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들이 있었음을

산티아고 순례길, Day 29 (Fine)

by Nell Kid
그땐 잘 몰랐고, 그래서 무모했고,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것 같아

15시간을 잤다. 무려. 그렇게 잤더니, 깨달은 게 하나 있다. 15시간을 자도, 풀리지 않는 피로가 세상에는 존재한다. 원래는 일행들과 함께 정오의 미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런 신실함은, 피로 앞에 가뿐히 무릎을 꿇었다. 미사고 뭐고, 도저히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던 나의 컨디션이었다. 배뇨 욕구가 아니었다면, 나는 저녁까지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어찌어찌 점심 즈음에 눈을 떠, 아주 대충 옷을 갈아 입고, 근처의 슈퍼에서 물 한 병을 사기 위해 나섰다. 아마 세상 순례는 혼자 다 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배가 조금 출출했고, 마침 중국 음식점이 하나 보여, 그 곳으로 들어갔다. 산티아고가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만큼의 대도시는 아니지만, 순례길 위에서의 대부분의 '마을'들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큰 도시이며, 그러다 보니 스시집이나 중국집까지 모두 이 곳에 위치해 있다. 비싸지는 않을까 우려했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좋았다. 코스 메뉴 하나와, 매운 새우 하나를 주문했다. 매운 새우는, 내 기대치로는 칠리 새우를 바란 것이었다. 하나도 맵지 않았다. 사천식의 강렬한 통각을 느낄 수 있으리라 예상했던 기대는 허무하게 허물어졌다. 얼큰한 짬뽕이 먹고 싶어졌다. 이전에 매운탕도 그러더니, 평소에 국물 요리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요즘 자꾸 이런 '탕'들이 끌린다. 음식의 맛이 기대와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이런 게으른 하루가 좋았다. 아주 느즈막히 일어나, 그 상태에서 조금 더 뒹굴 거렸고, 마침내 배고픔을 못 이겨 잠시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와 방에서 쉬는, 정말 모처럼만의 사랑스러운 휴식이었다.


다시 방에서 쉬었다는 건, 또 잤다는 문장과 같은 말이다. 순례길 동안 누적된 피로가 상당한 듯했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생각없이 계속 자도 되나 싶을 만큼 내내 잤다. 오후 7시 반에 순례자 미사가 한 번 더 있었고, 여기에는 참석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6시 반 즈음에 눈을 떴다. 대학교 1학년 때, 그러니까 철도 없고, 생각도 없고, 돈도 없고, 시간만 많던 그 시절에, 잠깐,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어쨌든, 그 날들에는 며칠 내내 술을 마셨음에도 이 보다 피곤하지는 않았다. 그럼, 그 사이에 늙었다는 소리인가. 그래도 순례자 미사니 나름대로 예쁘게 보이기 위해 아주 간만에 면도를 했다. 순례를 하는 동안에는, 면도조차 귀찮아 그냥 방치하고 다녔던 수염이었다. 미사에 마지막으로 참석한 건 벌써 2년도 더 전이다. 고해성사를 지금 하면, 어쩐지 성경 한 권을 필사하라는 보속을 행해야 되지는 않을까 싶은 막막함이 든다. 뭐, 그래도 내가 굉장히 불경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거기다가 순례까지했는데, 좀 정상참작을 해 줘도 될 법 하지 않은가. 오늘 미사를 갔다고 앞으로도 성당에 가는 걸 재개하겠다는 건 아니고, 다만 이렇게 산티아고까지 왔으니, 하늘에 생색을 내고 싶었다. 나 좀 잘했죠, 이런 느낌이랄까. 어쩐지 이 길의 피날레는 순례자 미사여야 될 것 만도 같았고. 산티아고에서 순례자 미사는 시간대 별로 자주 있지만, 대성당에서 하는 미사는 별로 없다. 또 이왕이면, 여기까지 왔으니 대성당에서 미사를 봐야 할 것 아니겠는가.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를 나섰다. 배낭 없이 걷는 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굳이 저 무게의 배낭을 지고 걸음을 걷는 게, 바로 순례길의 본질이겠지.

