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Day03 (나미비아 피시리버캐넌)
인터넷도, 전기도, 조명도 없는 이 곳의 밤은 그 어느 낮보다 더 아름다웠어요
텐트를 처음으로 혼자 접어봤다. 어설프긴 했지만, 어쨌든 접는 데 성공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던 아침이었다. 작년에 작가 허지웅이, ‘승리의 경험은 공동체에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란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텐트를 접는 데 성공한 경험은, 내 남은 여행에 역시 중요한 자산이 될 듯 하다. 오늘 아침은 간만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오렌지 강에서 카누를 할 것인지 아닌지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냥 캠핑 사이트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충분히 아름다워 신청하지 않았다. 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캠핑 사이트에 여유롭게 머무르면 되었고, 덕분에 강 건너의 멋진 풍경을 열심히 구경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도 좋았다. 트럭에 어느 정도 여유 공간이 생겼고, 짐을 한 번 싹 정리했다. 트럭킹과 캠핑 여행에 적합하도록 짐의 위치와 내용물들을 조금씩 바꾸고 있는데, 일주일 내에는 만족스러운 답이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간절히. 건너편을 바라보며 마신 커피가 참 맛있었다. 스테인리스 컵에, 커피 가루를 넣고 물을 부어먹는 아주 단촐한 커피지만, 그것도 심지어 평범한 ‘네스카페’ 인스턴트 커피이고, 그럼에도 이만한 풍미는 또 없을 것 같았다. 텐트를 처음 접어보는 날 아침이 이렇게 여유로워서 다행이었다. 급하게 일어나서 급하게 준비해야 했다면, 손이 서툰 나는 분명 실수를 하고, 또 텐트 부품을 잃어버리는 사고를 쳤을지도 모른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나미비아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길이 무척 거칠어지고, 또 우리는 그냥 '오픈'된 공간에 텐트를 치고 자게 될 수도 있다며, 몇몇 주의사항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충분히 숙련이 되면 참 좋겠는데.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남아공과 나미비아의 국경을 통과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케이프타운에서 나미비아의 비자를 받았었지만, 혹시라도 잘못 처리된 것이며 어쩌나,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건 비단 아프리카의 화장실 뿐만이 아니었다. 국경 포스트의 직원들은 친절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까다롭지도 않았고, 어느 나라의 세관을 통과할 때처럼 국경을 지났다. 나미비아의 국경을 넘어가면서는, 가이드의 표현대로 ‘아프리카 마사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동남아든 아프리카든 역시 패키지 투어에는 마시지지, 가 아니라, 길이 워낙에 험하고 거칠어 이를 두고 재미있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얘들도 어지간히 해학과 웃음의 민족이다. 어제부터 조금씩 사막의 향기가 나더니, 국경을 통과하고 얼마 후엔 제대로된 사막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정말, 사막이었다. 사막은 그 자체로 사막이기도 했다. ‘사막같은’이라고, 단 한 번도 사막 근처에 가 보지 않았으면서 종종 이런 비유를 사용하곤 했었는데, 이 사막이 눈 앞에 있으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사막 풍경을 조금 찍었고, 이 사막은 ‘자연산 사막’, 그러니까 원래부터 굉장히 오래된사막이라는 가이드의 설명도 들었다. '자연산 사막'이라니, 뭔가 자연산 꼬막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어쨌든.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였나, 하는 시가 잠시 떠올랐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라고 시작하는 시가, 사막의 신전 어쩌구로 이어졌던 기억이 났다. 이 사막의 모래에 시를 한 구절 옮겨 적는다면 어쩐지 더 이상은 폐허가 될 사랑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아 손가락으로 열심히 시도했지만, 잘 쓰여지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 몇 번 동안, 내 연애는 폐허가 되려나 보다.
