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Day 12
멀리가려면, 같이
Tardajos → Castrojeriz
난 정말 '옛 말' 이라는 것들에 대해 아주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다. 노력, 함께, 같이, 예의 등의 가치를 강조하는 이 말들은 그저 거북하게 느껴진다. 그 중 최악은 '노력'에 관한 되도 않은 소리들이다. 정말 어떨 때는 그 '옛 말' 들을 인용하며 '노력'의 미덕을 강조하는 사람을 보면 역겨움까지도 느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옛 말' 들이 '틀렸다'고는 쉽게 단정지을 수 없을 것 같다. 가끔은 아, 이래서 그런 말이 유래한 것이구나, 싶을 때도 있는데, 이를테면 오늘이 그랬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라는 '옛 말'인데, 전자는 모르겠지만 후자만큼은 꽤 맞는 말인 듯하다. 열흘이 넘는 순례길 동안, 혼자도 다녀보고 같이도 다닌 결과다. 혼자 다닌다고 빨리 갈 수 있었던 건 아니다. 혼자가 무조건적인 '빨리'를 보장했다면, 내가 굳이 '같이'를 더 좋아하게 될 이유란 없었을 것이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친구들과 '동행'을 했다. 30km에 이르는 꽤 긴 거리였는데, 덕분에 무사히, '함께', 잘 당도할 수 있었다.
어제는 아주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마셨다. 모두가 함께 많이 마셨던지라, 아침의 출발 시각도 더뎌질 수 밖에 없었다. 날이 풀리다 못해 이제는 미쳐 돌아갈 정도로 더워지고 있는 시점에서, 늦은 출발은, 꽤나 많은 시간을 뜨거운 햇볕 아래 걸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혼자였다면, 아마 중간 즈음에서 멈추고 숙소로 들어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함께 걸으며, 포기하지 않고, 또 속도를 크게 줄이거나 하는 일도 없이, 묵묵히 걸어갈 수 있었다. 같이 걷는다고 하여, 모든 순간이 활발하고도 재미있는 대화로 가득차는 건 아니다. 오히려 침묵의 시간들이 더 많다. 찌는 더위와, 아주 무거운 짐을 들고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때때로는 호흡마저도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실용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이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걷는 법'을 더 잘 아는 사람들이다. 아주 긴 거리를 걸었지만, 중간중간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혼자서 더 짧은 거리를 걸었을 때 보다 덜 힘들게 느껴졌다. 뭐 이건, 정말 실용적인 관점일 뿐이고. 심리적으로는, 이들과 함께 걸어간다는 사실이 나를 외롭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들이 무척 편하다. 나는 매우 방어적인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혹시 조금이라도 불편하다면 기겁을 하며 어떻게든 다시는 그런 자리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들에게 이런 편안한 감정을 갖게 된 게 조금은 신기하기도 하다. 아마도, 의사소통이 아주 원활하게는 안 된다는 점이, 오히려 이들에게 더 유대감을 갖도록 작용하는 것 같다. 들을 수 있거나 할 수 있는 말 모두가 제한적이다. 매 번 귀를 열고 있지 않아도 되고, 신경쓸 일도 확연히 적다. 외국인들이기에, 무례해서는 물론 안 되지만 거추장스러운 예의까지 차리지는 않아도 된다. 얼마 전, 나는 다짜고짜 반말을 내뱉는, 참 생각없고 예의없는 한국인 무리들에게 진심으로 분노했던 적이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짜증날 일 자체가 이들과 함께 있으면 없다. 뭐 이건 이거고, 그냥 이 사람들이 좋다. 너무 수줍은 고백 같긴 한데, 참 좋은 사람들이다. 그 때 겨우 몇 시간을 함께 걸었을 뿐인데도, 서로 꾸준히 연락하며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고, 우습게도 정이 들었다. 어이쿠야. 어제 버스를 타며, 만약 순례길의 시작에서 다짐했던 이 중대한 결심을 저버릴 정도로의 큰 결심을 가능케 했던 기대치가 충족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기도 했다. 아직 아주 많은 날들이 남아 있지만, 실망할 일은 없을 듯하다.
신기하다. 주위의 아주 몇몇의 친구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종종 불편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언제나 혼자이기를 택했다. 그게 편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거슬릴 일도 없었고, 모든 책임을 혼자서만 지면 된다는 사실이 자유로웠다. 어쩌면 그 이유로, 80일이 넘는 지난 여행 동안 단 한 번도 누군가와 여행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지 못 했는 지도 모르겠다. 헌데, 다른 곳도 아닌 이 망할 순례길의 3일차 때, 가능하기만 하다면, 같이 산티아고에 입성하여 사진을 찍고 싶은 친구들이 생겼다. 장점이 많은 친구들이다. 나누는 데에 인색함이 없고, 또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려 노력한다.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버스는 타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3일 정도 주고 받았던 '버스 타고 와서 같이 걷자' 라는 메시지들에 마음이 확 동했다. 마치, 프로야구 FA 시장에 나온 선수가 이적할 때, 어떤 구단으로부터의 연락이 마음을 움직였다, 라고 인터뷰 할 때와 비슷한 마음이 된 듯 했다. 그들의 말이 진심이었든 아니든, 물론 정말 진심이었기를 바라지만, 어쨌든 그 자체로도 상당히 감동적이었다. 아주 오래도록 굳게 닫혀 있기만 했던 나의 세계가,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서 역시 생각지도 못한 이들로 인해, 기분 좋은 균열이 생기고 있다. 말도 잘 안 통하고, 또 살아온 세상도 전혀 다른 사람들이며, 무엇보다 만난지 이제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도 그렇다. 어쩌면, 관계의 깊이나 소중함은, 공유한 시간의 절대량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어느덧, 이 순례길의 절반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다. 버스를 탈 때는 순례길의 순수성에 돌이킬 수 없도록 큰 흠결이 생긴 것만 같아 조금은 겸연쩍고, 수치스럽고, 또 우울하기도 했는데, 막상 지금 보니 그렇게까지 오래 안달복달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한 줌도 되지 않는 알량한 자존심에 너무 집착했던 것 같아, 그게 되려 조금 민망하기도 하다. 버스를 타고 이들을 만난 건 정말 좋은 선택이라 느껴진다. 그래서 참 다행이기도 하고. 꼭, 오늘처럼 함께 계속 걸어, 같이 산티아고에 발을 디디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본다. 정말 그렇게 되면, 이 순간의 진심을 살짝 이야기 해 주어야지.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이적의 '같이 걸을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