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걸음은 항상 낯설어

아프리카 투어 프롤로그 - 1 케이프타운 (볼더스 비치, 희망봉)

by Nell Kid
안녕, 아프리카!

전 날 나미비아 비자 발급을 위해 나미비아 대사관에 나의 여권을 제출했고, 따라서 여행 중 최초로 무여권 여행자 신세가 되었다. 틈이 날 때 마다 확인하곤 했던 것이 여권과 지갑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사라지니 무척이나 기분이 이상했다. 어쩐지 아주 엄청나게 중요한 걸 빼놓은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아주 중요한 것이 맞긴 맞지. 원래는, 다음 주 월요일에 여권을 찾을 때 까지는 호스텔에서'만' 머무를 예정이었다. 선입견일 수도 있겠으나, 어찌됐든 이 곳의 치안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들어 왔고, 그러다보니 여권 없이 밖을 나섰다가는 큰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행자, 아니 방랑자 아니던가. 그러기에는 너무 심심했다. 날도 정말 좋았고. 좁아 터진 객실 내에서 머무르기에는 확실히 아쉬운 날이었다. 아, 이 좁아 터진 호스텔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참 독특한 정취의 숙소다. 한 때 기차역이었던 곳과 폐선로 위의 폐기차를 개조한 호스텔인데, 따라서 기차의 객실이 이제는 숙박 시설이 되었다. 다행히 4인실을 혼자만 쓰는 호사를 누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밀폐된 객실의 답답함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늘은 어디를 갈까 고민하 케이프타운 지도를 훑어 보았다. 공항에서 보았던 펭귄 사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아프리카에서 펭귄이라니. 케이프타운이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에 위치한 곳은 맞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펭귄에 산다고? 조금은 의구심이 가득한 채로, 호스텔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직원은 펭귄 서식지로 유명한 보더스 비치를 알려줬고, 오늘의 목적지를 그 곳으로 정했다.


케이프타운은, 당연한 소리일 수도 있겠으나, 이름처럼 케이프 반도의 북단에 위치한 도시다. 보더스 비치는, 희망봉과 가까운 곳, 즉 이 반도의 최남쪽에 있었다. 그러니, 보더시 비치까지 가는 길은 차로 한 시간 정도 소요됐다. 가는 내내, 나는 펭귄 한 두 마리를 데리고 여기가 바로 펭귄의 서식지라고 우기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와 의구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목적지에 내려, 조금 걸으니, 펭귄 보호 지역이라는 이름의 게이트가 나왔다. 입장료는 우리 돈으로 6,000원 정도.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에도, 이미 적지 않은 펭귄들을 볼 수 있었다. 괜히 설렜다. 펭귄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 아마 마지막으로 동물원에 갔을 때일 텐데, 그게 언제인지조차도 기억이 안 나니 확실히 오랜만은 오랜만이다. 입구에서 돈을 지불하고 보호 구역 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펭귄들이 그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이국적인 광경에 조금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세상에. 이건 정말, 날 것 그대로의 펭귄이구만. 울타리가 있어서 만져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손을 뻗으면 잡힐 만한 거리에서 수 많은 펭귄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펭귄들이 모래 위에 산다는 걸 여기서 처음 알았다.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만 타는 줄 알았더니. 모래를 파고, 그 안에서 뜨뜻하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모습은 다소간의 질투까지 자아내었다. 나도 저렇게 생각없고도 귀여운 모습으로 사랑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건너편 바닷가에서는, 역시 다른 펭귄들이 더위를 식히고도 있었다. 뒤뚱뒤뚱 바다로 걸어가서, 밀려오는 파도에 푸우욱, 적셔지고 마는 게 조금 귀엽기도 했다. 사람들이 있뜬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즐기겠다는 펭귄들의 천진난만함에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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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들과 작별을 하고, 여기서 희망봉이 그리 멀지 않아, 희망봉으로 이동했다. 살다 보면 참 별 일이 다 있다. 허지웅의 책에서 그가 이 문장을 좋아한다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살다보니, 오로라도 보고, 순례길도 걷고, 이젠 하다하다 희망봉까지 가게 되었다. 특히 오로라와 희망봉은,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꿈또 꾸어보지 못했던 곳들이었다. 그러니, 희망봉으로 가는 내내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이제는 사람이 달이나 화성으로까지 갈 수도 있는 시대고, 그러니 희망봉이 지난 날에 갖고 있는 기능적인 의미는 물론 퇴색됐다. 사실, 희망봉이라는 이름 역시, 굉장히 서구적인 관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를 통과한 선박들이 실었던 희망은, 누군가에게는 참담함이고, 절망이었을 것이다. 이럴 때, 나는 조금 더 절망적인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더 이입하고는 한다. 언젠가 신형철의 책에서 '나는 몰락한 자들에 매료되곤 했다'였던가, 뭐 이런 구절을 보고 감탄했던 적이 있기도 한데. 저 잘 쓰인 문장을 이럴 때 갖다 쓰라고 만든 건 아닐 테지만.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1808년 5월 3일의 마드리드>라는 고야의 그림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형'이라는 거대하고도 단정적인 운명 앞에서, 절망하거나, 체념하거나, 혹은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그들의 표정에서 무서울 정도로 압도적인 운명의 무력함을 느꼈다. 그들도, 살다 보면 자신들이 총부리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희망봉이라 명명되며,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희망이자 개척이었던 이 공간과 공간 위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삶이 이 후 그렇게나 황폐화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영국 리버풀에서 방문했던 노예제 박물관도 조금 생각났다. 사람에게 사람이, 때때로는 너무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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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는 아픈 역사가 담긴 '희망봉'이지만, 경관은 미안할 정도로 매우 뛰어났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이 곳에서 만난다. 강과 강이 만나는 곳을 발견하기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굉장한 곳이었다. 거기에, 바다의 푸른 빛도 정말 좋았다. 푸르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오직 새파란 빛의 바다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희망봉을 가기까지는 약간의 하이킹을 해야 했지만, 이렇게 말하자면 조금 허세스럽기는 한데, 어쨌든 바로 얼마 전까지 순례기를 하고 났더니 이 정도의 언덕쯤은 가뿐히 오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여행이 끝나면 별로 써먹을 데도 없는 능력이긴 하다만, 그래도 그 한 달 간의 순례길에서 뭘 하나 건진 것은 있는 것 같아 내심 뿌듯했다. 아일랜드에서의 'Cliffs of Moher'가 많이 떠오르는 외관이기도 했다. 그때의 스케일이 워낙 블록버스터에 가까워서 그런지, 희망봉의 객관적인 크기 자체가 '절경'이라거나 그렇게 말 할 수는 없을 듯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 그리고 그 꿈과 희망으로 비롯된 슬픔과 좌절의 역사가 있다. 자연환경을 만드는 건 오직 자연만의 몫이지만, 인간들의 이야기가 담긴 서사는 단순한 감탄을 넘어 경외감과 고민을 함께 유발하기도 한다. 케이프타운이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얼마 전까지만해도 인종차별이 상당한 국가적 문제였던 나라였다. 그 차별은 지금도 암묵적으로는 일부에서 현재진행형이라고 한다. 희망봉은 유럽인들이 인도로 향함에 있어 반드시 거쳐야 할 코스였다고 한다. 그 개척의 시대는 누군가에게는 영광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깊은 트라우마일 테고. 그렇게 지난 역사의 트라우마는, 다른 상처와 아픔을 재생산한다. 어쩌면 이것이, 누군가의 고유한 권리를 절대 침해해서는 안 될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뭐, 너무 의식 있어 보이는 척을 했던 것 같은데, 전혀 낯선 대륙에 와서 혼자 여행을 하다보니, 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민망하게.


