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Day 03
잘 가라 배낭아
Larrasoaña → Cizur Menor
어제의 코스를 소화하며,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졌다. 가방 두 개를 가지고 순례길을 계속 걸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 뻔한 진실을 참 일찍도 깨달았다. 마침 다음 이동할 루트 중에, 나름대로의 대도시인 팜플로나가 포함되어 있었고, 그 곳의 우체국에서 한국으로 짐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몸 상태는 개판에 가까웠다. 고작 1층 침대에서 내려오는 데도 몸이 후드득 거렸을 정도다. 정말 순서대로, 후, 드, 득, 거렸다. 이틀 정도 순례길의 고단함을 경험했기에, 한국으로 보낼 것들을 미련없이 골라낼 수 있었다. 숙소를 나서서, 언제나처럼 그저 걷기 시작했다. 두 개의 배낭과 함께하는 마지막 일정이었다. 큰 배낭은 뒤로, 작은 것은 앞으로 착용한 채 계속 걸었다. 어깨 위에 얹히는 무게가 상당히 고단했다. 걸음을 걷다 잠시 멈추고, 음악을 듣기 위해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순례길에서는 가급적 핸드폰을 실행시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노동요, 아니, 순례요라도 들을 생각에 가만히 음악을 뒤적거리다가, 아뿔싸,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게 그제야 생각났다. 세상에. 이 나라는 혹시 주 5일 근무제가 아닐까. 그렇다면 오늘 우체국이 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리인데. 떨리는 마음으로 구글에서 팜플로나 우체국을 검색했다. 제발 열었어라, 제발, 제발.
다행히 토요일에도 영업을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후 한 시까지만이었다. 멀쩡한 상태라면, 그러니까 발에 아무 이상도 없고 무거운 배낭도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정도 거리는 두 시간 정도 만에 도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한 걸음 한 걸음도 벅찬 상황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오까지 팜플로나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아,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 배낭을 계속 들고 다녀야 하나. 이렇게 무거운 날은 오늘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에 더 기운이 쳐졌다. 뭔가 미래에 감내해야 할 시간의 무게까지 올려지는 느낌이었다. 순례길 여정 중 '어떻게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알량한 자존심같은 건 가뿐히 내팽겨치고, 팜플로나까지의 버스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이미 오늘의 운행은 마무리된 이 후였다. 오늘이 토요일인데, 바로 다음의 버스 배차표는 월요일의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걸 보고, '답이 없다'고 한다. 걷는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방법은 없었고, 그저 걸음을 계속 내딛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걸음걸이에 짜증과 화가 치솟았다. 내가 이걸 도대체 왜 하고 앉아 있나, 싶은 후회가 밀려왔다. 버릴 수만 있다면 버리고 싶은 짐이었다. 세상 모든 것들에 강한 회의감도 피어났다. 길가의 꽃마저도 다 꺾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도로를 쌩쌩 달리는 차들이 그렇게 야속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아, 부럽다.
그 때,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처럼, 그 동안 '부정'이라는 압제적인 독재자에 억압되어 있던 '긍정'이란 이름의 감정이, 제주도의 유채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히치하이킹을 해보는 건 어때, 라고 긍정이 내게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게 무슨 위험하고 씨알도 안 먹힐 소리냐고 마구 구박 받았을 아이디어였는데, 절박함과 절실함으로 가득한 내 상황에서는 동앗줄 같은 생각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도로변에 서서, 수줍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쓔웅, 차 한 대가 그냥 지나갔다. 다시 쓔웅, 역시 또 나를 지나쳤다. 내 안의 '부정'은, 이 때다 싶었는지, 그럼 그렇지 이게 말이나 되는 짓이냐고 '긍정'이를 몹시 타박했다. 결국 아까운 시간만 날렸다고 자책하고 있을 무렵, 내 엄지손가락을 본 자동차 주인이, 그의 검지 손가락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그러더니 천천히 차를 멈추고, 오른쪽 깜빡이를 켰다. 세상에. 성공이다. 벅찬 감정이 마구 솟았다. 팜플로나 근처까지 태워준다고 했다. 세상에 구원은 있었다. 되지도 않는 스페인어로 마구 '그레시아스'를 외쳤다. 걸었다면 두 시간은 족히 걸렸을 거리를, 자동차는 아주 빠른 시간에 주파했다. 그 동안 구글 지도를 분석해본 결과, 차로 5분 거리는 내 지친 걸음으로 최소 45분 가량 소요된다. 이 마저도 평평한 길을 걸을 때의 이야기다. 슉슉 지나가는 거리의 풍경이 무척이나 낯설었고, 시원했다. 아, 이게 얼마만에 느껴보는 스피드인가.
