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서럽고, 서러워서 아프고

산티아고 순례길, Day 13

by Nell Kid
이렇게 접어야 하는 걸까
Castrojeriz

한심한 패잔병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알베르게의 기상 시각은 무척이나 빨라, 아침 8시가 되니 이미 다른 사람들은 모두 떠나 있었다. 나는 이 곳에 남아있어야 했다. 괜찮겠지, 싶었던 발의 상태가 실은 그리 멀쩡치 않다는 걸 어제 저녁 한 의사분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는 내게, 오늘 무조건 의사를 만나고 오라고 조언해주었다. 염증의 가능성이 높다며, 이게 발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면 아주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며, 당분간은 무조건 쉬어야될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순례길은 한 달 이상이 소요되는 코스고, 그렇기에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아무런 문제나 고비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그 정도로 염치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비의 문제란 철저히 자신의 ‘의지’나’ ‘정신’ 등의 영역에만 귀속되는것이라 생각했고, 무심하고도 안일했던 준비로 인하여 자꾸만 발에서 느껴지는 신호들을 애써 무시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다고, 또 참아야한다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처음 약국에 갔을 때, 감염 증세가 있다는 걸 약사로부터 들었고, 어쩌면 그 때 병원을 갔었어야 한다고, 지금에야 뒤늦은 후회가 든다. 모두가 각자만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 오늘, 나는 이 자리에 머물러야 했다.


머무름이 일상적이지 않은 순례길에서 머무름을 갖는다는 건 괜히 겸연쩍었다. 걷고 싶었다. 걸어선 안 된다는 조언을 들었을 때야, 무심히 걸을 수 있다는 게 새삼 축복같은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난 정말 무모하게, 그리고 참으로 무식하게 이 길에 도전장을 내밀었었다. 첫 날, 등산복 복장의 많은 사람들을 보며, 고작 길 하나 걷는 데에 뭐 저리 많은 준비를 번거롭게 해서 오나, 싶은 의구심과 회의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 입장에서는, 죄다 거추장스러운 것들 뿐이었다. 그건 거추장이 아니라 최소한의 필요였다. 단 이틀만에 발 전체에 상당한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고, 3일째가 되니 걸을 때마다 발이 찢어지는 아픔까지 느껴졌다. 다들 그런 줄 알았다. 남들처럼 거추장스럽게 더 준비를 한다고 하여 덜 아플 발이 아니라면, 그냥 묵묵히 걷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어리석은 섣부름이었다. 그 곳에서라도 우선 멈추어, 상황과 문제를 정확히 진단했어야 했다. 이후 통증은 조금씩 줄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건 차도가 있었던 게 아니라, 다만 그 통증에 익숙해진 것이었다. 절대로 만만하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 길을, 너무 사려깊지 않게 대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병원에 가기 전의 오전은, 내내 이런 종류의 자책감과 자괴감으로 소비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혹시 의사의 판단에 따라 오늘 늦게나마 길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래서 복장을 갖추고, 병원에 찾아갔다. 괜찮다는 진단이 있다면, 바로 출발하기 위함이었다.

20170412_141424.jpg 전혀 괜찮지 않았던 발.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의사는 내 발을 보자마자 고개를 돌리며, ‘어후’ 따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설픈 영어로, 내게 4, 5일은 무조건 걸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4, 5일. 말이 4, 5일이지, 상당히 큰 기간이다. 이 후 일정을 고려해보았을 때, 4, 5일을 멈추게 되면 모든 것이 꼬여버리게 된다. 아득한 막막함이 몰려왔다. 이젠,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최소 4, 5일이고, 나의 증세가 꽤 심각한 편이니 그 이 후로도 추이를 지켜봐야한다고 의사는 말했다. 4, 5일의 휴식을 취한다고, 내 발이 말끔히 완치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완치되지도 않은 발을 가지고 남은 순례길을 걸어야 하고, 그건 발을 지금보다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간호사는 내 발의 상처를 떼어내고, 항생제를 바르며 처치를 해주었다. 발에 붕대가 둘러졌다. 영락없는 환자가 되었다. 바로 떠나기 위해 옷을 갖추어 입고 병원에 온 것이었지만, 그럴 이유가 없게 되었다. 숙소로 돌아갔고, 옷을 편한 것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상당한 우울감이 몰려왔다. 스스로에 대한 짜증과 회의가 대부분이었다. 준비를 철저히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거 하나 버티지 못 하나 싶은 마음에 공연히 죄 없는 발에도 짜증을 퍼부었다.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지금의 이 상태는, 심각한 염증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어찌됐든 의사의 말처럼, 무조건 휴식을 취하는 게 옳다. 여기에 여지란 없었다. 거대하고도 완고한 이 단정적임 앞에서, 나는 하염없이 무기력했다.

20170412_093710(0).jpg 숙소의 테라스에서, 계속 이 거리를 바라보았다.

버스까지 타고 와 어렵게 만난 친구들을, 불과 이틀만에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발의 경과에 따라서는 남은 카미노를 아예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포기라니. 스스로가 대단히도 못난 사람이 되어버린 듯한 열패감에 휩싸였다. 답답하고도 화가났고, 분하면서도 억울했다. 그래서 조금 울기도 했다. 절반 이상의 길이 아직 남아 있지만, 나의 순례길은, 아주 높은 확률로 엔딩을 앞 두게 되었다. 육체적으로는 너무 힘든 시간들이었다. 지난 90일 가까이 여행했던 여독의 잔여물까지 남아있어, 순례길의 하루하루는 때때로 괴로울 정도로 버거웠고 힘들었다. 극기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구태여 내 시간과 내 돈을 투자하여 이 길을 왜 걸어야 하는가에 대한 상당한 회의감이 들 때도 많았다. 내게 있어서는 그 자연환경이 그 자연환경이었고, 아무리 멋있다는 경관이라도 그저 숙제처럼만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걸었다. 그러기 위해서 온 곳이니까. 오직 걷기 위해서. 그 걸음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몰라도, 또 한 걸음 한 걸음에서 의미를 찾지는 못 해도, 그래도 오롯이 ‘걷는 행위’에만 방점을 둔 채 계속 걸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끝까지 걸어보고 싶었다. 설사 그렇게까지 걸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순례길을 걸어봤자 별거 없더라라는 조금 허무하고도 허탈한 결과물일 뿐이라도, 그 허무함과 허탈함을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이것이 통째로 흔들리게 되었다. 마음이, 아팠다.


어쨌든 이 곳을 벗어나긴 해야 한다. 너무도 작은 마을이라, 버스도 다니지 않는다. 마땅히 머무르거나 쉴 곳도 없고. 주변의 큰 도시로 나가긴 해야 될 텐데, 변변한 교통 수단도 없으니 그게 조금 막막하기는 하다.비우스의다. 나가긴 하는데, 나갈 방법은 없고, 그렇다면 걸어야 하는데, 걸으면 안되고, 머무르자니 있을 곳은 없으며 나갈 방법조차 다시 마찬가지로 별로 없는, 굉장히 답답하고도 갑갑한 상황이다. 조금 더 일찍부터, 이 길에 대해 간절했고 치밀했으며, 또 성실했고 열심이었다면, 나의 순례길은 달라졌을까. 이런 반성을 몇 시간 째 하고 있지만, 아무리 반성하고 성찰한들 달라질 결과가 없다는 건 나를 조금 분노케까지 한다. 뒤 늦음, 참 싫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러브홀릭스와 장은아의 ‘아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