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생일

산티아고 순례길, Day 09

by Nell Kid
내년엔 기필코 벚꽃을
Navarette → Nájera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내 생일이 너무도 싫었다. 내 생일은, 한 해의 첫 중간고사가 임박했다는 신호탄과 같았다. 시험을 끔찍히도 싫어했던 내게 생일은 그 끔직한 날들의 시작이었다. 생일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건, 대학교에 와서야 처음 깨달았다. 정말 당연한 소리겠지만, 대학교에도 중간고사는 있다. 다만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공부를 안, 또는 덜, 해도 괜찮다는 게 대학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물론 내 미래를 생각하면 괜찮을 리는 없겠지만, 아무튼 그 책임을 스스로 온전히 지는 선에서 마무리 할 수 있다. 책임을 질 수는, 있겠지? 어쨌든 대학생이 된 것도 그리 오랜 일이 아니고, 또 그 중간에는 군대도 껴 있었고, 무엇보다 학창시절 수험생 혹은 예비 수험생으로 맞이했던 생일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생일은 그리 유쾌한 날이 아니다. 이 날이 그렇게나 축하할 날인지도 잘 모르겠다. 멀쩡히 살아있기만 하면 반드시 돌아오는 날인데, 축하를 받는 게 괜히 겸연쩍기도 하다. 뭘 축하하는 거지. 태어난 것에는 내 의지라고는 단 하나도 반영되어 있지 않은데. 하지만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사람마다의 1년은, 자신의 생일부터 다음 해의 생일까지다. 그 나름의 1년 동안, 분명 쉬운 일만 있었던 건 또 아닐 것이고. 그러니 여기서의 축하란, 그런 풍파나 고난들을 잘 견뎌왔다는 것에 대한 인정 정도가 될 수도 있겠다.


순례길 위에서의 9일 째다. 이렇게 걸었음에도 열흘이 안 되었다는 사실이 꽤나 공포스러웠다. 거기에,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어제 부모님과의 채팅 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렇구나. 오늘이 내 생일이구나. 굉장히 담백했던 자각이었다. 정말 아예 잊고 살았었다. 3분의 1에는 부족하고, 4분의 1은 넘은 순례길의 이 시점에서 어찌됐든 생일을 맞게되었다. 길 위에서의 생일이라니. 이건 뭔가 로맨틱한 걸, 은 무슨. 최근 3년 째 생일에 대해 좋은 기억이 없다. 2015년에는 훈련소, 그 다음 해에는 부대 안, 그리고 이번에는 고생스러운 순례길. 참 군대가 문제다. 훈련소에서의 생일과 길 위에서의 생일을 굳이 비교하면, 그래도 순례길에서 맞는 생일이 조금 더 낫기는 하다. 물론 '조금'일 뿐이다. 양심이 있으면, 훈련소보다 못해서는 안 된다. 세상 어디라도 말이다. 순례길에서의 생일도,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다. 게다가, 원래 지나온 과거는 참 뻔뻔스럽게도 쉬이 잊게 된다. 당장의 현실이 너무도 중하고, 또 버겁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훈련소에서의 생일도, 나빴다는 이미지만 선명할 뿐 정작 그 날이 어땠는 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이렇게 또 한 살을 먹었다. 하필 또 서양에 있어서, 나이를 서양식으로 또 계산하게 되었다. 어쩐지 올 해는 나이를 두 번 먹는 것 같다. 나이를 먹는 게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 그냥 이대로 있고 싶다. 여기까지가 좋은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스무 살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그럼 또 군대를 가야 한다는 소리니 이건 너무 끔찍하고. 졸업이나 취업 준비 등의 삭막한 현실과는 어느 정도 유리된 채, 이렇게 삶의 '좋은 날'을 계속하여 영위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20170408_124142 (1).jpg 하늘이다. 생일 선물과도 같았던.

