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Day 05
무슨 의미가 있을까
Puente la Reina → Estella
서서히 스스로의 속도를 찾아가는 듯하다. 뭐 그래봤자 어차피 얼마나 빠른 속도로 괴롭냐의 차이겠지만. 조금 게으름을 부리다 숙소를 나서니 해가 쨍쨍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 또 시작이구나. 그래도 비가 오지 않아서 참 다행스러웠다. 오늘은 다시 혼자 걸었는데, 조금 지겹기는 해도 이게 편하다. 누구와 발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건 하나의 큰 자유다. 이 길은, 앞 설 필요도, 뒤쳐질 이유도 없는 곳이다. 아주 가끔, 정말로 아주 가끔씩, 약간의 후련함과 카타르시스가 피어나는 때도 있기는 하다. 무념무상이 주는 편안함일 수도 있고. 물론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정신 나간 듯 힘들어 죽겠는 게 사실이지만.
순례길의 고단함은, 그 긴 거리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길은 무척이나 울퉁불퉁하며,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끝 없이 반복된다. 같은 20Km라도, 런닝머신 위에서의 걸음과는 아주 현격한 차이가 있다. 3일만 걸어도, 한강 주변의 산책길이 얼마나 걷기 좋은 곳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등 위의 배낭과 함께 그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게 가장 힘든 점이다. 발에 가해지는 압력이 더 심해져서, 몸무게와 배낭 무게가 모두 발로 모이고, 상당한 압박을 받은 발이 지면과 마찰하며 이런저런 통증을 유발한다. 순례길을 걸으며, 아직까지는 지난 인생을 돌아본다든가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본다든가 따위의 사치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사색은 무슨. 걷는 동안의 내 표정이 사색이다. 그럼에도 또 어떤 측면에서 생각해보자면, 이렇게 내 몸의 감각들에 예민할 정도의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날도 드물다. 이 길 위에서는 지루함을 타파하기 위해 집중할 수 있는 게 내 몸의 변화 밖에 없기도 하다. <몸의 일기>라는 책도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사서 읽어봐야겠다 싶었다.
김훈 작가가 자전거를 타면서 그랬던 것 처럼, 이 길을 걸으며 느낀 이런저런 생각들과 감상들을 유려한 문장과 단어로 표현해내고 싶지만, 사실 생각과 감상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뭘 보고 느낀 게 있어야 적든지 말든지 하지. 길은 길이고, 꽃은 꽃이며, 마을은 마을일 뿐이다. 오직 그 사물들의 물리적 상태만 인식할 뿐이다. 기가 막힌 광경, 뭐 이런 것도 아직은 없었다. 그저 길의 시작과 끝만 존재할 뿐. 너무 재미없게 다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마음이 안 생기는 데 도리란 없다. 이건 마치, 중학교 시절 토플 공부를 할 때, 학원 선생이 받아쓰기나 해석 숙제를 내주며, 단순히 영어 공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고 느껴보라고 했던 '개소리'와 비슷하다. 정보는 얼어죽을. 나는 언제나 숙제를 숙제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고, 숙제는 언제나 귀찮고 재미없는 것들이었다. 이 길도 마찬가지다. 한 번 출발한 길은, 그저 숙제일 뿐이다. 풍경이고 뭐고, 여기서 찾을 것들은 아니다. 어서 목적지로 향하는 게 중요할 뿐. 내 그릇이 이 정도일 수도, 그래서 내가 이 정도에서 발전을 멈춘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처음 열흘만 우선 버티자고 그렇게나 다짐했었는데, 그 열흘의 반인 5일째에 접어들었다. 남은 길을 생각하면 그저 막막한 게 사실이지만, 아주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언제 즈음 휴식을 취하고, 물은 또 얼마나 가지고 다니고, 이런 것들에 대한 '감각'이 축적되기 시작하는 게 역시 다행스럽기도 하다. 남은 일정의 고원표를 보니, 앞으로도 상당한 오르막길을 오르고 내려야 한다. 당장 내일도 등산에 가까운 오르막길이 예정되어 있다. 이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다니다 보면 어느새 산티아고 비슷한 지점에 도착해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내게 남은 유일한 희망, 아니 '비절망'일 지도 모르겠다. 숙소에 도착하면, 그래서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으며 시원한 음료를 한 잔 마시면, 세상 모든 게 조금은 더 희망적으로 보이는 그런 착시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이 그럴 때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김동률의 '고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