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왔다

산티아고 순례길, Day 28

by Nell Kid
고생했어 정말로
O Pedrouzo → Santiago de Compostella

나의 순례길은 끝났다. '끝'이라는 단어의 단정적임이 참 좋다. 끝의 단정적임은 오직 '끝'에서만 기능한다. 선명한 마지막이다. 채 20km도 남겨두지 않은 채 오늘의 첫 걸음이자, 순례길의 마지막 걸음을 시작했다. 마지막이어서 그런지, 길의 카운트 다운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날이 조금 추웠지만, 어제나 그저께처럼 비가 오지는 않아, 다행히도 꽤 괜찮은 기온에서 걸을 수 있었다. 그 동안은 첫 날의 기억이 종종 떠올랐다면, 오늘은 순례길의 출발지였던 생장까지로 이동했던 날들이 유독 많이 생각났다. 순례는 그 날부터 시작했다. 아주 빠르게, 지난 한 달 동안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소 등의 가축 냄새가 나서 별로 마음에 안들어했던 작은 마을들 조차도, 오늘만큼은 상당히 애틋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끝'의 단정적임은, 마냥 차갑고 엄격한 것이 아니다. 쉽게 지나쳤던, 그리고 때로는 미워하기도 했던 것들에, 조금의 먹먹함과 애틋함을 느끼게끔 하는 하나의 동기부여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길이 끝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별로 없었다. 할 만큼 했고, 또 걸을 만큼 걸었다 싶었다. 사실, 나는 이 길을 미워하기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끝이 없는 언덕, 심지어 가파랐던 그 곳을 생각하면, 지금도 벌써 힘이 드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고생스러운 길 위에서도 나름의 추억거리와 좋은 기억이 생겼고, 그렇기에 떠나보내는 게 마냥 반갑지 만은 또 않았다. 그러면, 이게 바로 아쉬움인건가.

점점 다가오는 산티아고
바짝 다가와 옳지옳지. 그리고 마침내.

산티아고까지는 정말 얼마 걸리지 않았다. 조금 더 걷자, 산티아고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등장했다. 이제, 정말로, 다 왔구나, 싶었다. 조금은 벅찼고, 또 조금은 후련했다. 산티아고는 상당한 대도시여서, 중심부의 성당까지 가려면 여기서부터도 꽤 많은 거리를 걸어야 한다. 하지만, 산티아고까지 가는 것과, 산티아고 내에서 산티아고 성당을 향해 가는 것 사이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했다. 어쨌든 지금 밟고 있는 모든 곳이 다 산티아고라는 소리이니. 공기부터 다른 느낌이었다. 결국은 이 곳을 나의 두 발로 찾아오기 위해, 그 동안 나는 그런 고생을 했었구나 싶은 생각으로 조금 뭉클하기도 했다. 도심부로 걸어가며, 언뜻언뜻 저 멀리서부터 산티아고 대성당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젠 정말로 '끝'이 나의 눈 바로 앞에 다가왔음이 제대로 느껴졌다. 성당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었다. 그 광장의 중심에서, 우린 서로를 미친듯이 껴안았다. 우리가, 해냈어! 이 길이 아무리 유명해지고 산업화가 되었다고 한 들, 결국은 사람의 발이나 자전거처럼 인간의 육체 노동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걸어낼 수 없는 길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얼마간의 거리를 걸었든 간에, 가장 재래적인 교통 수단조차도 이용하지 않았던, 정말 '굳이' 걷거나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해냈어'라는 말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상찬이었기도 했다.

