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04 (나미비아 세시림)
One Day before Sunrise
나미비아에서의, 그러니까 제대로 된 사막에서의 본격적인 첫 날 밤은, 생각처럼 춥지는 않았다. 워낙에 시시때때로 날씨가 변하는 곳이라서 그런가, 가이드조차도 이 곳의 날씨를 쉽게 확신하지 못 한다. 어제 함께 술을 마셨던 가이드가, 그런 와중에 아주 멋진 말을 남겼다, ‘Expect Unexpected’, 예기치않았던 것을 기대해, 라는 의미겠지. 삶 전체를 내내 이런식으로 대하는 건 조금 곤란하겠지만, 여행은, 그리고 아프리카에서의 여행에서는 마음 안에 늘 지니고 있으면 좋은 구절인 듯하다. 물론 사실 여행을 하면서 예기치 않았던 일들은 상당한 짜증을 유발하는 게 사실이다. 때론 충동과 마음에만 이끌려 여행을 하려고 하다만, 통제가 되리라 생각했던 변수들이 그렇지 않을 땐 분노와 좌절감까지도 느끼게 된다. 지난 3일의 짧은 경험으로도, 아프리카에 가졌던 몇몇 부당한 편견들이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여기는 여전히 ‘예기치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상당히 잘 짜여진 스케줄이고, 우리의 든든하고 유능한 가이드는 제 시간을 맞추는 건 기본이요, 우리가 충분한 여유를 가질 수 있게 차를 운전하고 일정을 조정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역시 모든 것들에 확신을 가지지는 못 한다. 그가 좋은 가이드인 건, 가능한 변수들을 알려주어 어떤 상황에도 준비를 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어떤 상황이든 그냥 즐기기를 바란다는 장난어린 당부도 잊지 않는다. 뭐, 사실 마땅한 다른 방안도 없지 않은가. 그냥, 즐겨야지. 예기치 않은 것들을 기대하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는, 내내 달렸다. 내일은 ‘꽃보다 청춘’이란 프로그램으로도 유명해진, 나미비아 사막의 ‘Dune 45’라는 모래 언덕에 올라가서 일출을 보는, 벌써부터 감격적인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오늘은 바로 그 근처까지 이동해야 했고, 열 시간 가까이 ‘아프리카 마사지’를 받았다. 덜컹임이 ‘전혀 예기치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예상보다는 훨씬 심한 진동에 조금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거, 은근히 스릴도 있는 걸. 길의 중간에 제대로 된 화장실을 찾는 건 이제 더욱 벅찬 일이 되었다. 자, 좋게 생각하자. 화장실이 없는 게 아니라, 용변을 제 곳에 해결해야만 하는 필요와 당위가 없는 것일지도. 점심은, 어딜 봐도 온통 모래 뿐인 곳에, 차를 세우고 해결했다. 그 와중에 한 끼의 식사를 만들어내는 우리 팀의 셰프가 그저 대단할 뿐이다. 트럭이 워낙 트랜스포머 같은 까닭에, 재료들이 비교적 신선하게 유지되는 중이라, 매 점심마다 질 좋은 샐러드를 먹을 수 있다. 빵은 좀 퍽퍽한 게사실이다만, 이런 것 하나하나에 불평할 이유란 없다. 거기에 오늘 점심에는 쥬스까지 준비되었다. 세상에. 여행 중에 끼니를 챙겨먹는 일이 그저 드물었던 내게는, 아침, 점심, 저녁을 꼬박꼬박 먹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저 만족스러운 일정이기도 하다. 어차피 아주 질 좋고 말끔한 식사를 기대하고 이 곳에 온 게 아니기 때문에, 아직은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간단히 먹는 이 점심에서도 ‘캠핑스러운’ 운치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정말 오랜 시간 끝에, 오늘의 목적지인 세시림(Sesirim)에 도착했다. 유독 피곤했던 날이어서 그런지, 오늘은 차 안에서 주로 잠을 잤다. 이렇게 아무런 걱정과 생각도 없이 이동 중에 잠을 잘 수 있다는 것도 참 마음이 놓이는 지점들 중 하나다. 지난 5개월 간의 영국과 유럽을 여행할 때는, 이동 중에 잠을 청하면서도 숙소까지는 또 어떻게 찾아가나, 라는 걱정이 머릿속을 내내 지배했다. 생판 낯선 곳에 트렁크와 함께 덩그러니 남겨져, 도보, 혹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숙소까지 찾아가야 하는 일정이 상상만으로도 조금 버거웠기 때문이다. 순례길에서는, 말 할 필요도 없이 이동중에 잠을 자는 건 불가능했고. 순례길이나 아프리카에서나, 밤에 쉽게 잠을 청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불면증은 그 때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한데, 그나마 아프리카에서는 텐트에서 못 자면 이따가 트럭에서 자지, 라고 생각하기에 별로 불면증이 큰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는다. 거기에, 텐트에서 수면을 취한다고 해도, 또 그 잠의 깊이가 얼마나 깊겠는가. 이 텐트는 진짜 텐트다. 오직 수면을 위한 보호막, 그 이상 그 이하의 기능도 없다. 한창 글램핑이 유행할 때, 그 곳의 텐트에는 별별 것들이 다 놓여 있는걸 본 적 있었다. 여기의 텐트에 비하면 거긴 사실상 민박이다. 매트리스에서의 잠은, 자도 자도 졸린다는 걸, 이미 훈련소에서부터 깨달았다. 그러니 처음부터 내 수면의 질에 대해서는 기대치가 없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아프리카에서의 캠핑 답게, 밤 늦은 시각에는 이런저런 동물들이 텐트 주위를 서성이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대부분의 캠핑 사이트들이 열린 공간에 위치해 있기때문이다. 그 동물들이 꼬롬한 냄새에 끌릴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가이드는 절대 신발을 밖에 두지 말라고도 신신당부 했었다. 덕분에 가끔은 내가 내 발냄새에 취할 것 같긴 하다만, 그 만큼 야생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져, 자면서도 조금은 즐겁고 재미있다.
와이파이 없이 생활한 지는 이제 나흘 정도가 되었다. 캠핑 사이트들에 가끔 유료 와이파이가 있기도 한데, 그 와이파이가 아주 강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와중에 조금은 비싼 편이라, 굳이 구매할 마음은 안 든다. 아프리카에 있는 내가 무사하다면, 다른 대륙의 다른 이들도 무사하다는 뜻이겠지. 서로에게 무소식이 희소식이리라 생각한다. 오늘의 숙소에는 무려 생맥주가 있었다. 감격적인 마음으로 생맥주를 주문하여 한 잔을 마셨다. 캬. 그 어떤 미지근한 병맥주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이 청량감. 내일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 순례길에서의 일정도, 특히 기상 시각도 어지간히 빡셌는데, 여긴 더 하다. 그래도 트럭 안에서 자면 되니. 류준열과 박보검이 내일의 듄45에서울고 그랬던 것 같은데, 정말 기대되는 일출이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이적의 ‘비포 선라이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