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투어 프롤로그 - 2 케이프타운 (테이블 마운틴)
숨도 가쁘고 다리도 아팠지만
가장 우려했던 나미비아 비자 발급이 잘 되었다. 조금 어색한 번역투로 말하자면, 다행이 아니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외국을 방문함에 있어 비자를 신청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이전에 중국에 갔을 때도 비자가 필요했지만, 그땐 대행해주는 업체, 혹은 동료가 있었다. 물론, 나미비아 비자도 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돈을 세 배 정도 더 낸다면. 지난 주 목요일에 나미비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신청하고 나오면서, 그래도 대행 서비스가 조금 비싸기는 해도 확실하지는 않을까, 하는 후회도 조금 했었다. 대사관의 직원은 충분하고도 남아('More than enough')라고 말했지만, 어쩐지 내가 준비한 서류에 무언가 문제라도 있을 것 같은 불안함이 계속 들었다. 따라서 오늘 아침, 무척이나 떨리는 마음으로 대사관 문을 두드렸다. 물론 극적인 여행을 위해서라면, 이쯤에서 비자 발급이 일차적으로 거부되고, 당황한 나는 어찌어찌 방법이 없냐며 여기저기를 수소문 하다가 투어 직전에 기적적으로 비자를 받는 시나리오가 있겠지만, 아프리카 여행의 파란만장함을 굳이 비자 발급에서부터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비자는 정상적으로 잘 발급돼있었다. 주남아프리카공화국 나미비아 대사관의 대사님, 감사합니다. 저의 입국을 윤허해주셔서. 즐거운 마음으로, 비자 비용을 지불하고 대사관을 나왔다. 사실 비자 비용을 지불할 때는 돈이 많이 아깝긴 했다. 이 도장 하나 받는데, 한국 돈으로 6만원 이상이다. 세상에. 장사도 이런 장사가 또 없네. 도리가 없으니 돈을 내긴 했지만,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면서도 어쩐지 삥을 뜯기는 기분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래도, 비자가 잘 발급되어, 이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싶어 정말 기뻤다. 혼자 이걸 해냈다는 뿌듯함도 들고. 작년 12월 27일, 김포 공항을 떠나던 순간부터, 내 머리 한 편에는, '나미비아'라는 네 글자가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저 즐겁다가도, 저 비자를 생각하면 갑자기 두통이 생기는 듯한 이상한 느낌도 들었다. 어쨌든 그 스트레스에서 이제 벗어나게 되었다. 역시 이렇게 좋을 땐, 치킨이지. 자축이든 함께 축하하든 축하는 역시 치킨인 것이다. 사실 눈 앞에 보이는 식당이 KFC여서 갔던 것이지만. 타워버거 하나를 주문하고, 천천히 오늘의 남은 일정을 고민했다. 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치안에 대해 상당한 불신이 있었다. 이를테면, 단신으로 거리를 나섰다가는 바로 총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그 정도의 불안감. 오래 지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주일 가깝게 이 곳에 있으며, 그렇게 답이 없는 동네는 아니라는, 더 나아가 '생각보다는' 꽤나 안전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편견이라는 게 참 무섭다. 여기가 그렇게나 대책 없는 곳이었다면, 이 곳의 많은 주민들 역시 무방비로 거리를 돌아다닐 리가 없다. 물론, 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가끔씩 'Hey'라며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가장 살 떨리는 순간이다. 혹시 그들이 내게 물리적인 위협을 가하지는 않을까, 하는 원초적인 움추려듬이지만, 행여라도 그들에게는 인종차별적인 태도로 보일까봐, 일부러라도 살 떨림을 덜 떨리게 제어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다만, 낯선 이가 나를 불러서 겁이 났을 뿐. '총기 소지 가능'이란 구절이 갖는 힘이 정말 크다. 아직까지의 요구사항은 다행히도 소박한 편이었다. 남는 동전이 있으면 좀 달라는 것과,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줄 수 있냐는 것. 기꺼이, 드렸, 아니, 상납, 혹은 조공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부당한 선입견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을 때에는, 나는 비자 발급 이외에는 숙소 밖으로 절대 나서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의외로 괜찮은 치안 상황 덕에 케이프타운 관광 일정을 짜 볼 수 있었고, 지난 번에 희망봉과 보더스 비치에 갔으니, 오늘은 역시 그 유명하다는 테이블 마운틴에 가보자, 라고 결심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결심'이란 표현을 쓸 만큼, 이 곳의 치안 상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KFC에서 테이블 마운틴 입구까지는, 생에 최초로 '우버' 택시를 이용해서 갔다. 우버의 첫 이용은 무료다. 거기에, 구글 계정과 연동해놓으면, 택시 안에서 지갑을 꺼낼 때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를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다. 아마 카카오택시가 이런 원리로 작동되는 것이겠지. 구글맵을 보며 거리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장난감 자동차처럼 생긴 택시 아이콘이, 나의 위치로 오는 게 보였다. 오, 유레카. 이게 바로 신세계인 걸. 택시가 나의 위치에 거의 다 왔을 때, '빵빵' 클락션 소리가 났고,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기사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아마도 이 세상은 너무 발전한 기술들 때문에 되려 망해버릴 것 같다는 세기말적인 생각을 하며 차에 탑승했다. 무척이나 편했다. 내가 갈 곳을 기사가 이미 알고 있었으니, 별다른 어려움 없이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대중교통보다 택시가 더 안전하다는 아프리카에서는, 이걸 조금 더 이용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지도, 그렇다고 마냥 짧지도 않은 시간을 달려 택시는 테이블 마운틴 입구에 나를 내려주었다. 나는,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테이블 마운틴으로 향했다.
