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02 (남아공 오렌지리버)
각자의 텐트 안에는 각자의 꿈과 추억이
잠을 설쳤다. 새로운 잠자리에서 잠을 설치는 게, 조금 예민한 내게 있어서는 전혀 큰 일이 아니다. 문제는, 잠을 설친 이유다. 우선은 적응의 문제. 오직 상상만 해왔던 텐트와 메트리스에서 자게 되었고, 그 촉감과 질감이 익숙하지 만은 않았다. 그런데 이 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추위’였다. 아프리카는 남반구에 위치한 대륙이고, 그러니 계절이 우리와 반대라 이젠 가을을 지나 겨울을 향해 간다는 걸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그 추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나의 베개는 돌돌 만 패딩이다. 부질없는 행동들을 반복했다. 그 패딩을 껴입었다가 머리가 불편해서 다시 패딩을 벗고, 그러다 역시 하염없는 추위에 패딩을 껴입고. 다행히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마 이 여행이 그래도 패키지 투어인 게 크게 한 몫을 하는 듯했다. 제 때 일어나서 제 때 준비하고, 그래서 제 때 트럭에 탑승하기만 하면, 더 이상 내 책임의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게 일반 대중 교통 버스였다면, 다음날도 내내 긴장해야 되는데 잠까지 못 잔다며, 누구도 듣지 않는 곳에 ‘폭풍 불만’을 토로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 CPA 2차 시험이 다가오는 걸 기념하여(글 작성일자가 5월 19일이었다), 조금이나마 나의 경영학도적인 면모를 뽐내자면, 나는 이 아프리카 투어 여행에 있어서는 ‘유한 책임’ 만을 지면 된다. 지난 5개월을 ‘무한’하게 모든 걸 스스로 해내다 보니, 어딘가에 기댈 수 있다는 든든함이 참 좋다. 든든한 가이드와 든든하게 생긴 트럭 덕분이기도 하겠고.
하지만, 나처럼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 어젯밤에 별다른 투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단순히 이게 ‘패키지’ 투어라고 설명할 수는 없을 듯하다. 조금 더 첨언하자면, 난 ‘불평불만’에 아주 긍정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다. 어차피 해야할 것이라면, 내 입에서 욕과 투정이 조금 나온들 어떤가, 그냥 그 ‘어차피 해야할 것’을 해내면 되지, 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첫 째로는, ‘불평’을한다고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대한 진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고생스러운 여행을 위해서, 이것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다 알고 돈을 냈다. 그래, 솔직히 하자. 돈을 내달라고, 부모를 졸랐다. 어쨌든 나는 이 일정과 환경에 동의를 했다는 것이고, 이곳의 여행은 분명 열악하지만 기존의 설명보다 ‘더’ 열악하지는 않아서, 어린 아이도 아니고 떼를 쓸 수도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러고 싶지도 않고’는, 이런 고생이, 오히려 조금은 무척 신선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 아침에, 겨우 붙인 눈을 애써 뜨며, 아, 이 여행은 평생에 한 번으로 족하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평생에 한 번 뿐일 확률이 높을 이 여행의 매 순간이 조금은 각별하다. 아프리카 늦가을의 추위를 언제 이렇게 생생히 느껴보겠어, 라는 마음이 , 애쓰지 않아도 들었고, 그래서 조금은 이 추위가 그저 신기하게 느껴졌다. 텐트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혹시라도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하면, 아마도 내 사인은 분명 입이 돌아가서 죽은 거겠지, 라고 중얼거렸지만.
아침에 일어나서는, 텐트를 접는 법을 배웠다. 텐트를 펴는 건 혼자서는 거의 불가능한데, 이건 그나마 혼자서라도 가능해보였다. 부품 하나라도 없어지면 내 남은 여행 전체가 차질을 입기에 조심조심 그의 조언을 귀 담아 들었다. 물론, 나는 훈련소 4주 내내 총기 손질에 대한 교육을 받고도, 끝내 혼자만의 힘으로 총기 분해에 실패한 사람이라, 내일 아침에는 또 다시 누군가에게 ‘Please help me’를 연발하게 될 것도 같다만. 이 여행을 일반적인 다른 패키지 여행과는 다르게 만드는 건, 당연히 내가 여기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특별하고 다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겠고, 그 다음에는 바로 이 ‘텐트 치기’다. 캠프사이트는, 즉 숙소의 위치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숙소는 자신이 직접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전의 호스텔이나 알베르게에서도, 어느 정도 자기가 누울 침대를 손질하는 일은 가끔 있었으나, 텐트 치기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자신만의 공간을 건설하는 것이니. 텐트 치기는, 굉장히 작은 고민에서부터 출발한다. 문을 어느 방향으로 둘 것인지, 이다. 그러고는 조립에 가까운 공정을 잠시 거치고, 텐트가 완성되면 그 안에 자신의 짐과 매트리스를 들이기 시작한다. 하루의 일과를 모두 마치고는, 그 곳에서 다시 다음 하루를 준비하고, 또 각자의 아프리카를 추억하며, 이 여행은 더욱의 상징성을 갖기 시작한다. 오늘의 캠핑 사이트는, 어제의 그것보다는 훨씬 더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것처럼 보인다. 막사 같은 화장실과 샤워 시설은, 얼마나 더러울까 싶어 조금 무서워보이기도 했다. 헌데, 무척이나 깨끗했다. 물론 작은 벌레들이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크게 냄새가 나지도 않고, 트집 잡을 구석도 없었다. 아프리카로 여행을 온다면서, 비행기에서 내릴 때 정작 이 거대한 편견을 두고 오지는 못 한 것 같아, 괜히 스스로 겸연쩍어지는 순간이었다.
오늘은 남아공에서의 마지막 밤이었고, 캠핑 사이트는, 남아공과 나미비아의 경계인 ‘오렌지 강(Orange River)’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저 건너편은 모두 나미비아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다가올 나미비아와, 지는 해를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경치가 정말 좋다. 그리고, 기대가 된다. 저곳은 어떤 곳일까. 우리 팀의 쉐프는, 화덕에 스테이크와 소시지, 그리고 옥수수를 구워 주었고, 정말 캠핑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맛도 있었고, 그 맛의 절반은 아마도 낭만에 대한 것 같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하늘을 보니, 온 하늘에 별이 수놓아져 있었다. ‘수 놓아져’라는 표현이 아주 진부한 클리셰 같지만, 이를 표현하기에 더 마땅한 단어가 또 없다. 서울은, 별에 있어서 만큼은 참 빈곤한 도시다. 그 곳이 빈곤한 게 오직 별 뿐이겠냐 만은. 어쨌든 그래서, 오늘의 글은 그냥 여기까지 쓰려고한다. 마땅한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마음껏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앉아 여행기를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오늘의플레이리스트는, 콜드플레이의 ‘A sky full of stars’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