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에필로그 - 2 (마드리드)
이제, 하나 둘, 작별
또 다른 게으른 날의 연속이었다. 전 날, 포르투에서 마드리드까지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이동을 했고, 그 여파 때문에 아주 늦게까지 잠을 청했다. 10시간의 버스도 이렇게 힘든데,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씩을 어떻게 걸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확실히, 제 정신이 아닌 날들이었던 건 분명하다. 느즈막히 샤워를 하고, 순례길에서 만난 친구 앤디와 함께, 역시나 게으른 관광을 나섰다. 우리의 계획은 단순했다. 우선, 프라도 미술관으로 간다. 거기서 대충 미술 작품들을 구경하고, 미술관 뒤의 공원으로 가서 맥주를 마신다. 끝. 아, 이 얼마나 단순하고도 게으르며 삶의 행복으로 충만한 일정인가. 프라도 미술관까지는, 순례자 출신이 아니랄까봐 걸어갔다. 걸어가며, 우리는 무거운 배낭 없이 걷는 걸음이 얼마나 경이롭도록 가벼운 지에 대해 몇 번을 감탄했다. 순례길 위 도시들의 기온은 다소 낮은 편이라, 때때로는 반드시 여벌의 겉옷을 준비해야 했다. 마드리드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완벽한 날씨였다. 햇살도 강렬했고. 그러면서 중간중간 살랑거리는 바람이 좋은 기분을 선사해주었다. 아주 조금만 더 더웠더라면 짜증이 날 수도 있었을 테지만, 딱 좋은 날씨였다. 워낙에 대도시이다 보니, 한 나라의 수도에 '대도시'란 표현을 붙이는 게 조금 웃기기는 하다만 어쨌든, 정말 간만에 스타벅스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라니.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 여기서 커피를 한 잔 씩 마셨다. 게으른 오후에 딱 맞는 여유로움이었다.
프라도 미술관의 입장료는 15유로 정도이지만, 나는 '25세 미만'의 학생이기 때문에 공짜로 입장할 수 있었다. 3년 전 마드리드에 왔을 때도 이 곳에서 국제 학생증의 본전을 다 뽑았는데, 이번에도 기분 좋은 무료 입장이 가능했다. 현재 나의 나이가 만 23세이니, 아마도, 매우 높은 확률로, 이 학생증을 가지고 프라도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이번이 내 생의 마지막일 거라는 서글픈 확신이 들었다. 뭐, 사람 일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는 하다만. 3년 전에도, 내가 무려 3년 만에 이 곳에 다시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이번 여행에서 슬로베니아의 피란을 방문하기 전까지, 마드리드는 내 인생 최고의 도시였다. 스페인 특유의 자유로움과, 나쁘지 않은 날씨, 그리고 이런저런 볼거리들과 먹거리들이 모두 좋았다. 무엇보다, 마드리드는 내 삶에서 나 혼자 떠난 해외 여행의 첫 도시였다. 모든 게 떨리고, 두렵고, 걱정되고, 또 무서웠으며,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역시 그 만큼의 큼지막한 기대와 호기심을 안고 있던 그 때의 두근거림과 긴장이, 마드리드를 기억할 때 있어 평생 잊지 못 할 감흥을 만들어냈다. 마드리드는 여러 의미에서 '처음'의 의미를 간직한 도시다. '처음' 외국에서 축구 경기를 직접 본 것도, 또 '처음' 미술이 꽤나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도 모두 이 곳이었다. 그 미술의 즐거움을, 바로 이 프라도 미술관에서 느꼈었다. 그 곳에 3년만에 방문하게 되니, 기분이 무척 묘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미술관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 사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겨워 죽을 지경이다. 하지만 유럽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미술관을 가야 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되도록이면 안 가고 싶지만, '여기까지 와놓고'라는 생각 때문에 정말 중요하다는 미술관은 꼭 방문하게 된다. 3년 전 프라도 미술관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부터 나는, 우선 팜플렛을 하나 챙겨, 그 팜플렛에 나와 있는 그림들만 다 보고 가자는 아주 전략적인 미술관 관람객이 되었다. 하염없이 지루하기만 했던 그 날에, 한 그림이 유독 눈에 밟혔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마드리드>라는 그림이었다. 처형이라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이나 참담한 운명을 앞두고, 자신들을 겨누는 총부리들에 누군가는 화를 내고, 누군가는 외면하며, 누군가는 두려움에 떨고, 또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는 그 순간을 그려낸 그림인데, 그림을 보며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아마도, 그 강렬함에 압도되었던 듯하다. 