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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닐슨 Oct 01. 2021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조각 수필 #22

나는 동년배보다 무슨 일이든 조금씩 늦었던 것 같다. 친구들보다 키도 뒤늦게 컸고 또래보다 대학교도 늦게 들어갔다. 심지어 고교 동창들 중에 결혼도 제일 늦었다. 하지만 내가 훨씬 먼저 경험한 것도 있다. 바로 부모님의 죽음이다. 두 분이 이혼을 하고 갑작스레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몇 년 후에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나는 동년배보다 훨씬 더 빨리 부모님의 부재를 경험하고 있다. 그 때문에 한동안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일찌감치 돈을 벌어야 했고, 같은 학번의 동료들보다 한 학기 먼저 취업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거의 해결할 무렵에야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아내 역시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던 터라 우리 부부는 신혼살림과 예식비용을 은행에서 돈을 빌려 준비했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시작을 마이너스로 한다는 게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 대출금을 모두 갚을 무렵이었다.


이게 전부 내가 돈을 벌어 산 것들이란 말이지? 이게 다 우리 것이란 거지?


햇볕이 아주 잘 들어오는 하늘 맑은 어느 날, 거실 바닥에 누워 혼자 중얼거린 말이었다. 속으로 했던 말인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밖으로 나왔다. 이 말을 내뱉고 나서 아주 오래간만에 ‘행복’을 느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우리 식탁과 빛이 바랜 낡은 소파, 작은 책장에 꽂혀있는 소설책 몇 권과 에세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여놓은 여행 중에 구입한 몇 개의 기념품과 지난여름에 구입한 에어컨까지. 모두 우리 부부가 돈을 벌고 그 돈을 모아서 구입한 것들이었다. 지금은 필요한 게 생기면 내 돈을 주고 구입할 수 있는 물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자본주의 최고의 제도라고 생각하는 할부를 이용해서 자동차도 한 대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저녁밥을 하기 귀찮은 날에는 가끔 외식도 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리고 있다. 


금전적으로만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사랑하는 아내 덕분에 나에게는 새로운 부모님이 생겼다. 내 부모님께는 사랑한다는 표현을 단 한 번도 못했지만 새로운 나의 부모님께는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초코파이 광고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동요 같은 음정에 가사를 붙여 귀에 착 달라붙는 문구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초코파이니? 말하지 않아도 알게?


사랑도 행복도 모두 말로 내뱉어야 내 것이 된다. 그래야 비로소 내가 행복해지고 사랑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다. 일찍부터 나의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더라면 나와 함께했던 짧은 시간을 조금 더 행복하게 느끼시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에 나는 새로운 부모님께 스스럼없이 말씀드린다. 

“장인어른, 장모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도 행복도 표현해야 내 것이 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렇게 뒤늦게 행복을 느끼는 일이 나에게 필연이었던 것인지 어릴 적 기억에 담아 두었던 글이 있었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나무는 고요하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을 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리지 않는다.
                                              - 한시 외전 제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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