20170428_194920.jpg 미사가 열렸던 대성당의 입구

세상에는, 깊이 의미를 탐구해야 본질이 보이는 것들이 있는 반면에, 행위 그 자체로 본질인 것들도 역시 존재한다. 순례길은 후자에 가깝다. 이 길의 본질은, '걸음'이었다. 어떤 생각도, 감정도, 결국은 '걸음'으로 수렴되었다. 결국 이 걸음을 완주했다는 것이, 시간이 흐르며 곱씹어 볼 수록 큰 의미로 내 삶에 짙은 여운을 남길 듯하다. 산티아고에서의 순례자 미사는, 생각보다 별 것이 없었다. 우선은 무척이나 산만했다. 내가 그곳에 늦게 들어갔기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이 길을 걷는 사람들 모두가 가톨릭 신자인 것은 아니고, 그러다 보니 미사 특유의 경건함을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오히려 미사가 하나의 '쇼'가 된듯한 느낌이었다. 2년 동안 미사에 참석하지 않았더니, 기도문이 단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들만 기도했다. 거의 일방적인 요구였다. 아주 속물적인 것들이기도 했다. 주로는 나의 부귀영화를 기원했다. 내가 순례까지 했으니, 어쩐지 이 정도 쯤은 가뿐히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듯했다. 한국의 미사에서는 '평화를 빕니다'라는 순서가 이 곳에서도 있었다. 주위의 순례객들과 가벼운 포옹을 하며, 각자, 그리고 서로의 인생의 평안을 빌었다. 순례길에서 순례객들을 마주치면,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을 만큼 힘든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부엔 까미노(Buen Camino)'라는 인삿말을 주고 받곤 했다. 이제 우리들의 까미노는 끝났다. 하지만 삶은 계속될 것이고, 따라서 '부엔 유어 라이프(Buen your life)'라는 센스 넘치는 인삿말로 이들을 안았다. 그게 제대로 전달됐는 지는 잘 모르겠다만.


미사가 끝나고는 친구들이 있는 장소로 합류했다. 맥주 한 잔을 마시며 가볍게 얘기를, 주로는 내가 얼마나 많이 '쳐'잤는 지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그런 시덥잖은 소리들을 주고 받다 식당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우리의 미자막 식사였다. 마지막 메뉴는 이탈리안 메뉴였다. 내가 처음 순례길을 선택한 것에는, 이 길이 '저렴'하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컸다. 하지만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 분명 숙소비는 평소보다 저렴했다. 하지만 식비가 꽤 되었다. 먹지 않으면 현기증을 느낄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니 반드시 먹어야 하는 양이 존재했으며, 줄어든 숙소비를 식비가 대신했다. 원래는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충분히 살 수 있던 사람이었는데, 순례길을 걸으면서는 반드시 끼니를 챙겨먹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오늘의 마지막 식사에서도, 나는 파스타와 피자 하나씩을 주문하여, 다 먹었다. 남들은 피자나 파스타를 하나씩만 먹었다. 걔들은 그걸로 배에 기별이나 갔을 지나 모르겠다. 배 부르게 식사를 하고, 우린 몇 잔의 와인을 더 마셨다. 총 다섯 명의 일행들 중, 두 명은 '땅 끝'이라 불리는 피니스텔라까지 걸어간다. 나를 포함한 셋은 여기서 순례를 마친다. 아주 긴 시간, 또 아주 긴 거리를 함께 했던 이들과 작별해야 한다는 사실이 퍽 슬펐다. 아쉬움을 전하고자, 아주 짤막한 영어로 각자에게 엽서를 써주었다. 부디, 우리가 함께 걸었던 이 거리와 이 시간이, 그들에게도 잊지 못 할 기억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넬의 '청춘연가'다. '그땐 잘 몰랐고, 그래서 무모했고, 또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것 같아'라는 가사가 유난히도 마음을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