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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빈 Aug 03. 2020

남을 감동시키기가 정말 쉬운 세상이다.

 한 2년 전 쯤엔가, 집 앞에 롯데마트 999에 밤 11시가 다 되서 아이스크림을 사러 들어간 적이 있었다. 롯데마트 999는 마감시간이 밤 11시인지라 부랴부랴 직원들이 마감을 하고 있었다. 한 59분쯤 시간이 되어서 내가 아이스크림을 사는 행위가 이 분들의 노동을 더 피로하게할까 생각이들어 "저... 제가 뭐 하나 구매해도 되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내가 질문을 던졌던 직원분은 카운터에서 혼자 결산을 짓고 있던 한 40대정도 되어보이는 여성이셨는데 웃는 얼굴로 "아, 네. 가져오세요!"하고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시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도 마감하는 분들의 부랴부랴하는 것에 몸을 맞춰 부랴부랴 사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을 사서 아까 질문을 던졌던 카운터 직원에게 가서 "아유, 덕분에 이렇게 기분좋게 하루가 끝나네요. 감사합니다."하고 진심으로 인사를 드렸다.  직원분은 바코드로 아이스크림을 찍으시면서 "어머, 아니에요. 별 말씀을요."하시면서 기쁜 얼굴 가득히 품으시고 계산을 마무리해주셨다. 

 다다음 날쯤인가, 또 무언가 살게 생겨서 롯데마트에 다시 들려 그 때 그 직원을 보고 밝게 인사를 드렸다. 오늘도 카운터에 계셨는데 나를 기억하시는지 역시 살가운 얼굴을 해주시었다. 나는 너무나 항상 그랬던 것처럼 무념무상하게 고를걸 골라 카운터로 가져갔다. 내가 직원에게 다시 인사를 드리며 카운터 위에 물건을 올려놓자 갑자기 직원분이 "잠깐만요!"하시더니 밖으로 나가시는 것이 아닌가.  영문을 모르던 나는 "네?"하고는 어리둥절한 웃음을 짓고 그 분의 나간 마트 정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한 30초정도 지났을까? 손에 고급진 구구 아이스크림 한 박스를 들고 오시는 것이 아닌가. 

 

 "저번에, 그날 밤에 제가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그렇게 저한테 말씀해주시는 분이 없었거든요."


 나는 적잖이 당황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고마운 마음이 드는데, 한 편으로는 내가 고마워서 고맙다고 했는데 내가 이걸 받는게 무슨 상황인가 싶기도 했다. 당연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상대방에 감동을 준 상황이 되니 기쁘면서도 알딸딸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와 같은 일들이 종종 나한테 일어나곤 했다.

 한 번은, 한 1년 전쯤 내 생일때 있었던 일인 것 같다.  어머니께서 옷을 사 입으라고 한 10만원 정도쯤 온라인 상품권을 주셨다. 옷을 거의 안사는 나인지라, 아내는 꼬질꼬질한 옷좀 버리자고, 잘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기쁜마음으로 함께 백화점에 동행해주었다. 아내가 퇴근(참고로 나는 주부가 주업이기 때문에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다)을 하고 같이 만나서 가야했어서 한 7시쯤이나 되어서야 명동에서 만날 수가 있었다. 함께 만나 영플라자라는 곳에 들어가서 이곳저곳보다가 한 매장에 꽂혀서 옷을 휘휘휙 골라내었다. 온라인 상품권을 꺼내 결제를 하려고 하는데 상품권의 특성때문인지 바로 그 자리에서 계산을 하지 못하고 따로 5층(매장이 7층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으로 내려가야했다. 직원 분은 나를 멀리까지 데려가서 결제시키는 것이 미안했던 모양인지 약간 눈치를 보시는 것 같았다. 5층에 상품권을 결제할 수 있는 카운터에가서 핸드폰을 내밀었는데 이번에도 결제할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오고 말았다. 이 상품권은 지하 1층에있는 상품권 교환 창구에 가서 오프라인 상품권으로 변경을 해야만 결제가 가능한 상품이었던 것이다. 


"어쩌죠... 지하 1층 상품권 교환코너가 꽤 멀어요..."


 나를 데리고 온 매장직원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도 미안했는데, 일이 더 커져서 그런지 표정이 조금 울상이 되었다. 나는 밝은표정으로 괜찮다는 말을 건네드렸다. 직원분 잘못도 아닌데, 요새는 직원분들이 과도하게 움츠려하시는 것 같아서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잘못 알고 온 책임이 있는데 내 책임은 마치 면제를 받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지하 1층까지 내려가서 지하로 이어져있는 다른 건물까지 쭉 걸어가야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우리가 너무 늦은 시간에 와서 그런지 상품권 교환코너에 직원들이 모두 퇴근을하고 만 것이 아닌가. "흠..."하며 약간의 한숨을 내뱉고 나서 다시 발걸음을 돌려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매장으로 향했다. 


'5층에 상품권 캐셔 직원분들이 왜 아무 말씀을 안해주셨지...'


 건물이 달라서 서로 마감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교육이 잘 안되엇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돌아가서, 그리고 기다리고있던 매장직원분에게도 허탕을 쳤다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었다. 매장직원분이 얼마나 미안한 표정이던지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나는 "직원님 잘못아 아닌데요."라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었다.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일단 우리 돈으로 계산한 후 다음에 다시 상품권으로 결제하러 오겠다고 했다. 정산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에스컬레이드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는데 아내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매장 직원 분이 여보가 짜증하나 안내고 너무 착하다면서 여보 지하에 내려갔다오는 사이에 나한테 막 칭찬하신 거 있지. 감동받으신 모양이야"

 

"그래?"나는 기분좋은 웃음과 함께 의아한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요새 참 감동주기가 쉬운 세상이네"하고 덧붙임을 했다. 정말 그랬다. 세상이 많이 험해져서 그런가, 그냥 당연한 행동인 것 같은데 감동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정말 착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과거보다 타인에게서 느껴지는 숨결이 무섭게 느껴지는 세상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남에게 쉽게 감동주는 사람이 되어서 좋은가 하면, 한 편으로는 앞으로는 어떤 사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한숨 섞인 고민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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