나미비아의 첫 캠핑사이트에 도착하여, 텐트를 설치했다. 점점 캠핑사이트들이 야생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게 눈에 띈다. 고작 이틀을 했을 뿐인데, 텐트를 혼자서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오, 이런 뿌듯함이란. 겨우 이런 것에도 상당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으니, 우린 여행을 떠나는 것이겠지. 오후에는 굉장히 중요한 일정이 있었다. 이 때문에 가이드는 오늘 운전을 서두르기도 했다. 바로, ‘피시 리버캐넌(Fishriver Canyon)’에서 일몰을 보는 일이었다. ‘캐넌’, 즉 ‘협곡’이라니, 세상에나. 평소에 계곡을 가는 것도 힘든데, 여긴 심지어 협곡이다. 거기에, 미국의 그랜드 캐넌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협곡이라고 한다. 첫 번째가 아닌게 아쉽기도 했지만, 두 번째는 스무번 째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일몰을 보며 맥주를 마시고 싶어서, 숙소 근처의 바에서 맥주를 몇 병 사서 갔다. 차에서 내려, 그리 길지 않은 평탄한 길을 왔다갔다 했다. 아직은, 어딘가를 걸어야 할 때마다 순례길이 떠오른다. 그토록 저주했던 길인데, 이렇게 종종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되어주니 조금은 고맙기도 하다. 좋은 기억이 주로 남는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폐허가 되었던, 혹은 폐허가 될 사랑에도 물이 흐르는 날이 올까. <이터널 선샤인>의 주인공이 영화 말미에 그토록 몸부림을 쳤던 이유도, 결국 남은 건 좋은 기억들이었으니까 그랬겠지. 참 잘 만든 영화다. 귀국하면 다시 봐야지. 일몰의 협곡은, 이런저런 감상적인 생각, 혹은 그저 감상에 빠지기에 충분했던 곳이었다. 건너편으로 해가 지는 게 보였고, 메인 전망대에 올라서는 맥주를 마시며, 일몰의 짙은 여운을 바라보았다. 해는 졌지만, 따뜻한 빛깔이 세상을 감싸고 있었다. 그게 주변의 협곡과 참 잘어울렸다. 패키지 여행이 아쉬운 것은, 이렇게 한창 감상에 빠졌을 때 쯤, 이동해야 될 일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 따뜻함을 마음 안에 담아두기에는 모자라지 않았다.
다시 캠핑 사이트에 도착하니, 저녁이 준비되어 있었다. 고작 3일차긴 하지만, 동행하는 가이드와 셰프가 좋은 편이라 매우 만족하고있다. 음식들도 상당히 괜찮다. 어제는 바비큐였고, 또 오늘은 치킨이었는데, 불에 직화해서 그런지 더욱 맛이 있었다. 불가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니 정말 캠핑을 하고 있구나, 라는 실감이 계속 들었다. 식사 후에는 서로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참 다양한 국적에서, 다양한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이 곳에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들에게 아프리카란 어떤 의미이고, 또 어느 정도의 기대치였을까. 또 굳이 ‘캠핑’을 온 이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몇몇 사람들은 텐트로 바로가지 않고, 불 근처에서 술을 마셨다. 당연히, 그 몇몇 사람들 중에는 나도 있었다. 마시다 보니, 두 명의 크로아티아 사람들과 나만이 남게 되었다. 그들이 가져 온 와인을 함께 마시다가, 중간에 캠핑 사이트 안의 모든 불이 꺼지며 아주 밝은 별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합석한 가이드는, 내게 몇몇 별자리를 알려주기도 했다. 내게는 그저 ‘밝은 별’들일 뿐인데, 그들은 색과 빛의 정도로 별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설명을 이해하는 게 조금 벅차기는 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싶었다. 많은 것들에 쉽게 질리는 성격이기는 하다만, 이 빛나는 별들에는 아프리카에서의 모든 날이 다 끝나는순간까지 지루함을 느끼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일몰의 여운을 조금 더 기억하기 위해. 넬의 ‘Aftergl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