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

산티아고 순례길, Day 17~18

by Nell Kid
아프지 말고, 무탈하게 걷자
León → Villar de Mazarife

다시, 걸었다. 걸어야지, 별 수 있나. 그래도 한동안 걷지 않았더니,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역시 사람은 적응이 동물이라는 게, 인간이 쉽고 편한 것에만 적응한다는 소리는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나의 군대는 왜 시작부터 끝까지 지랄스러웠던 거지. 더 불행하거나 열등한 무언가를 바라보며 흔히 말하는 '정신승리'를 하는 폭력적인 사고방식에 종종 역겨움까지 느끼지만, 그래도 군대와 비교하면 그 무엇이든 멀쩡하고, 평범하며, 위생적으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며칠만에 걸음을 재개한 오늘의 코스가 그리 벅차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걸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도 꽤나 감동적이기도 했다. 나의 카미노는 4일 전에 끝나버린 줄 알았었다. 그게 아니어서, 그래서 어쩌면 정말 끝까지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괜히 찡했다. 이럴 때 프롬이라는 가수의 '찌잉'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더욱 감정이 고조되곤 한다. 아무튼.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도무지 멀쩡해지지 않을 것 같았던 나의 발인데, 며칠의 휴식을 취하고 났더니 꽤나 호전이 되어 다소 신기할 정도였다. 내가 의대생이었다면, 병원에서 진단을 받을 때 조금 더 낙관적으로 나의 발을 바라보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럼 그토록 우울해 할 필요도 없었을 테고. 이래서 어른들이 의대, 의대 하는 가보다.

20170416_102636.jpg
20170416_102705.jpg
20170416_125617_005.jpg
20170416_125627_023.jpg
20170416_131425.jpg
20170416_131428(0).jpg 전 날 부활절의 레온(Leon)

다시 만난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걸었다. 음, 이 든든함. 어제 노래를 듣다가, 이들을 향한 애틋한 감정을 아주 잘 다신 표현해낸 음악을 하나 발견했다. 넬의 '시간의 지평선'이란 노래인데, '세상 어딘가에 버려져도 다시 돌아갈 곳이 있었고'라는 구절이다. 길 어딘가에 버려져도, 얘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면 된다. 물론 버려지는 일은 없어야 겠지만. 오래도록 버텨온 이어폰이 그저께 즈음에 순직했고, 오늘 새 이어폰을 사느라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나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세상에나. 뭐, 나는 4개월 째 여행하고 있는 프로 여행자니, 이 정도야, 는 무슨. 순례길을 걸을 때는, 1, 2 킬로미터에도 굉장히 예민해진다. 조금 과장하자면, 사실 과장이 아니기도 한데, 어쨌든 하루의 도착점에 다다르면 1km 조차도 굉장히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다행히, 나의 천부적인 방향 감각, 은 아쉽게도 없었지만, 대신 아주 잘 설계된 구글 지도의 GPS 덕에 금방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구글, 너란 기업. 네가 없었다면 나의 여행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가져갈 건 없겠지만, 구글 너라면 내 개인 정보를 몇 개 정도 털어가도 좋아. 일행을 따라잡고 얼마 뒤에, 마을 하나가 나타나서 함께 휴식을 취했다. 구글 만큼이나 은혜로운 다국접 기업, 코카 콜라에서 만든 오리지널 코카 콜라를 한 잔 마셨다. 나는 다이어트나 제로 콜라 따위는 마시지 않는다. 이왕 몸에 나쁠 거, 맛이라도 확실히 좋아야지. 여행하는 동안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많은 콜라를 마시고 있다. 하지만 질리지 않는다. 원래 정말 좋은 건 질리지 않는 법이기도 하다.

20170417_091401.jpg 유난히도 바디 워시가 커 보인다.
20170417_105642.jpg 다시, 산티아고로.
20170417_113411(0).jpg
20170417_133807.jpg
20170417_135429.jpg 사실상 시력측정기.

이후의 마을까지는, 생각보다 꽤 많은 에너지가 소요됐다. 길은 굉장히 평탄한 편이었지만 힘들었다. 물론 이것도 '그나마 평탄' 이기는 하다. 중간중간에 오르막길이 꽤나 있었지만, 이제는 이 정도의 오르막은 그나마의 축복 정도로 여겨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전에 스톡홀름 신드롬을 설명하던 어떤 사전인가 문서에서, 상급자로부터의 간헐적인 배려에 진심으로 감복하는 것도 그 일종이라 들었던 것 같은데. 워낙에 지랄스러운 길이 많아서, 적당한 오르막길에도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것도 스톡홀름 신드롬의 일종일까. 순례길을 걸으며 느끼고 있는 건데, 나는 걸음이 무척 빠른 편이다. 굳이 빠르게 걸으려고 의도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빠른 걸음으로 계속 걷고 있다. 어쩌면 너무 쉼없이 달려왔던 나의 삶이 내 걸음의 속도에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 괜히 조금 씁쓸하다, 라고 하면 되게 열심히 인생을 살았던 것처럼 느껴지겠지. 그냥 빠른 거다. 빨라서 좋은 건, 별로 없다. 특히 혼자 걸을 땐, 장점이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하다. 하지만 일행과 걸을 때는 딱 하나 장점이 있긴 한데, 남들보다 휴식을 조금 더 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한 마을의 바에서, 20분 정도 일찍 도착하여 그 만큼이나 더 쉴 수 있었다. 나의 걸음에는, 이게 더 적합한 것 같다. 아주 빡세게 걷고, 조금 더 쉬고.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리며, 발에 바셀린을 떡칠했다. 이게 마찰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단다. 나는 이런 기초적인 정보도 이 곳을 걷기 시작해서야 처음 알았다. 참 생각하면 생각하 수록, 무모했고 무리했다.

20170417_130311_014.jpg
20170417_130311_016.jpg 이런 동물들을 보는 건 무척 쉬운 일이다.
20170417_135316.jpg
20170417_135338.jpg
20170417_135339.jpg 지랄스러운 길이지만, 가끔은 이렇게 예쁜 구석도 있다.

오늘의 알베르게는, 일행 중 한 명의 말에 따르면 상당히 '스페인스러운' 알베르게다. 정원이 있고, 마을 전체도 굉장히 평화로우며 한적하다. 물론, 내 취향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평화는 슬로베니아 피란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다. 그래, 나도 그렇게나 엄청난 경이로움에 가득차 여행하던 때가 있었지. 어쩌면 그랬던 시간 덕분에, 지금을 견딜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경이로움이 있다는 걸 목도했으니까. 삶의 매 순간이, 여기서의 땀처럼 고된 건 아니라는 걸 아니까. 다행인 건, 처음의 순례길은 정말로 '버팀'과 '견딤'에 가까웠는데,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가끔은 '즐김'의 감정도 누리고 있다. 이런 게 바로, 사도마조히즘인 건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순례길의 50가지 그림자' 속 주인공인 거고. 50가지는 필요 없으니, 한 다섯 가지의 그림자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낮만 되면 정말 덥다. 이게 어딜 봐서 봄 날씨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오늘, 우리 일행은 수영장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또 한 편으로는, 한국에서는 올 봄 그렇게나 지독했다던 미세 먼지를 경험하지 않아 다행이다. 여기 공기는 참 좋다. 너무 힘들다 보니, 건강해지는 느낌은 별로 안 들지만.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성시경의 '더 아름다워져'다. 딱히 중간중간의 꽃 길이 예뻐서 고른 노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