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Day05(나미비아 듄45, Dune 45)
역시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시간
아직까지는기대했던 것 만큼의 사람들끼리 나누는 캠핑스러움, 그러니까 밤 늦은 시각까지 모닥불 앞에 걸터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중얼거리는, 그런 건 조금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단체 생활에 특히 모나게 안 맞는 사람이 없다는 것 만으로도 이 투어의 메이트들이 그저 만족스럽다. 아침 5시 20분 전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떠나야 하는 바쁜 일정이었는데도, 모두가 제 시각에 잘 일어나 제 때 출발할 수 있었다. 남들과 함께 지내면서 서로 폐만 끼치지 않아도 그저 충분히 성공적인 관계라고 믿는다. 갑작스러운 반가움 표시는, 가끔은 오지랖처럼도 느껴지기도 한다. 이건 순례길을 걸을 때 가장 불쾌했던 지점들 중 하나였기도. 22명의 사람들이 우리의 투어를 시작한 게 아직 일주일도 안 됐다. 남은 기간 동안 서로를 더 알아나가면 될 일이고. 방송에서나 사진에서만 볼 수 있던 듄45(Dune 45) 모래 언덕에 직접 올라, 거기서 일출을 보는 일정을 소화하게 될 것이라는 게, 아침에 샤워를 하면서도 별로 믿어지지 않았다. 아, 참고로 전체 투어 인원들 중 샤워를 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런 장한 뿌듯함이란. 모래 언덕이 자아내는 비현실감은, 모래 언덕 바로 앞에 트럭이 정차하는 순간까지 계속됐다. 몇몇 사람들이 우리보다도 더 빨리 와서 오르고 있는 게 보였고, 마침내 ‘듄 45’에 첫 발을 내딛으며 이 걸음이 현실이구나, 라고 더 명징히 느꼈다. 모래 언덕이라, 높이 자체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지만 발이 자꾸 빠져 오르기는 다소 벅찼다. 순례길 이후 오랜만에 느끼는 다리의 통증이었다. 통각은, 아직 조금 남아있던 수면 욕구를 가시게 하여, 모래 언덕을 더 생생히 느끼도록 도와주었다.
해가 뜨기까지는 조금 남았을 때 즈음에 언덕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거기서부터는 신발을 벗고, 고운 모래 위를 맨 발로 걸어다녔다. 처음 느껴보는 모래의 촉감이었다. 그저 좋았다. 입자 자체 뿐만이 아니라, 모래 언덕 전체의 빛깔도 정말 고운 편이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해가 뜨는 것이 보였다. 아, 내가 이 언덕에서, 이 곳 사막 한 복판에서, 일출을 보는구나. 너무 현실 같지가 않아서, 별 느낌이 오히려 없을 정도였다. 해가 뜨니, 모래는 조금씩 더 반짝거렸다. 이런 빛깔의, 또 이런 질감의 모래가 세상에 가능하구나. 직접 경험을 하고 있음에도이게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정도니, 그 동안은 얼마나 아프리카의 감각과 느낌에 대해 모르고 살아왔는지 새삼 깨닫기도 했다. 언제 또 여기를 이렇게 올라올까, 싶은 마음에 다른 일행들보다는 조금 더 언덕 위에 머물렀다. 시간이 지나고 해가 완연이 뜸에 따라 모래 언덕의 색은 더욱 아름더워졌다. 모래, 라고 하면 내겐 그저 ‘갈색의 입자 모임’이란 이미지일 뿐이었다. 이건 ‘별’도 마찬가지다. 별은 그저, 밤 하늘에 밝게 빛나는 게 있다면 그게 다 별이었다. 별의 ‘빛남’에 이토록이나 다양한 층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아프리카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모래 역시도 마찬가지인데, 며칠 째 사막에서 지내며 모래를 계속 보다 보니, 조금씩 색이 다르고, 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반적인 분위기 역시변해가는 게 보인다. 한낱 모래에 불과했던 것들이, 입체적인감동으로 다가올 때의 먹먹함이 있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내 마음 속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감각과 인식의 방 문을 열었고, 그 안이 찬란하게 수놓아져 있음을 확인하는, 조금은 눈물겹도록 애틋한 과정이기도 하다.