아, 저래서 세상의 사진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는 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딱 하나, 내가 흥미를 느꼈던 그림이었으나, 이건 아주 강한 자극의 새로운 경험이었고, 이 때문에 다른 도시의 미술관을 가더라도 쉽게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 그림과, 3년 만에 재회하게 되었다. 여전히 그 그림의 강렬함은 무척이나 압도적이었다. 그러면서, 3년 간의 인생이 조금 스쳐가 잠깐 시큰해지기도 했다. 프라하를 12년 만에 방문하게 되었을 때 내가 느꼈던 건, 영화 <보이후드>를 볼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열 두 살의 소년이, 그 때의 나이만큼 시간이 지나 다시 한 도시를 방문하게 된, 그 긴 세월에서 잉태된 애틋함이 있었다. 오늘의 감정은, 프라하에서보다는 더욱 집약적인 느낌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무모했고, 아파했고, 서툴렀으며, 역시 어설펐던, 3년 전 내 젊은 날의 도입부를 향한 다소간의 먹먹함에 가까웠다. 이 그림을 처음 봤던 3년 전과, 재회한 오늘 사이에 구간이 설정되어, 아주 빠르게 플래시백이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국과는 아주 많이 떨어져 있는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지난 날의 기억을 떠올려볼 수 있는 건 참 행운이었다. 어쨌든 최소한 두 번은 이 멀리까지 와야 한다는 소리이니까. 다소간의 센치함을 안고, 앤디와 함께 미술관을 나서 공원으로 향했다. 날이 정말 좋아, 아까의 먹먹함은 금세 털어졌고, 다시 설렘 만이 가득하게 되었다. 프라도 미술관 뒤의 공원은 상당히 큰데, 3년 전에도 이 곳에 방문하여 굉장히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아주 잘 가꿔진 공원이었다. 그때는 11월이라 조금은 쓸쓸하고 황량한 느낌도 있었는데, 오늘은 녹음이 가득했다. 오직, 푸름 뿐이었다. 이 여행 동안 아주 많은 공원들을 방문했지만, 이렇게 푸른 적은 없었다. 정말로, 이제 올 해의 겨울은 이렇게 모두 떠나보냈구나, 싶었다.
호숫가 근처에서 맥주를 마셨다. 시원한 맥주 만큼이나 여행지에서 소소한 행복함을 선물해주는 존재도 드물다. 관광지였기 때문에 맥주가 다소 비싼 편인 게 조금은 아쉬웠지만, 또 아무렴 어떠랴 싶었다. 이렇게 멋진 날인데. 맥주를 마시며 우리가 가장 많이 나눈 이야기는, '아무런 걱정도 없어 좋다' 였다. 몇 킬로미터를 더 걸어야 하고, 오늘의 알베르게를 찾아내야 하며, 내일은 또 몇 시에 일어나 걸음을 걸어야 한다는 어떤 압박과 부담이 없었다. 그 보다 더 좋았던 건, 우리 뿐만 아니라 공원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척이나 평화롭고도 안온해 보였다는 점이다. 모두가 함께 여유를 공유하고 있는 듯한 그 시간이 무척이나 편안했다. 맥주를 두 잔 씩 마시고, 우린 호스텔로 돌아와 잠깐 휴식을 취했다. 오늘은 마드리드에서 아주 중요한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간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이 있었다. 저번 주였나, 그렇게 걸었음에도 피로를 견디며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간의 엘 클라시코 경기를 지켜봤는데, 후반 막판에 골을 허용하고 지는 걸 보고 무척이나 허탈했던 적이 있었다. 부디 이번만큼은 나의 레알 마드리드가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고3때 다녔던 한 수학 학원에서, 그 곳의 강사는 어떻게 인간이 레알 마드리드 같은 역사적으로 부도덕한 팀을 좋아할 수 있냐고 성토하곤 했는데, 마음이 가는 게 또 어쩔 수 없다. 경기가 중계되는 한 음식점으로 들어가, 저녁을 먹으며 축구 경기를 지켜보았다. 정말 다행히도, 그리고 즐겁게도, 3대 0 이라는 스코어로 대승을 거두었다. 올레. 이렇게도 완벽한 하루의 피날레라니.
친구 앤디는 내일 미국으로 돌아간다. 함께 길을 걸었던 친구들과의 최종적인 작별 인사다. 길이라는 게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스쳐가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 인연을 맺게 되는 이들은 무척이나 드물다. 삶의 길에서도 그렇듯, 순례길도 다를 건 없었다. 그런 길에서,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나, 참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었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앤디 뿐만 아니라, 함께 술을 마시고 길을 걸었던 모든 일행들에게 보내는 인사로, 넬의 'Standing in the Rain'을 선곡했다. 이 노래의 가사에, '그런 순간이 있었음을, 그것만을 기억해'라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함께,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하지만 그러면 어때, 라는 마인드로 이런저런 언덕을 오르고 길을 걸었던 그런 순간이 있었음을, 모두가 늘 기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