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Day 21
안녕 나의 머리, 안녕 나의 걱정
Foncebadón → Ponferrada
오르는 건 어려워도, 내려오는 건 쉽다고 누가 그랬나. 둘 다 존나 어렵다. 오늘의 길은 대부분이 내리막길이었다. 아주 가파른 경사가 끝 없이 이어졌다. 내가 있던 곳이 이 정도로 높았나 싶을 정도로 한 없이 밑으로만 내려갔다. 10kg에 육박하는 짐을 들고 이토록이나 가파른 경사를 내려가는 건, 생각보다 무척 힘든 일이다. 더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굉장히나 지랄스럽다. 무게 중심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오르는 거나, 내려가는 거나, 언덕의 매 순간에는 오로지 고됨만이 존재한다. 역시 평탄함이야 말로 최고의 가치다. 그래도 길이 예뻤다. 꽃들도 길 주변에 피어 있었고. 또 생각해 보면, 이게 오르막 길이 아니었기 때문에 꽃들이 그나마 눈에 들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순례길에 힘든 길이 너무 밉다 보니, 나는 주변 경관에 마음을 쉽게 안 준다. 그럼에도 오늘의 꽃길은 나름대로 훌륭했다. 약간의 뭉클함도 느꼈다. 아, 세상에 오로지 나쁘기만 한 것은 별로 없구나, 라는 작은 위안 때문이었을까. 산 위에서 먹은 샌드위치가 참 맛있었다. 거기에 컵라면이 있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 지랄스러운 길 위에서 너무 많은 걸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빵 보다 밥이 압도적으로 더 좋아지기 시작하면 나이가 드는 것이라던데, 나는 아직 밥의 필요성이나 중요함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젊어서 좋구만. 이 길도 젊으니 걷고 있는 거겠고. 젊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지만.
오늘 여정의 초반부에는, 상당히 중요한 일정이 하나 있었다. 오로지 걷기만 하는 이 순례길에서는, 다소 소박한 일정도 하나의 '특별함'과 '중요함'이 된다. 하지만 오늘의 것은, 객관적으로 봐도 꽤나 '중요한', 그리고 '뭉클한' 감정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바로, '걱정들의 무덤'에 내 걱정을 던지는 일이었다. 돌 하나에 나의 이름과 걱정을 적은 후, 거대한 돌더미에 던지면, 그 곳에 걱정까지 두고 온다는 믿음이 있단다. 워낙에 아무런 준비 없이 이 길을 걷고 있는지라, 일행 중 '앤디'라는 미국인 친구가 언급해주기 전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뭐, 사실 혼자 걷는 중이었다면, 그냥 그런 게 있겠거니, 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앤디는 내게 그런 돌더미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작은 돌을 하나 골라 내 이름을 적어주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니,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야, 라는 아주 감동적인 메시지와 함께, 돌이 나의 배낭 안에 놓여 있었다. 아, 정말 그때의 감정이란. 잠이 덜 깬 상태만 아니었다면, 눈물이 주루르르륵 흘렸을 수도 있었다. 잠이 조금 덜 깬 상태라서, 다행히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데서 그쳤다. 정말 뭉클했다. 이 친구들과 함께 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서든 버스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최초의 다짐을 어겼고, 그 때는 약간의 수치심까지도 느꼈다. 하지만, 결국 그 선택은 내 순례길을 풍요롭게 만드는 중이다.
사실, 요즘에는 걱정이란 게 별로 없었다. 순례길을 처음 시작할 때는, 매일 밤과 다음 날 아침 동안 상당한 염려와 근심에 시달려야 했다. 또 이 미친 거리를 어떻게 걷나, 하는 두려움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나서는, 아무런 생각 없이 계속 걷고 있다. 실은, 그렇게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는 순간이 좋기도 하다. 오직 육체의 활동만이 존재하게 되는 그 순간, 그래서 나의 과거와 현재, 또 미래의 삶은 어떠한 염두에도 두지 않은 채, 오직 지금의 몸에만 집중하게 되는 그 때. 그래서 걱정을 적을 때, 무엇을 골라야 할 지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결국은, 여행 중에 내게 많이 고민을 안겨 주었던 것을 하나 골랐다. '정확함'에 대해서 였다. 조금 더 엄밀히 이야기 하자면, '제 때'에 관한 고민이었기도 했다. 1월의 어느 날,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를 여행하던 때였다. 당시 나는 아침 일찍 출발하는 투어를 신청했고, 게으른 내 성격상 과연 투어 시작 시각에 맞추어 집합 장소에 도착할 수 있을지 상당히 많은 걱정을 해야 했다. 다행히도, 제 시각에 그 곳으로 향하여, 즐거운 위스키 투어를 즐길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제 때'가 선사하는 거대하고도 따스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어쩌면 삶을 살아내며 늘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은, '제 때'에 '정확한' 말을 건네는 일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하지 못 한 말이나, 뱉어낸 말이나, 모두 이 후에는 '후회'로 수렴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하지 않아야 할 말'을 '뱉어낸' 일은 어떤 여지도 없이 반드시 후회로 귀결된다. 나의 돌에는, '제 때'에, '정확한' 말을 건네지 못했던 경험에서부터의 미안함을 적었다. 결국은 나의 죄책감을 조금 덜자고 한 짓이긴 한데, 부디 이제는 그 말이 향했던 이들의 상처도 조금은 아물었기를 바란다. 진심이 아니었다고 이제서야 변명하기에는, 꺼내진 말은 너무도 견고하다.
