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수필#21
그놈이 왔다. 처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몇 년 전에 비슷한 놈이 왔을 때에 나라 전체가 뒤집어졌었다. 낙타를 가까이하지 말라고 했고, 낙타를 만졌거든 즉시 손을 닦으라고 했다. 중동을 다녀왔으면 즉각 검사를 받으라 했다. 나는 낙타를 키우지 않으니 상관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온 녀석은 조금 다르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했다. 누구는 중국에서 왔다고 했고 다른 누구는 미국의 어느 연구소에서 왔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밖에 나다니지 말라고 했고, 혹 밖에 나가게되면 [마스크]를 쓰라고 했다. 사람을 만나지도 말고, 악수도 하지 말고,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외식도 하지 말고…….
온통 하지 말라는 것 투성이었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은 일이 꼭 생기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밖으로 나갔다. 나가서 사람을 만났다. 외출해서 내가 만난 사람들을 소개한다.
‘큰모자’는 항상 챙이 커다란 모자 아래 갈색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난다. 연둣빛이 도는 노란색의 운동화는 산뜻해 보여 좋지만 쉽게 때를 탈것 같다는 생각이다. 커다랗게 반짝이는 귀걸이는 챙이 큰 모자 아래에서 뱅글뱅글 돌아간다. 그 모습이 운동장을 돌고 있는 내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핑크장갑’은 핑크를 좋아한다. 핑크색 장갑을 끼고 걷는다. 바지도 핑크색이고 티셔츠에는 하얀색 바탕에 핑크색으로 커다란 하트가 여러 개 그려져 있다. 하트를 남발할 것 같아 조금 걱정은 되지만 나보다 걸음이 빨라서 쫓아가기 어렵다. ‘팔자걸음’은 앞발이 엄청나게 벌어져있어 그렇게 이름 붙였다. 왼쪽과 오른쪽의 엄지발가락 거리가 기네스북에 오르지 않았을까 싶다. 걸음이 팔자로 되어있으니 그의 팔자는 어떨까 몹시도 궁금하지만 쉽사리 말을 걸 수는 없다. 옆에 갔다가 저 팔자걸음에 걸려 넘어질지도 모르니까. ‘쫄쫄이바지’는 늘 같은 바지를 입고 있다. 검은색 쫄쫄이 바지는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는 짙은색의 줄무늬 세 개가 나란히 그어져 있다. 아디다스 상표의 바지로 짐작해본다. 쫄쫄이 바지는 엉덩이를 덮는 커다란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다. 에어로빅 전문가처럼 보인다.
그렇다. 나는 매일 걷기를 시작했다. 걷다 보니 허리 통증이 사라졌다. 하지만 매일 걷기만 하니 조금은 지루해진 참이었다. 걷는 거리와 시간을 늘렸지만 조금 더 나은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달리기를 도와주는 스마트폰의 앱을 알게 되었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첫 달리기를 했다. 스마트폰에서 알려준 대로 1분을 뛰고 2분 걷기를 네 번 반복했다.
“흥~ 내가 1분 달리기를 못할까 봐?”
달렸다. 내 두 다리를 믿었고, 내 허파와 내 심장을 믿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롭게 알았다.
숨 막혀 죽을 뻔했다.
나는 1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체력조차 없었던 거다. 내 심장은 온몸의 이곳저곳에 산소를 보내느라 가슴을 뚫고 나올 듯이 쿵쾅거렸고 그간 쪼그라들어있던 두 허파는 세상의 모든 산소를 들이마시려는 듯 콧구멍과 목구멍을 한없이 벌리고 공기를 흡입했다. 태어난 이래로 가장 거친 호흡을 했다. 고작 1분을 달리고 지칠 줄이야. 뭐가 잘못된 건지 생각했다. 그거였다. 그동안 걷기 운동을 했지만 심박수가 평소보다 커지는 운동을 한적은 없었던 거다. 숨을 고르려고 벤치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뭐가 잘못된 걸까. 고작 1분을 뛰고 이리도 힘들어하다니.
“이건 모두 제대로 된 신발 없어서 그런 거야. 당장 러닝화를 사야겠어”
내 심장과 허파의 부족함을 신발로 그 탓을 돌렸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스마트폰을 열고 [러닝화]를 검색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녀석을 골랐고 이튿날 도착했다.
새로운 운동화로 갈아 신고 뛰었다. 그렇게 하루 건너 하루를 뛰기 시작했다. 달리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나갔고 달리는 자세와 호흡도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첫 목표는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기로 잡았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했다. 지금은 15분 정도는 쉽게 뛸 수 있는 체력이 생겼다. 달리는 자세를 바로잡으려고 아내에게 부탁해서 슬로비디오 촬영도 했다. 30분 쉬지 않고 달리기 목표를 달성한 후 지금은 페이스 올리기에 돌입했다. 이제 나의 새로운 목표는 10km를 1시간 내에 달리는 페이스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이 달려야 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달리기 이야기를 가득 담아놓은 에세이에서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했다. 그 책 전체를 필사하면서 나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코로나는 나에게 달리기라는 새로운 선물을 주었다. 이제는 코로나가 내 곁을 떠나는 것만 남아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