산의 정상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걷거나, 케이블 카를 타거나. 케이블 카라니. 이보시오, 아니, 요즘 대세를 따라야 하니까 이보세요, 나는 순례길을 30일 동안 걸었던 사람이오. 순례길을 걸을 때 만큼이나 알량하고도 보잘 것 없는 자존심으로, 나는 걸어 올라 가는 선택지를 택했다. 이틀 전의 희망봉에서, 나는 어떤 경찰 비슷한 사람이 한 관광객에게 지정된 도보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벌금을 부과하는 걸 목격했었다. 혹시, 걸어 올라 가는 것도 표를 끊어야 하나 싶어 직원에게 물어보았고, 직원은 도보는 요금이 없다고 대답했다. 음, 다행이네. 지금 생각해보면, 저 직원이 나를 말렸어야지. 아니면, 이게 어마어마하게 힘들다는 걸 이야기 해주었어야지, 뭐 이런 원망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멋모르는 나는, 그 긴 순례길도 걸었는데 이 잠깐의 등산이 문제겠어,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래서 사람이 이과를 가야 하는 것이다. 비교 단위 부터가 다르다. 순례길에 비교할 것이었다면, 30일이든 뭐든 하루에 얼마나 높은 언덕을 올랐나, 이런 것을 비교 기준으로 삼아야 했다. 천 리터의 기름과 열 개의 가방 중 무엇이 더 많을까요, 따위의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고민할 만 한 방정식으로 되도 않은 자신감을 가졌고, 결과는 혹독했다. 등산로 자체는, 대부분의 순례길보다 더욱 험했다. 경사 자체도 가파랐고, 그 마저도 돌들이 대부분이어서 발을 디디는데 무척 조심해야 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첫 날 생장에서 론'씨발'네스로 향할 때와 비슷한 고단함이었다. 오늘은 그때만큼의 배낭이 없었는데도 그 정도였다. 헉헉대며 겨우 산을 올랐고, 갑자기 현기증이 느껴지며 아까 먹은 타워 버거가 올라오려는 듯한 역한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이런 등산 따위는 미련 없이 포기하고 케이블 카를 타려고 뒤를 돌아봤더니, 아뿔싸, 이건 또 뒤로 가기에는 너무 많이 와 버렸네. 아이 씨 몰라, 라고 중얼거리며 그냥 주저 앉아 물을 마셨다. 올라가야지, 별 수 있나. 난 앞으로 등산 같은 건 절대 안 할 거야. 나중에 결혼식 때도, 킥보드를 타든 휠리스를 신든, 절대 걷지는 않을 거야. 인간을 짐승과 구분짓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직립 보행' 이라던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인간임을 포기했다. 손이 손으로써의 기능을 잃고 앞발이 되었을 때, 비로소 걷는 게 수월해졌다. 물론 그 순간부터 걷는 게 아니라 기어가는 것이 되었지만. 순례길을 완주한 뿌듯함은 잊은 지 오래었다. 남은 건 오직, 오직 오르막길만이 선택지인 이 길을 빨리 끝내는 것. 그래도 지난 30일 동안 어느 정도 이런 길에 대해 면역이 생겨서 망정이지, 그런 경험 없이 여길 호기롭게 걸었다가는 정말 큰 불상사가 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그래, 순례길 네 놈이 그저 개고생인 줄 알았더니, 삶에 도움이 될 때도 있구나. 순례길을 걸을 때도, 나는 유난히 오르막길에 취약했다. 헌데, 오늘의 테이블 마운틴은 오직 오르막길 밖에 없었다. 그나마 경관이 꽤 괜찮기는 했다. 유일한 위안이었다. 순례길에서 많이 본 것 같긴 했지만, 이 곳 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즐길 수가 있었겠는가. 이 벅찬 상황에서. 옛날 어떤 블로그에서, 테이블 마운틴은, 걸어 올라가야 제 맛, 이라는 문장을 읽은 적 있었다. 그게 정말, 어떤 기억의 미화나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소명한 것이냐고, 마주 앉아 그 사람에게 진실 규명을 하고픈 심정이었다.