저 밑의 바다를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쉬워, 많은 계단을 내려와 바닷가로 갔다. 신발과 양말부터 벗고, 부드러운 모래를 음미했다. 그리고 바지를 걷은 뒤에, 천천히 바닷가로 걸음을 옮겼다. 곱고 부드러운 모래들이 주는 그 촉감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마침내 바닷물이 발에 닿았고, 조금은 차가웠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시원함이 다리를 감쌌다. 이 바다는 인도양인지 대서양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바닷물의 맛을 보기도 했다. 음, 짜네. 역시 바다는 바다구나. 옆의 어떤 호주 여행자는, 속옷 하나만 입은 채 바다로 뛰어들기도 했다. 저러기에는 조금 추울텐데. 그는 나에게도 옷을 벗고 함께 뛰어들자고 권유하기도 했다. 나는 웃으며 됐다고 했다. 대단한 놈. 파도가 오면 뒤로 뛰었다가, 다시 바닷가로 향했다가, 이런 놀이를 혼자서 몇 번이나 반복했다. 재미는 있었지만, 이걸 애인과 함께 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이런 바닷가에서 같이 셀프 카메라도 찍고, 방심한 틈을 타서 물에 빠뜨리기도 하고. 너무 드라마를 많이 본 건가. 어쨌든. 다음에 연애를 할 때는 꼭 바닷가를 함께 여행해야지. 파도가 생각보다는 꽤 거칠었다. 덕분에 바지를 걷었음에도, 옷이 꽤 젖고 말았다. 어정쩡한 걸음으로 언덕 위로 올라왔다. 그래도 맨 발에, 저 바다를 느껴보아서, 이 희망봉을 조금 더 생생히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내심 기분이 좋았다. 평소 책을 지지리도 안 읽는 성격인데, 그런 와중에 운 좋게 읽었던 김영하 작가의 책 한 권이 여행 내내 꽤 도움이 되고 있다. 그의 말처럼 오감을 활용하여 여행지를 느껴보려고 하니, 더 생생하게 와닿는 듯하다. 역시 작가의 통찰력이란. 그 정도 통찰력이 없으니 나는 열렬한 소비자에 머무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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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올 때는, 대서양의 루트를 따라 돌아왔다. 덕분에, 나는 인도양과 대서양을 모두 따라 드라이브를 해 본 여행자가 되었다. 운전을 할 줄 알았다면, 이 곳에서 머무는 내내 드라이브만 하며 지내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비가 조금 아깝기도 했고. 워낙 게을러터진 성격 탓에 아직 운전 면허를 따지 않았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다음 여행을 위해서라도 면허 시험에 응시해야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물론, 지키지 못 할 확률이 상당히 높긴 하지만. 희망봉이 있는 케이프 포인트 국립공원에는, 바분 원숭이들이 마치 길고양이들 만큼이나 많이 있었다. 새끼를 등에 태우고 도로를 가로지르는 원숭이들도 꽤 있었는데, 이 모든 게 굉장히 낯설고도 신기했다. 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제 이런 것들에는 '그러려니' 하게 된다고 한다. 마치 유럽 여행에서,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성당을 보아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인가. 질려도 좋으니, 질릴 만큼 이런 동물들을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다. 여기는 남반구라 그런지, 이제 겨울의 초입이다. 부디 내 투어상에 위치한 동물들이, 너무 일찍 겨울잠에 빠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제 조금씩 케이프타운에 적응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 적응은, 선입견과 편견을 걷어내는 방식으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얼마나 편협한 사람이었는지를 매일 느끼고 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참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명 한 명 개개인은 보통 착하다는 사실을, 애써 왜곡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프리카에서의 첫 플레이리스트는, 브로콜리너마저의 '단호한 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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