현재는 공사 중인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 건너편에 짐을 풀고, 우린 각각 기둥 하나씩을 뒤에 두고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성당과 광장을 바라보았다. 다들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서로에게 굉장히 복잡한 얼굴들이 스쳤다. 나만 혼자 신나면 안 될 것 같아, 역시 나도 그들처럼 복잡한 표정으로 폼을 잡아 보았다. 우린 함께 사진도 찍었다. 순례길의 아주 초반에,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들과 처음으로 길을 같이 떠나던 날에, 산티아고에서 함께 사진을 찍자는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정말 현실로 이루어졌다. 이 넷이 있어서, 나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발이 염증 증세를 보일 때, 아쉬워하고 슬퍼했던 것도 이들 때문이었고, 또한 증세가 호전되어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아주 기뻐했던 것도 역시 이들 덕분이었다. 함께, 또는 우리라는, 참 뻔하고도 상투적인 이 말이, 나를 지탱해주었다. 우린 함께 아주 많은 거리를 걸었고, 역시 아주 많은 맥주와 와인을 마셨으며, 그 보다는 조금 모자란 만큼의 담배도 함께 피워댔다. 가끔씩은 요리를 해서 나눠먹기도 했으며, 어떨 때는 발의 물집을 서로 바늘로 찔러주기도 했고, 재밌는 것이 있으면 같이 공유하고 힘들 땐 역시 함께 쉬어가며, '일행'이 되어 함께 이 길을 걸었다. 이 순례길을 먼 나중에 떠올리면, 토나오도록 고생스러운 오르막길보다도, 이들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자연스럽게, 오늘은 이들과의 마지막 일정이기도 했다.


순례자 사무소에서, 최종 확인서를 받았다. 직원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프랑스 생장에서 나의 크레덴샬을 처음으로 받을 때, 이런 순간이 올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기본적인 문답이 오고 갔다. 나는 여행과 종교적인 이유로 이 길을 걸었다고 말했다. 종교적인, 은 사실 조금 과장이었고 또 거짓말이었다. 다만 조금이라도 그 사람에게 더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 두 장의 증명서를 받았고, 한 장에는 내 본명이, 또 한 장에는 내 세례명을 기입해달라고 부탁했다. 증명서를 건네며 그는 내게 악수와 함께 고생했다고 말을 건넸고, 그 말을 듣고는 잠시 울컥하기도 했다. 그래, 고생했지. 그것도 어마어마한 '사서 고생'을. 증명서를 들고, 우린 근처의 맥줏집으로 향하여 뒷풀이를 시작했다. 이제 더는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어쩐지 내일도 걸음을 계속 해야될 것 같은 관성적 느낌 사이의 애매함에 대해 같이 감정을 공유했다. 이 친구들 중 두 명은 '묵시아'까지 걸음을 이어나간다. 나 역시도 잠시 그 곳을 갈지말지 고민했던 적이 있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걸음은 이것으로 족한 듯하여 어서 빨리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부디 그 친구의 남은 일정도, 그리 힘들지는 않으면서도 또한 많은 걸 느끼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더는 걷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서 마시는 맥주는 더 시원했고, 맛있었다. 그러면서도, 이게 진짜 끝이라는 걸 조금은 믿을 수 없었다.

우리의 배낭들
순례자 사무소에서

모처럼만에 호텔방을 잡았다. 호텔이라고 해도 상당히 형편없는 외관의, 여관에 가까운 곳이지만, 그럼에도 있을 건 다 있다. 제일 중요한 건 욕조다. 여기서, 나의 피로를 풀었다. 아마도 오늘 밤에는, 못해도 9시간 가까이는 그냥 잘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피로가 쏟아진다. 이 길의 의미에 대해 언젠가는 깊이 생각해보고 또 고민해보겠지만, 지금은 우선 이 지독한 피로를 푸는 게 우선이다. 그 동안 빨래를 제대로 못 하여, 꽤 많은 돈을 내고 호텔 리셉션에 빨래를 부탁했다. 최대한, 향이 폴폴 나면서도 뽀송뽀송하게 해 달라고 주문했다. 외국에는 '뽀송뽀송' 같은 말이 없어, 'Super Dry'라는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목욕을 하고, 더는 내일 아침 알람을 설정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오니, 거대한 안도감이 자리 잡았다. 굉장히 중요하고도 고생스러웠던 내 인생의 한 달이, 이렇게 끝났다. 아직은 이 길의 적확하고도 심오한 의미를 모두 파악할 수는 없겠으나, 시간이 지나면 조금 다르겠지. 조금씩 보이겠고.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페퍼톤스의 '계절의 끝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