여기까지만 하면 이 등산의 장르는 휴먼 드라마다. 그런데, 한 할머니를 만나면서부터, 갑자기 미스테리 스릴러로 장르가 바뀌었다. 체코 출신의 그 할머니는, 나를 다급하게 붙잡고는, 여기를 빠르게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물건을 훔치고 때로는 목숨까지 위협한다며, 같이 정상까지 가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순간, 나는 영화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 영화에서 김유정이, 한 노파의 요구에 응대하다가 납치되는 장면이 생각났다. 호, 혹시, 할머니, 그런 거 아니지요, 라며 할머니의 부탁을 애써 들어줬다. 별 생각이 머릿속을 헤매고 지나갔다. 사기꾼인가. 사기꾼이 여기까지 와서 저렇게 고생스럽게 사기를 치나. 아니, 저렇게 고생스러워 보이는 것도 사기 아닐까. 완전히 두고 가지는 못 하겠고, 그렇다고 옆에 바싹 붙어 오르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차선책으로, 나는 그 할머니보다 몇 걸음 더 먼저 걷는 편을 택했다. 혹시 그 할머니가 다른 작당들과 한 패더라도, 쉽게 나를 붙잡을 수 없게 말이다. 내가 군대에서도 안 한 사주경계를 이렇게 하고 있어야 되나 싶었지만, 나의 안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거대한 바위 산 틈으로 햇빛이 비추고 마침내 이 길의 끝이 보이며, 동시에 그 위의 유동 인구가 목격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엉엉. 나 사실 저 할머니가 겁 줘서 무서웠어요, 라고 떼 쓰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30일의 순례길을 걸어낸 의연함으로, 나는 정상까지의 마지막 걸음을 걸어갔다. 도대체 이 글에서만 순례길을 몇 번 생색내고 우려먹는 것인지 모르겠다만. 이건 시작이다. 평생을 사골처럼 계속 써먹을 테야.
테이블 마운틴 정상에서의 광경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올라올 만한 가치가 있었다.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왔어도, 똑같은 정상을 봤을 테니, 굳이 이렇게 걸어올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어쨌든, 걸어 왔기에 더 뿌듯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착각으로, 정상에서의 기분을 만끽했다. 오늘 날씨가 무척이나 좋아, 희망봉까지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건너편에는, 월드컵 경기장을 비롯한 케이프타운 시내 조망이 가능했다. 어느쪽이든, 무척이나 훌륭한 장관이었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바다와 하늘의 푸른 빛이었다. 먼 옛날,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도 입학하기도 전부터, 나는 내게 재능이란 것이 전혀 없는, 그래서 죽어라 노력해봤자, 죽었다 깨어나도 달라지지 않을 실력의 분야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었다. 둘 째는 수영이었고, 첫 째는 미술이었다. 이걸 몰랐던 나의 부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들을 미술 학원에 등록 시키는 돈 낭비, 혹은 현질을 했고, 그 때문에 지겨워 죽겠는 미술 학원에서 나는 오직 애꿎은 물감들만 휙휙 섞어댈 뿐이었다. 이건 딸기 쉐이크고, 저건 무슨 주스야, 라는 꼬마 바리스타 흉내를 내면서. 그 때 참 좋아했던 색이, 오늘의 하늘, 그리고 바다의 그것과 참 닮았다. 부모의 현질에도 불구하고 내 미술 실력은 여전히 형편이 없었고, 그렇게 자란 나는, 어쩌다 아프리카까지 오게 되었다. 그 꼬마가 이렇게 자랄 때까지,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단계들이 있었던 게 아니듯, 오늘 본 바다와 하늘의 경계 역시도 무척이나 모호했는데, 그게 마치 어린 날부터의 지금까지의 내 생의 빛깔같아 더욱 조용히, 하지만 울컥한 마음으로 응시했다. 그래서일까. 굳이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나누려고 하지도 않았다.
내려올 때는 케이블 카를 이용했다. 두 시간 반을 걸려 올라갔는데, 내려오는 건 단 3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이런 억울한 일이. 케이블 카에서 내려다 본 전망도 충분히 훌륭했다. 더 오래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이외에, 굳이 걸어 올라갈 이유는 없을 듯했다. 더 오래 감상할 수도 있지만, 훨씬 더 많이 헉헉대고 힘들어할 수밖에 없게 된다. 뭐 그래도, 이 젊은 나이에, 언제 또 아프리카 남단의 테이블 마운틴을 걸어보겠나, 라고, 나를 달랬다. 내 감정들 중 가장 센 놈인 '부정'이란 녀석이, 젊은 거랑 등산이랑 무슨 관계냐고 자꾸 캐물었지만, 애써 답변을 감추었다. 요즘 대세의 언어로 하면, '마, 고마해라' 정도가 되려나. 숙소로 돌아오자, 거대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등산의 고단함과, 또 여기저기 안전을 신경써야했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했다. 처음엔 그저 신기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진 기차 숙소에서, 아주 따뜻한 샤워를 했다. 아프리카라고 하여 따뜻한 물이 안 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여기는 뜨거울 정도로 잘 나온다. 아직 아프리카라는 이 미지의 대륙에 일주일도 채 머물지 않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우리가 무심코 얼마나 많은 편견과 선입견 안에서 살고 있었는지 느끼고 있다. 어쨌든, 아프리카는, 아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은, 생각보다 안전하고, 또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내 젊은 날에, 이 곳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서, 그렇게 부당한 편견 하나가 사라져서, 참 다행이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넬의 'Promise Me'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