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우리! 반말 금지!

산티아고 순례길, Day 07

by Nell Kid
예의 좀 갖춥시다, 우리.
Los Arcos → Logroño

아침에 아주 힘겨이 일어났다. 다른 일반적인 호스텔과는 달리, 알베르게의 체크아웃 시각은 무척 빠르다. 대부분의 경우, 아침 8시면 침대를 비워줘야 한다. 거기에,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오직 하룻 동안만 잠깐 쉬었다가 떠나기 때문에, 숙소의 침구류나 시설이 아주 편리하지도 않다. 정말 '취침'을 위한 최소한의 기능만 가지고 있는 곳이 알베르게다. 피로를 제대로 풀기에는 아주 많이 부족하다. 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코를 고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잠을 잘 잘 수 있는지. 내 걸음이 부족했던 건가. 분명 같은 곳에서 출발한 사람들이었는데. 아주 드르렁 드르렁, 난리도 아니었다. 이게 무슨 기침도 아니고, 한 사람이 시작하니 다른 이에게까지 전염되어, 마침내는 거룩한 운명 교향곡이 완성되었다. 내 취침의 가냘픈 운명을 선고하는 교향곡이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아도 별 도리가 없었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도 안 나는 시점에 마침내 잠이 들었고, 눈만 붙였다 뜬 것 같았는데 이미 기상 시각이었다. 속도 없는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언제 그런 소음을 내었는지 모르겠다는 눈치인지, 무심히 기상하여 알베르게를 스윽 빠져나갔다. 꽤 이른 시각부터 그들은 걷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코를 골아대며까지 푹 잤으니 상관없겠다는 마인드였을까.

20170406_104329_001 (1).jpg 가끔 이렇게 신발들이 버려져 있기도 하다. 괜히 신발에 감정이 이입되기도 한다. 마치 내 몸 같아서.

사실, 내게는 오늘 걸을 생각이 정말 없었다. 도저히 이딴 몸 상태로는 한 발 자국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치 숙소 비용인 10유로를 들고, 리셉션을 찾아가서, 하루를 더 연장하고 내내 모자란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그랬었다. 알베르게가 부족한 건 비단 시설이나 침구류 뿐만이 아니다. 사람도 별로 없다. 리셉션에 직원이 없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직원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하루 더 연장을 못 해서 길을 나섰다. 이 따위의 방식으로 시작되는 하루도 있구나 싶어 조금은 기가 찼다. 아, 몸 곳곳에서 이상 신호가 느껴졌다. 걸음의 속도도 무척이나 느렸다. 이 상태로 20km를 걸어야 하다니. 누가 봐도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얼굴로 그저 한 걸음씩을 내딛었다. 유난히도 무겁게 느껴진 가방의 짐이 야속했다. 가뜩이나 물도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온갖 짜증이 온 몸 구석으로 뻗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게 다 어제 저녁의 코골이 합창단 때문이다. 성량들은 또 어찌나 그렇게 크던지. 얼마쯤 걷자, 마을 하나가 보였다. 여기서 물과 콜라를 사고, 우선 한 숨을 돌렸다. 평소 같았으면 근처의 벤치에서 앉거나 그랬겠지만, 이번에는 쳐다도 안 보고 바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서 빨리 오늘의 숙소로 들어가서, 널부러진 채 쉬고픈 마음밖에 없었다.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잠이 조금씩 깨서 그랬던 걸까, 어쨌든 시간이 지날수록 걸음의 페이스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딱히 앞지르고 싶은 마음도 없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에 앞서 걷게 되었다. 오버페이스가 아닐까 조금 걱정되기도 했지만, 속도를 낼 수 있을 때 내자는 생각에 그냥 페이스대로 계속 걸었다. 그러면서 몇몇 사람들과 'Hola' 혹은 'Hello' 정도의 인사를 주고 받기도 했다. 참 다양한 국적의, 또 역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 길을 걷는 중이었다. 이 길을 마침내 걸어내기 전까지, 각자마다 마음 속에 그려왔던 순례길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있을 것이다. 각자의 서사가 모이고 모여 산티아고 순례길이 비로소 완성된다. 한 1년 쯤 전이었나, 정부에서 '한반도의 산티아고'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코웃음을 쳤던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냥 트래킹 코스를 조성하겠다고 하면 되지, '한반도의 산티아고'는 또 무엇인가. 그 놈의 '한국형'을 안 붙이면 정책을 추진할 수 없을 정도로 상상력이 빈곤한 건가. 이 순례길의 유명세는, 단순히 그 길이나 지리적 요인에서만 기인하는 게 아니다. 아주 옛날부터, 그 때는 지금마저의 길이나 편의 시설조차 없었을 그 시대부터, 여러 사람들이 알아서 길을 만들고 목적지를 찾아가며, 그러다 누군가는 실패하고 누군가는 성공한, 그 실패에는 심지어 죽음까지도 있었을, 그런 역사와 서사가 존재했기 때문에 이 정도 명성이 가능한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조금은 왜곡된 환상을 품게된 계기이기도 했다. 어떤 고난과 위험에 굴하지 않은 도전의식이라니, 뭔가 존나게 '청춘스럽지' 않은가. 제길, 낚였다.