미신 같은 건 전혀 믿지 않지만, 그래도 신기하게 위안이 되었던 경험이었다. 아마도 그 기저에는, 낯선 순례길에서 만난 낯선 친구가, 나를 위해 이렇게 돌을 골라주고 거기에 이름을 적어주었다는 사실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절대 혼자가 아닐 거라는 그의 쪽지를, 지갑 안에서 고이 간직할 에정이다. 이 순례길을 증명하는 건, 생장에서부터 도장을 찍고 있는 '크레덴샬', 즉 종이로 된 순례자 여권이다. 하지만 이 순례길 위에서의 가장 따뜻하고도 기분 좋았던 날들의 상징은, 친구 앤디가 건네준 쪽지가 될 것 같다. 생각해보면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의 주인공 이름도 '앤디'였는데. 참고로 나는 이 애니메이션의 열렬한 팬이다. 아주 어렸을 적, 맥도날드의 해피밀 행사에서 받은 '버즈'와 '우디' 장난감을, 나이가 차서도 아주 즐겁게 가지고 놀았다. 그로부터도 조금 더 나이가 들고, 더불어 철이 든 건 아니지만 어쨌든 사고의 지평이 약간이라도 넓어지긴 하며, 나는 조금씩 애니메이션 속 장난감들의 입장에 내 감정을 이입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게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특히 힘든 연애를 할 때는, 내가 마치 버려질 위기에 처한 장난감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음, 오해하지는 말기를. 그 사람이 나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쓸모'의 관점에서, 이 사랑과 관계에 있어서 나의 역할은 끝나버린 듯한 아쉬움과 슬픔, 그리고 서글픔이 정말 컸다. '앤디'라는 이 친구 이름을 이야기 하다 별 소리를 다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어쨌든, 그는 '앤디'가 '버즈'나 '우디'에게 그랬듯, 정말 좋은 친구다. 내 생의 행운의 잔여량이 생각보다는 꽤 되었던 모양이다.
동이 트기도 전에 오늘의 걸음을 시작했던 관계로, 한시를 조금 넘겨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도착'이라는 표현 자체가 너무 내비게이션의 성우스러워서 최대한 자제하려고 하는데, 이것 말고 마땅한 다른 게 생각나지 않는다. 이걸 보면 참, 나도 어지간히 부족한 어휘력과 문장 실력을 가지고 정말 오래도록 글을 쓰고 앉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라도 해야, 지금도 열심히 취업 전선에서 분투중인 내 또래들의 고됨을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기도 하고, 는 무슨. 그런 건 평생토록 경험하기 싫다. 쉣. 외국 애들이랑 길을 다닐 때 좋은 건, 이런 척박한 현실을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잠시 길을 같이 걸었던 한 미국인은, 자신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32살까지 무엇을 하고 살지 몰랐다며, 내게 인생을 천천히 생각해보라는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그 문장들을,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천천히 또박또박 이야기해주어 얼마나 고맙던지. 그래도 이 순례길의 끝이 조금씩 보이며, 어쩌면 내 미래도 아주 어둡지만은 않을 수 있겠다는, 전혀 아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조금씩 생성되는 중이다. 오늘의 알베르게는, 알베르게들 중에서는 물론, 여행 내내 다녔던 호스텔들과 비교해도 상당한 상위권에 속할 알베르게였다. 사립 알베르게들의 시설이 확실히 좋긴 좋다. 그건 즉 돈이 좋다는 소리고, 그럼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며, 이럼 또 다시 겨우 잊고 있던 미래에 대한 근심으로 이어지는데. 어쨌든. 참 좋은 하루였다.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고도 뭉클했던 하루였다. 그랬었다. 그렇게 마무리 될 줄 알았던 하루였다. 그때까지는.
머리를 잘라야겠다는 생각이 처음 든 건 꽤 되었지만, 오늘 마침내 그 결심을 실행했다. 한 미용실에 무작정 들어갔다. 12월 말, 여행을 떠나올 때 즈음에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와 비슷하게 잘라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의사소통은 제대로 안 됐다. 별 몸짓을 다 하며 나의 메시지를 전달했고, 그녀도 알아 들은 것 같았다. 알아는 들었지만, 조금 이상했다. 한국에서 미용실을 다닐 땐, 원하는 머리를 이야기하면 미용사가 꽤 긴 시간 사진을 본 다음 견적을 내곤 했다. 그런데, 이 곳 스페인에서의 미용사는, 한 3초 정도 보더니 알았다고 말했다. 음, 그래,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머리를 자르는 행위 자체가 이제 고작 100년 정도 되었으니, 서양 사람들은 조금 더 능숙한 것일지도 몰라. 능숙은 개뿔. 바리깡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포기, 아니 머리카락 한 가닥도 남아있지 않았다. 무슨 시작부터 이렇게 어떤 여지도 없이 바리깡을 쓰나. 해외에서의 첫 미용실은, 이렇게 시작부터 삐걱댔고, 결국 내가 요구한 모습과는 상이한 몰골로 마무리 됐다. 시원은 했다. 미관을 포기하고, 오로지 기능성만을 얻었다. 기능성 머리를 제대 후에도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머리자름'의 경험이 나무 강렬하여, 오전의 좋았던 것들을 거의 잊을 뻔하게 됐다. 심지어, 오늘의 플레이리스를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나 데이브레이크의 '머리가 자란다' 둘 중에서 고민했을 정도다. 그래도 오늘 아침, 걱정들의 무덤에서의 돌맹이가 조금 더 본질적인 듯하여,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이적의 '걱정말아요, 그대'로 결정했다. 그런데 머리에 대한 걱정은 어디다 버려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