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발걸음을 쓰겠소.

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01 (트럭킹 투어 시작)

by Nell Kid
불편하지만, 그러면 어때

분명히 패키지 여행이지만, 그러면서도 패키지 여행이지만은 않은 아프리카투어가 드디어 시작됐다. 나의 2017년 여행, 그리고 내 젊은 날의 상징처럼 남을 게 분명한 40일 간의 캠핑투어. 정식 명칭은, '노마드 어드벤쳐 아프리카'. 이름부터 어쩐지, 낭만과 젊음의 향기가, ‘존나게 물씬’ 풍기지 않는가. 생각해보면, 참 제 정신이 아닌 여행이기도 하다. 가장 재래적인 교통 수단조차 이용하지 않은 채 지난 30일을 걸었다면(그게 바로 망할 순례길이다), 이젠 가장 기초적인 주거 수단에서만 생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스스로를 아주 강한 S 성향자라 확신하고 있었는데, 은근히, 아니 이 정도면 은근히도 아니지, 어쨌든 나도 몰랐던 M 성향이 꽤나 있는 것 같다. 새벽 6시 반, 투어 컴퍼니 앞에 도착하니, 거대한 트럭이 우선 눈에 띄었다. 오, 겁나 튼튼해 보여, 가 나의 첫 번째 감상이었고, 저게 아마 방탄까지는 못 되겠지만 세렝게티 동물들의 습격 정도는 거뜬히 막아줄수 있을 것 같다는 안심이 두 번째 느낌이었다. 이름과 여행자 보험 번호를 기입하고, 약관에 동의하니 체크인이 완료됐다. 음, 저 약관은,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모르는 게 약이겠지. 40일 동안 나의 발이자, 또 취침을 제외한 모든 순간을 함께 할 트럭에 짐을 실었다. 아프리카 투어는, 나 보다는 주위사람들이 더 궁금해했고, 또 기대하는 듯했다. 이미 지난 5개월의 여행에 조금은 지치고 또 조금은 지루해지며, 정작 나 자신은 최근에는 이 전체 여행이 끝나간다는 사실에 조금의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이 트럭에 짐을 실으니, 근래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설렘이 피어났다. 어쨌든, 지난 모든 인생과는 다른 날들이 펼쳐질 거란 기대가 들었다.

18528113_1975058736057442_6145110407008383488_n.jpg 우리의 투어를 함께할 트럭. 이름은 암스트롱이다.

각각의 국가에서, 이런 멋진, 혹은 제대로 정신 나간 투어를 하기 위해 무려 스무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 정신 나간 사람들 중에, 나를 포함하여 한국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다. 무척이나 다행스러운사실이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이가 있어서, 우선은 덜 지겹고, 덜 외롭고, 또 덜 소외되는 일정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동포애, 혹은 동류 의식은, 이런 순간에 주로 빛을 발하는 감정이다. 넬의 가사처럼 그저 달랐을 뿐 잘못되진 않은 스무 명의 여행객을 이끌 가이드가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운전도 병행한다. 트럭 만큼이나, 그가 든든해보였다. 든든해보이지 않아도 그저 믿고 따라야 할 수 밖에 없는 투어이긴 하지만, 든든해보이는 그 덕분에 더욱 신뢰감을 느꼈고, 그래서 단단한 안정감을 지닌 채 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트럭 내부는, 작은 미니 버스와 같다. 불편하긴 하지만, 그건 각오하고 온 것이기에 별다른 불만이 생기지는 않았다. 첫 날이라 이런 것일 수도. 오히려,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는 USB 포트가 있다는 사실에는 조금 감복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아무리 노마드 어드벤쳐라고 해도, 디지털과 완전히 괴리되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케이프타운에 도착한지 정확히 8일 만에, 이 도시를 떠나게 되었다. 8일은, 지난 모든 여행을 통틀어봐도 상당한 체류 기간에 속하지만, 치안에 대한 불확신으로 도시를 충분히 여행하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별로 길게 머문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희망봉과 테이블 마운틴은 잘 관광했으니, 이걸로 충분하다.


오늘의 일정은 간단했다. 간략한 오리엔테이션과, 중간의 와인 산지에서 와인 시음을 하는 게 전부였다. 앞으로 이틀에서 삼일 정도는, 이렇게 여유있는 여행을 할 것 같다. 매일 텐트를 치고, 다시 아침이 되면 텐트를 걷고, 트럭에서 밥을 먹고, 이런 생활들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점심 시간에, 트럭은 트랜스포머가 됐다. 트럭에는, 온갖 집기들이 숨겨져 있었고, 그걸 다 펼치니 주방이 완성됐다. 세상에. 이건 옵티무스 프라임보다 더 멋진 걸. 식사는, 당연히, 간단했다. 빵과 야채, 그리고 햄 몇 조각과 치즈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재료들은 생각보다 신선했고, 무엇보다 이렇게 도로변에 트럭을 세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빵을 씹으면서, 몇 번이나 '이게 뭐야'를 연발했다. 아주 기분 좋은 '이게 뭐야'였다. 조금은 신이 났다. 아, 꿈꾸고 기대했던 것 이상이야, 라는, 기분 좋은 첫 인상을 받았다. 첫 인상은 여행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순례길이 유독 지랄스러웠던 데에는, 론씨발네스, 아니, 론세발네스로 향했던 첫 날이 너무도 힘든 나머지 이걸 왜 걷고 앉아있나 하는 회의감이 잔뜩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회의감은 순례길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이어졌다. 그 때, 오히려 역설적으로, 여행의 가장 큰 적은 회의감일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번 투어는 그런 회의감 없이 시작되었고, 언제까지 이 첫 인상이 이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나를 동기부여 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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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6193_1975058656057450_8045359039208949050_n.jpg 차창 밖으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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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8_132702.jpg 이렇게 길가에 차를 세우고 요리를 해 먹는다. 음식이 싱싱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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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9511_1975058632724119_4638487752147096320_n.jpg 첫 캠핑 사이트와 첫 텐트

첫 캠핑 사이트에 도착했다. 이곳에 오니, 캠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실감나기 시작했다. 왜 항상 이런 실감은 뒤늦게 드는 걸까. 혼자 온 관계로, 텐트를 혼자 쓰게 되었다. 외로운 건 전혀 문제가 아닌데, 큰 텐트를 혼자 치고 혼자 걷어야 한다. 이건 분명한 문제다. 텐트를 펼치는 게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하면 더 쉬웠을 걸, 혼자 하려니 조금은 벅찼던 게 사실이다. 결국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이 여행의 특성상 분명 나도 이른 시일 내에 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일이 있긴 할 것이다. 공동체 정신이나 배려심, 혹은 협동 같은 단어에는 알러지에 가까운 거부감이 들지만, 여기서는 어쩔 수 없다. 오히려 그렇게 함께 여행하는 걸 즐겨야지. 첫 텐트를 쳤다는 게, 오늘의 가장 큰 사건이다. 그리고, 부디 앞으로도 하쿠나마타타할 여행을 진심으로 소원한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러블리즈의 '지금, 우리'다. '또각또각', 이렇게 아프리카 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기에, 이 대륙과 이 땅에, 우리의 발걸음을 쓰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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