언덕에서 내려와서는 늦은 아침을 먹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언덕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가 참 맛있었다. 이후에 사막 몇 군데를 더 둘러본 다음, 오후에 캠핑 사이트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그 사막들 중, 데드 블레이(Deadvlei)라는 곳 역시 아주 비현실적이었다. 오늘은 정말, 종일 영화 세트장에 있는 느낌이기도 했다. 영롱도, 그렇다고 몽롱도 아닌 어떤 이상한 감정이, 데드 블레이에서 피어났다. 아마도 죽었을, 그렇기에 '데드(Dead)'라는 명칭이 붙었을 나무의 형체만 남은 사막을 보고있는데, 전혀 새로운 감각이 생성되는 게 조금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언젠가, 그것도 정말 오래 전 언젠가에, 이 곳에는 물이 흘렀고, 저 나무도 활발히 살아 숨쉬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가, 언제였을까. 얼마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모든 물이 마르고, 나무의 기능도 멈추는 걸까. 멋진 자연에 느끼는 경외감은, 아마 그 작품을 빚어내기까지의 시간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다. 조금씩 조금씩, 하지만 끊이지 않고 이어진 어떤 자연 현상이 오늘의 데드 블레이를 만들었을 테다. 그 엄청난 시간 앞에서, 여기에 비하자면 단촐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그것도 심지어 아등바등 살아내야 하는 나의 운명은 조금 초라하게 보이기도 하다. 그 초라함에 있는 힘껏 매몰되어 삶을 위해 투쟁하다가, 가끔씩 이 자연과 시간의 거대하고 위대한 합작품을 만나게 되면, 조금은 다시 거시적으로 삶을 바라볼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새벽의 듄45에서, 혹은 오후의 데드 블레이에서 그랬듯이. 이는, 그렇게나 조급해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너무 작은 것들에 천착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 울림과 위안을 마음 안에 퍼뜨리기도 한다. 이젠 물도 흐르지 않고, 나무도 숨 쉬지 않던 사막을 나오면서도 안온하고도 생생히 살아 숨 쉬는 감정을 느낀 건 이 울림과 위안 덕분이었을 지도.
캠핑 사이트에는 느즈막히 도착했다. 워낙에 서둘렀고 스케줄도 많았던 관계로, 조금은 피곤한 상태이기도 했다. 그래서 약간 힘에 부친 상태로 텐트를 쳤고, 이후 잠깐 캠프 사이트 근처를 가이드와 함께 투어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생각보다는 지겹지 않았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학살과 그들의 현재 삶의 이야기에서는, 괜히 그룹 전체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지극히도 상식적인 것들이 왜 지난 날에는 그러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을 사냥할 수 있다는 생각을, 어떻게 당연시 할 수 있었을까. 터전을 잃은 그들은, 지난 날의 삶의 방식을 다시 찾을 수도, 그렇다고 새로운 삶을 모색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술에만 빠져지낸다고 한다. 현재진행형이 고통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데, 누구도 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또 그 책임을 어디에 물어야 하는지도 이제는 불분명하다. 지는 해를 보며 그런 설명을 들었고, 다소 복잡한 마음을 갖고 숙소로 돌아왔다. 3일 연속으로 보는 석양이었지만, 오늘의 석양은 그래서일까 조금 더 슬프게 느껴졌다. 해가 지니, 불빛이 별로 없는 아프리카의 캠핑지는 금방 암흑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핸드폰 불빛이나 랜턴을 들고, 다들 불 근처로 모였다. 별이 밝은 것도, 바로 인공적인 불빛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그렇게 밝은 인공 불빛이 없어서, 밝은 별들이 수놓아진 밤 하늘 아래를 여기저기 서성일 수 있다. 별빛은 실용적이지는 못 하다. 아주 적은 거리의 텐트를 찾아갈 때 조차도, 별빛이 큰 힘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대 시대에 별빛이 밝게 내리는 세상은 실용이라는 게 크게 중요한 가치가 아닌 곳이다. 그렇게 실용이라는거대한 녀석이 자리를 비우면, 낭만과 아름다움이 스며든다. 별이 내리는 세상. 살면서 처음보는 남반구의 하늘. 오늘의 모래 언덕도 정말 멋졌지만, 아직까지 아프리카의 최고는 단연 ‘별’이다.
저녁식사는 정말 독특했고, 멋졌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스프링복’ 스테이크였다. 조금 질기기는 했다. 하지만, 큰 위화감 없이 맛있게 잘 먹었다. 이런 식재료들로부터, 다시 한 번 여기가 아프리카라는 걸 재차 실감하게된다. 식사 이후에는,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밤 하늘의 별을 다 같이 바라보기도 했다. 가이드의 말로는, 오늘의 이 캠핑사이트가, 우리 투어 전체 일정 중에 가장 별이 밝은 곳들 중 하나라고 한다. 여름의 오리온 자리가 지고 있고, 또 겨울의 스콜피온 자리가 올라오고 있다는 설명도 들었다. 이곳의 별은 정말 많다. 그냥 눈을 뜨고 있으면 별이 보인다. 이 엄청난 정취에 취했고, 흥을 유지하고 싶어 바에 들어가 맥주를 한 잔 주문했다. 캠프사이트의 바에 앉아, 혹시나 나타날지 모를 얼룩말을 기다렸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너무 커서 그런지, 얼룩말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고, 하나 둘 기다리다 자리를 떠서 이내 나를 포함한 세 명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얼룩말이 나타났다. 고고히 나타나서, 한 5분 정도 경계를 살피더니, 오랜 시간 물을 마셨다. 숨소리마저 죽이고 얼룩말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믿기지 않았다. 오늘은 내내 믿기지 않는 일들이 참 많았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듄 45를 걸었으니까 이소라의 ‘듄’. 얼룩말의 감흥이 아직 잊히지 않아서, 떠오르는 노래를 그냥 대충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