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을 사랑하는 사서교사 모임
11월의 마지막 월요일, 낭독을 사랑하는 사서교사 모임도 어느덧 23회 차로 네 번째로 함께 읽고 있는 책 '당신이 옳다'(정혜신 글)를 챙겨서 줌으로 사서샘들과 만났다.
오늘은 일정과 컨디션이 안 좋으신 샘들이 있으셔서 총 7분의 선생님들과 함께 두 페이지씩 릴레이로 낭독을 해보았다. 오늘 낭독했던 부분 중에 내게 와닿았던 문장은 아래와 같다.
공감은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공감은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감정적 교류다. 공감은 둘 다 자유로워지고 홀가분할 지점을 찾는 과정이다.
역할에 충실한 관계란 '모름지기 주부란, 아내란, 엄마란, 며느리란 이러이러해야 한다. 모름지기 가장이란, 아빠란, 아들이란, 사위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집단 사고에 충실한 삶이다.
역할 놀이 중인 삶이다. 이런 삶, 이런 관계 속에서 상대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내 심리적 S라인이 드러나지 않는 삶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면서 한 번도 그의 속살을 본 적이 없는 삶이다.
그리고 공감한다는 것은 네가 느끼는 것을 부정하거나 있을 수 없는 일, 비합리적인 일이라 함부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다. 관심을 갖고 그의 속마음을 알 때까지 집중해서 물어봐 주고 끝까지 이해하려는 태도 그 자체이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인 가족에게 공감하는 것이 어쩌면 제일 힘든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공감이라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바탕에 깔려있어야 하고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때까지 집중해서 물어봐주고 이해하려고 애쓰는 행동까지 가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오늘 책을 낭독하면서 깨달았다.
소리를 내어 낭독을 하며 책을 읽게 되면서 가장 좋은 점은 그 내용이 눈으로만 읽었을 때 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머리에 남는다는 것이다.
공감은 똑같이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상대가 갖는 감정이나 느낌이 그럴 수 있겠다고 기꺼이 수용되고 이해되는 상태라는 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