지금보다 훨씬 더, 자란다는 것에 상당한 염증을 느꼈던 날들이 있었다. 자람에 필연적으로반되는 아픔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 아픔이 있어야 자람이 가능하다는 명제 역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게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는 '아프지 않는 삶'이다. 무탈함이야 말로 가장 절실히 찾게 되는 미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일들은 나를 꼭 찾아왔다. 그걸 이겨내야 자랄 수 있다는 건 잔인한 이야기였다. 세상에는 분명 절대 이겨낼 수 없는 아픔도 있었다. 이겨낼 수 없는 걸 이겨내려 할 때마다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이런 게 성장이라면, 차라리 나는 영원히 자라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고, 몇 번을 울며 되뇌었던 적도 있다. 이겨낼 수 없는 아픔도 있다는 걸 받아들였을 때 마음은 조금 편해졌지만, 고통의 여진마저 멈출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 때의 통증은 여전한 강도로 아직 마음 속에 남아있다. 그 아픔들 덕분에 자랄 수 있었는 지는 모르겠다. 그러면서, 나는 정확함이란 단어를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다. 신형철 평론가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란 책을 읽고나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상처, 성장, 아픔, 극복 등에 각자의 이름이 있는 건, 서로가 분명 '다른'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즉, 상처나 아픔은, 반드시 극복해야 될 존재나, 혹은 이겨냄으로써 성장할 기회가 되기 전에, 그저 상처나 아픔 그 자체다. 상처와 성장은 분명 별개의 영역이다. 이를 '정확히' 분별해내는 게, 그래서 나의 상처와 아픔에 치유를 채근하거나 강제하지 않는 게, 그 당시에는 내게 절실한 해결책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성장에 대해 조금은 더 본질적으로 물어보았다. 질문의 답은 아직껏 내리지 못했다. 그리 명쾌한 답이 나올 질문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길을 걸으며, 성장 비슷한 느낌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생각없이, 오로지 땅만 바라보며 몇 시간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리고 내가 지나온 길이 어렴풋이 보이며 꽤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 어쩌면 이런 순간과 성장이 비슷한 것 아니겠는가 싶었다. 너무 바쁘고,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일들 투성이인 삶을 한창 살아내다 잠시 뒤를 돌아봤을 때, 소소한 뿌듯함이라도, 아니 '내가 이 정도 왔구나' 정도를 확인하고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자람'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확실하지는 않다. 우선 지금 나의 모든 정신이 이 길을 끝까지 걸어야 한다는, 다소 강박에 가까운 당위에 마음이 쏠려있기 때문에, 다른 비유나 은유가 생각나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성장'이라는 게, 물론 그렇게 거창하거나 대단할 필요는 없지만, 그러면서도 분명 반드시 스스로의 발자취로써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순례길과 닮은 구석이 퍽 없지는 않다. 너무 지나친 의미부여인가.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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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8_163833.jpg 생일 선물 파스타

뭐 생일이었다고 하여, 오늘 대단한 일이 일어났던 건 아니다. 차라리 다행이다. 순례길에 대단한 일이 발생했다면 그건 안 좋은 쪽일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성장과 순례길의 공통점은 잘 모르겠다만, 생일과 순례길은 함께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날은 그저 지나가는 하루일 뿐이며, 그러니까 즉, 앞으로 걸어나갈 무수한 날들 중 하루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안 그래도 특별할 것 없던 내 생일을 더 평범하게 만들어준 이 날의 순례길이었다. 그럼에도,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알베르게의 직원은 나에게 샐러드 파스타를 만들어주었다. 주위의 여행객들도 축하의 인사를 건네주었고. 그저 남다를 것 없는 하루였던 것은 맞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 안에서 무척이나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게 해 준 하루였기도 했다. 더욱이 이토록 무색무취한 순례길에서는 그들의 친절과 따뜻함이 더욱 고마웠다. 이 '추억'이라는 것이, 가장 큰 생일 선물이다. 만약 산티아고에 무사히, 그리고 정말로 도착하게 된다면, 그 날이 가장 인상적인 하루로 기억될 건 분명하지만, 그 다음으로는 아마 이 길에서 맞았던 생일이 참 또렷할 것이다. 살아만 있다면 매 년 이 생일은 찾아올 테고, 그렇게 매 년 마다 나는 산티아고 길 위에서의 오늘을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 여행을 떠나와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결국 한 사람의 생을 지탱하는 건 추억이고, 기억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나를 지탱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그러니, 세상에서 생일이 사라진다면? 음, 슬프지는 않아도 다소 아쉬울 듯하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캐스커의 <고양이 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