20170406_122254.jpg 원래는 여기서 멈추려고 했었으나

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중 가장 '덜 반가운'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한국 사람들이다. 물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다. 하지만, '학생이야?' 따위의 물음부터 시작하여, 다짜고짜 반말을 해대는 몇몇 그릇된 어른들도 상당히 많다. 걷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됐는데, 그런 사람들을 이미 꽤나 많이 보았다. 내 상식과 경험으로는, 타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반말을 내뱉을 수 있는 심리 상태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저 정도의 개차반같은 인격으로 이 길을 걸어서 뭘 하나 싶을 때도 있다. 지난 80일의 여행에서는 가끔씩 들리는 이런 반말들에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었는데, 이 길 위에서는 이게 유난히도 거슬린다. 몸이 지치느라, 마음이 더 예민해진 까닭인 듯 하다. 게다가 길을 걷는 것도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되도 않은 반말에 꼬박꼬박 존대해대는 건 상당히 피곤하고 짜증나는 일이다. 이 나라 언어에 괜히 반말과 존댓말이 구분되어 있는 게 아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을 낮출 수 있는 권리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이는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진실이기도 하다. 대학생 때 과외를 하면서, 나는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항상 과외 학생들에게 말을 높였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너무 친밀감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지만, 반말을 한다고 친밀감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거기에 나는 수업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정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이 길 위에서는 서로가 성인 대 성인인데, 그러면 안 되지. 오늘도 어떤 이로부터 반말을 들었다. 육체의 피로함과 겹쳐 순간적으로 몹시 화가 났고, 여기서 나도 확 말을 놓아버리며 최선을 다한 싸가지 없음을 보여주어야 하나 고민하다 말았다.

20170406_154546.jpg 오늘의 목적지였던 로그로뇨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말 친절하고 상냥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굳이 동행을 구하지 않고, 또 숙소에서도 가급적 한국 어른들과는 말을 섞지 않으려고 한다. 그건 아마 듣기 싫은 소리를 최대한 안 듣겠다는 예방적인 마음이 정말 커서 그렇다. 첫 날 숙소에서의 어떤 중년 한국인은, 그 오랜 등산으로 상당히 지쳐있던 내게 이런저런 통역을 요구하며 내가 옷을 벗는 곳까지 따라오는 몰상식함을 보이기도 했다. 부탁이 아니라 사실상 독촉이었다. 누가보면 내게 맡겨놓은 것이라도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이 모든 요청은 '반말'로 이루어졌다. 참고 참다가, 말 좀 높이시면 안 되나요, 라고 최대한 가식적이면서도 정중히 부탁했고, 그제서야 그 사람은애써 말을 높였다. 그러면서 내뱉은 변명이 가관이다. '그 쪽 같은 아들이 있어서.' 이게 무슨 되도 않은 소리인가. 나는 저 쪽 같은 부모가 없는데. 나 같은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한테나 말을 놓을 것이지, 왜 생판 남인 나한테 그러는 건가. 아들 같아서, 혹은 손주 같아서, 이건 다 바뀌어 가는 시대와 세대의 흐름에 발을 맞추기 싫다는 못난 게으름의 어설픈 변명이다. 말 그대로 꼰대다. 살면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지 따위의 꿈이나 당위는 전혀 없지만, 꼰대 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는 희망사항 만큼은 강박에 가깝다. 존댓말. 어려운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내 기준에서는 낯선 이에게 초면부터 말을 낮추는 게 더 기가 막힌 일이기도 하다. 그냥 뒤에 '요'자만 붙이면 된다. 특히 뭘 부탁하거나 그럴 땐, 더더욱. 그 요구를 들어내야 하는 사람의 입장도 이해해 보자. 반말은, 그나마 있던 호의도 다 사라지게 만든다. 뭐, 이런 배려심이라도 가진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그런 말투로 내게 말을 걸지 않았겠지만.

20170406_123151(0) (1).jpg 어쨌든 이제 600km대!

꼰대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제발, 내 인생에 어줍잖은 충고나 조언을 건네려는 마음도 집어치웠으면 좋겠다. 젊을 땐 뭘 해야 하고, 또 어떤 배우자를 만나야 하고, 이런 물어보지도 않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왜 생전 처음보는 낯선 이로부터 듣고 앉아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말 '예의'라는 게 무섭긴 무섭다. 그 와중에서도 됐어요, 라고 말한 뒤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는 못 하게 애써 나를 규제했던 걸 보면. 꼰대질을 하려면, 적어도 10만원은 손에 쥐어주고 시작하게 하는 법이라도 있어야 할 판이다. 뭔 타인의 인생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많고, 또 참견과 오지랖을 그리도 좋아하는지. 가뜩이나 빨라진 걸음이었는데, 오늘도 한 무리의 어른들을 피해 걷다보니 속도가 더 빨라졌다. 그렇게 피곤했던 아침의 출발이었는데, 정오가 되기 전에 20km를 다 걸어버리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었다가는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다시 저들을 마주칠 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들었고, 거기서 10km를 더 걸어가서 마침내 걸음을 멈추었다. 거의 30km를 한꺼번에 걸었으니 발은 무척이나 피곤한데, 어쨌든 당분간은 그들과 거리를 두고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홀가분하다.


자신의 반말을 다 들어낸다고, 그 사람의 기분이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 쉬이 짐작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사실은 엄청나게 인내하는 중일 수도 있으니까. 순례길을 걸으며 하나 확실히 얻고 있는 건, 나는 저 나이에 저러지 않아야겠다는 미래의 인간관을 정립하는 것이다. 이럴려고 이 길을 걸었나 싶은 자괴감이 들어 심신이 몹시 괴롭기는 하다만.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다비치의 '그런 적 있나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