀한 일로 여기는 할아버지는 더없이 자랑스러워하셨을 것 같다.
8살의 아이가 읽기엔 조금 어려운 책이었다. 서너 페이지마다 등장인물의 모습이 그려져 있기는 했지만 그즈음 내가 읽던 책에 비해 글씨도 작았고 무엇보다 책에 그려져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우리 할아버지”와는 많이 달랐다. 책 속의 할아버지는 이마가 넓고 둥근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아이의 모습 역시 나와는 많이 달랐다. 표정은 나보다 밝았고 키도 더 커 보였다. 이질감이 들었던 것일까. 읽어보려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의 첫 책은 그 후로 한참 동안 그대로 책장 한 구석에 꽂혀있기만 했다.
5년쯤 지났을까. 책장에서 빛이 바랜 푸른색 책등이 눈에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그게 이유였을까. 책 속의 할아버지와 손자의 이야기에 쉽게 공감되었다. 내 할아버지와 그때의 나를 기억하며 단숨에 읽었다.
과거 목동이었던 할아버지와 앞으로 목동이 되려는 손자가 우연히 산에 올랐다가 갑작스러운 눈폭풍에 산장에 갇혔고 몸이 좋지 않았던 할아버지는 산장에서 마지막을 맞는다. 아이는 처음 산에 오르던 날부터 할아버지의 권유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일기를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책장을 덮고 기억을 더듬었다. 책을 받아온 날, 할아버지는 나보다 먼저 책을 읽었다. 첫 손주가 처음으로 받아온 상장과 상품이 당신에게는 얼마나 소중했을까. 나에게 해주셨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기억이 났다. 책은 내가 오래도록 기억하길 바라는 이야기를 글로 남겨둔 것이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나에게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들이 가득 쓰여 있다.
혼자 있어도 외로워말고, 두려워 말아라.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항상 너를 위해 존재한단다. 너는 세상의 중심이다.
읽기 어려웠던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어서 제법 기분이 좋았다. 조금 더 어른에 가까워진 것 같았다.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던 아이가 김치를 한 입 먹고 난 후, 나 조금 더 큰 거라며 어른들의 세상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은 후로 책 읽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생겼나 보다. 계속해서 책을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거실의 한쪽에 꽂혀있는 책을 보며 제목이 좋아서 읽었고 손이 닿아서 읽었다. 엄마에게 책을 사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그렇게 읽게 된 나의 책을 하나씩 책꽂이에 꽂아두며 흐뭇하게 들여다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바닥에 책을 내려두면 크게 야단을 치셨다. 책을 밟거나 베고 드러눕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책은 읽는 용도 이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다른 일에는 한없이 인자한 분이셨지만 책에 대해서만은 절대적으로 완고하셨다.
책이란, 네 머릿속에 들어가서 생각을 만들고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네 머릿속에 들어가는 것을 바닥에 내려놓을 수 있겠니?
할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책에 대한 철학을 만들어 주셨다. 그 이유일까. 나는 아직도 책을 접거나 표지를 둥글게 만들어 책갈피로 사용하지 못한다. 책갈피는 반드시 명함처럼 빳빳해야 하고 책에 밑줄을 긋거나 메모도 하지 못한다. 책에 엄청난 죄를 짓는 느낌이 든다.
지금은 책을 읽을 때 노트를 옆에 두고 읽는다. 책을 읽으며 생각나거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페이지와 함께 노트에 바로 적어둔다. 책을 다 읽은 후 적어두었던 것을 다시 읽어본다. 그렇게 하면 책을 두 번 읽는 셈이 된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서 옮겨 두었던 메모를 짧은 감상과 함께 인터넷에 기록해 둔다. 그건 나만의 독후감이다. 가끔은 기록해 두었던 글을 살펴보며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돌이켜보기도 한다. 이것이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이자 책을 대하는 나의 자세다. 아주 예전에 읽었던 ‘나의 첫 책’을 지금의 내가 읽는 방식으로 다시 읽어봐야겠다.
나의 첫 책은 마지막을 이렇게 마치고 있다.
[아무쪼록 제가 할아버지의 가르치심을 잘 지키고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지금도 여전히 책꽂이 제일 위에 꽂혀서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이 책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