친절한 그 분 덕분에, 팜플로나 시내에서 걸어서 4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 내릴 수 있었다. 무척이나 감사했고, 마침 그의 차 안에서 담배갑을 봤던 지라, 내가 가지고 있는 담배를 한 갑 선물해주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받는, 거룩한 인류애가 피어나던 현장이었다. 팜플로나 우체국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박스를 구매하고, 그 안에 배낭을 집어넣은 후에, 송장을 작성하려고 종이를 펼쳤다. 음, 죄다 스페인어네. 슬로베니아 블레드에서 짐을 부친 경험을 믿고 자신만만한 상태였는데,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스페인어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직원들 중에서도 영어가 가능한 사람이 없었고, 점점 미궁 속에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구글 번역기로 한 단어 한 단어를 해석했는데, 그럼에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 순간, 한 아시아 여성이 우체국으로 들어왔다. 얼핏 들어보니 유창한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히치하이킹으로 세상의 구원을 한 번 경험한 내 마음에는 오직 긍정만이 자리하고 있었고, 혹시 저 사람이 나를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피어올랐다. 우리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나는 그녀에게, 혹시 중국분이세요, 라고 물었다. 그녀는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했고, 나는 다시, 아, 나는 한국 사람인데, 이거 작성 좀 도와줄 수 있겠나요, 라는, 아무런 논리적 인과관계 없는 부탁을 청했다. 그녀는 웃으며 그래주겠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구원과 천사가 실존하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고.
정말 부탁했던 것이 미안할 만큼이나 그녀는 나를 열심히 도와주었다. 30분 이상이나 남의 일에 그렇게 성실할 수 있다는 건, 내게서는 도무지 기대할 수 없는 친절함이었다. 직원과의 거의 모든 의사소통을 도맡아 주었고, 덕분에 무탈하게 배낭을 보낼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워서, 커피를 한 잔 사겠다고 말했고 우린 카페에서 같이 커피를 마셨다. 그녀는 팜플로나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나중에 한국에 오게 된다면, 반드시 내게 연락해달라고, 정말 최선을 다 하여 안내 해주겠다고 말하며, 그녀와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사람, 사회, 세상 모두에 상당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 내게, 오늘은 정말 참 특별한 하루였다. 한결 가벼워진 배낭을 들고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발바닥은 여전히 많이 아팠지만, 어깨와 팔의 통증이 확연히 나아져서 조금은 살 만했다. 우체국에서 보낸 배낭의 무게가 6키로 정도 되었다. 6키로라니. 이걸 빼고도 10키로 가까이 들고 다녀야 되는데, 그 동안 나는 얼마만큼의 무게를 들고 다녔던 건가.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나의 두 배낭을 보고는 측은한 표정을 지었던 이유가 있었다. 인생은 역시 남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
세 시간 정도를 더 걸어, 오늘의 목적지인 Cizur Menor에 도착했다. 가벼워진 짐과, 고마웠던 사람들 덕에, 다소 피로하고 힘들기는 해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순례자들의 여권과도 같은 내 크레덴샬에 네 번째 도장이 쾅, 찍혔다. 내 인생이 무슨 포켓몬 GO도 아니고, 저 도장들을 받겠다고 이토록 고생해야 하다니. 역시 내 감정들의 세계에서는 '부정'이가 센 놈은 센 놈이다. 벌써 또 이렇게 고개를 드는 걸 보니. 조금이라도 덜 부정적일 수 있을 때, 이 글을 마쳐야겠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보아의 '한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