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Day 02
더, 더, 더, 더?
Roncesvalles → Larrasoaña
신도 믿지 않는 주제에 감히 순례길을 범하려 했다. 내 죄목은 이것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성당 다니는 걸 등한시 했던 게 사실이기는 해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은 마음이었다. 성당에 나가지 않은 걸 빼면, 내가 돈을 훔쳤나, 사람을 때렸나, 아니면 다른 범죄를 저질렀나. 성실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착실히, 역시 아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런대로 내 하루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는데, 뭔 이런 말도 안 되는 길을 걷게 하나. '꽃 길만 걷자'라는 요즘 유행어를, 하늘에 계신 분은 전혀 모르시는 모양이다. 어쩐지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애매한 게, 조금 불안하기는 했다. 아이유는 좋은 날에 고백했다가 차이기라도 하지, 나는 나쁜 날에도 걸어야 한다. 첫 알베르게를 나선 건 새벽 6시 반이었다. 아, 이런 부지런함이란.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숭고하지 않은가. 나처럼 게을러 빠진 사람이, 6시 이전에 일어나, 무려 '순례'를 할 준비를 했다. 나 같으면 내가 그저 예쁘고 갸륵해보일 것 같은데. 한국에 있을 때, 한 2년 정도 신앙심 비슷한 걸 의무감에 가까운 마음으로 견지했던 그 날들에, 내가 다녔던 성당의 신부님들 중에서도 순례길을 다녀오지 않으신 분들이 꽤 있었다. 프로 성직자들도 못 한 걸 도전하려는데, 날씨나 이런 것들이라도 좀 도와주시면 안 되나.
신의 가호를 받지 못하는 사이, 타락하고 음흉한 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유혹'이었다. 달콤한 말들로 나를 시종일관 간질였다. 오늘 나는, 반드시, 라라소아나(Larrasoaña)까지 걸어야 했다. 뭐, 엄밀히 말하자면 정말 '반드시'는 아닌데, 이 페이스가 유지돼야, 나중에 조금 쳐지게 되어도 회복 가능하다. 순례길에서의 체력은, 아주 급격한 우하향 그래프를 그린다. 네 시간 정도가 기점이다. 발은 발대로 아프고, 또 어깨는 엄청나게 짓눌리며, 속도가 급격하게 저하되기 시작하는 때도 바로 이 즈음이다. 바꿔 말하자면, 초반에 최대한 부지런하게 움직여 놓아야, 뒤의 느린 걸음을 만회할 수 있다. 정말 막판에는, 반 걸음 정도씩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힘들다. 죽었다 깨어나도 여기서 한 발 자국도 더 걸을 수 없겠다고 느껴지는 때가 자주 찾아온다. 그런 순간에 오르막길을 만나게 된다면. 하아. 내가 원래 신실한 사람이었더라도, 가뿐히 이단의 길을 택하고도 남았을 고됨이다. 그 때 유혹의 신이 찾아와 나를 꼬드겼다. 어차피 내일 더 걸으면 되지 않냐고, 아님 세상에는 버스라는 좋은 교통 수단도 있다고. 너만 조용히 하면 아무도 모르지 않겠냐고. 그렇게 발이 아프고 온 몸에 난리가 난 상태인데, 굳이 계속 걸을 거냐고, 그냥 좀 들어가서 쉬라고, 계속 옆에서 중얼거렸다. 넘어갈 뻔했다. 조금 혹했던 것도 사실이다. 오늘의 코스를 걸으며, 일곱 번 정도 유혹의 신을 부정해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엄중하고도 무서운 약속은 바로 스스로와의 약속이라는 걸, 걷는 내내 절감하고 있다. 남들이 내게 강제했거나, 타의에 의해 맺어진 약속은 얼마든지 잔머리를 굴릴 수 있다. 결국 그 사람에게만 걸리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의 약속은, 스스로가 이 약속의 선언자이자 집행자가 된다. 나는 보통 그래서 스스로에게 맹세나 약속 같은 건 잘 안 하고 산다. 내가 얼마나 비겁하고, 유약하며, 또 변덕스러운 사람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헌데, 이번에는 약속을 해버리고 말았다. 어떻게든 버스 등의 대중 교통은 이용하지 않겠다고. 물론, '어떻게든'이란 단어는 의외로 열린 구석이 많아서, 여기에는 '정 안되면 어쩔 수 없이' 라는 뜻도 함축되어 있다. 하지만, 그건 순례길에서의 일정이 절반은 넘어갔을 때나 타당한 소리고. 벌써부터 버스를 이용했다가는 그 안락함의 바다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어쨌든 처음 열흘이 고비다. 그 열흘 중 이틀이 지났다는 게 조금은 안도되는 점이다. 걸으면 걸을 수록, 나의 미비한 준비 상태가 더욱 눈에 거슬린다. 오직 이 길 하나만을 위해 한국에서 여기까지 날라온 이들도 있다. 그들의 철두철미함이나 절실함, 혹은 간절함은, 여행 막판에 그저 여기를 걸어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나의 마음가짐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어쩌면, 절대 안일하게 와서는 안 될 곳을, 너무도 안일한 태도로 시작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게 무슨 투르드 스페인이나 프랑스가 아니다. 결국 혼자만의 싸움이고, 혼자만의 걸음이다. 생각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 길을 걷고 있고, 몇몇은 동행을 꾸려 같이 다니기도 하지만, 걸음을 내딛는 건 자기 자신이다. 내 준비가 부족하다고, 혹은 절실함이 없다고, 나를 탈락시키거나 낙오시킬 사람은 없다. 부족한 준비와, 부족한 절실함 안에서, 내 걸음을 가능한 최선으로 내딛어보는 게 바로 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라고 스스로를 달래고 있다. 물론, 힘들다. 겁나게, 존나, 힘들다. 이 곳에 처음으로 순례를 떠났던 이름 모를 누군가가 괜히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꼭 굳이 이렇게 산맥을 굽이굽이 넘어가야 하는 그런 코스여야 했나. 어디 강변에서 한 3, 40분 산보하며 걸으면 안 되었나. 신앙심은 왜 꼭 이런 척박함에서 피어나는 걸까. 아, 미운 사람, 나쁜 사람.
걷다 보면, 참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접하게 되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아이 엄마였다. 심지어 쌍둥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세상에. 기력도 좋아라. 무슨 철인 3종 경기 하는 줄 알았다. 어쩐지 그 꼬마들 표정에도 은총이 묻어나는 듯했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꼰대 같음이고, 가장 경계하는 건 스스로가 꼰대가 되는 것인데, 그래도 이 아이들에게는 나중에 커서 좋은 사람이 되라는, 조금 꼰대 같은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유모차에 느긋하게 기댄 모습이 참 편해 보이기도 했다. 징그러운 소리긴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이, 아니, 아기가 되고 싶기도 했다. 어쩌면 이 길 위에서 자전거와 함께 허용된 유일한 교통 수단이, 바로 유모차일지도. 퍼스트클래스와 다름 없는 좌석에 누워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이들이 무척이나 귀엽고도, 또 부러웠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김윤아의 '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