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이렇게 날아

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06~07 (나미비아 스와코프문트)

by Nell Kid
다신 없을 짜릿함

날았다. 정말, 날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다이빙을 한 것이지만, 이걸 '날았다'라고 표현해도 큰 무리는 없을 테다. 노마드 캠핑 투어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텐트가 아닌 숙소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갖는다. 주로 큰 도시를 방문하게 될 때인데, 나미비아의 스와코프문트(Swakopmund)에서 우린 숙소에서의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어제 점심 무렵 숙소에 도착했고, 화장실이 달린 더블룸을 배정 받은 후에, 천국 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와이파이도 빵빵하고, 매트리스가 아닌 침대는 아주 푹신했다. 숙소에 도착하기 직전에, 우린 액티비티 센터에 방문하여 다음 날의 액티비티를 각자 예약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진작부터 이 곳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리라고 벼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아프리카 캠핑 여행을 평생에 또 한 번 할 것 같지는 않았고, 그러다보니 '다음'을 생각하기 보다는 이 순간의 즐거움과 쾌락을 극대화하는 식으로 여행을 하자, 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는데, 스와코프문트에 스카이다이빙이 있다는 것을 안 후 부터는 다른 선택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스카이다이빙을 주저하게 했던 유일한 요소는, 가격이었다. 아, 무슨 놈의 비행기에서 한 번 뛰어내리는 게 이렇게나 비싼 건지.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라는 구절이, 자꾸 내게 그린라이트 신호를 보냈다. 고민을 깊게 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스카이다이빙을 하지 않았다는 후회가 너무 크게 남을 것 같았고, 그 후회를 언제 다시 만회할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액티비티 센터에서, 결국, 스카이다이빙을 '질렀다'. 영국을 여행할 때, 리버풀의 축구 경기를 보러가던 때 이 후, 그리고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비싼 음식을 먹을 때 이후로, 참 오랜 만의 '지름'이었다. 영수증을 보며, 몰라 이제 이왕 이렇게 된 거, 라고 생각했다.

20170523_065352.jpg 전 날 스와코프문트로 가는 길에 보게 된 야생 얼룩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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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3_083414.jpg 역시 스와쿠프문트로 가는 길에, 사막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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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3_102111.jpg 스와코프문트 근처. 케이프타운을 떠나고 드디어 마주한 바다.

그리고, 숙소의 침대에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걸까, 라는 생각이 아득하게 몰려왔다. 금액적인 후회는 아니었다. 이는 충동이라기보다는 오래 전부터 계획하고 또 각오한 것이었으니. 다만, 진짜 내일 하늘에서 뛰어 내릴 수 있겠어, 라는 의구심이 계속 들었다. 스카이다이빙의 비용을 고민하느라, 정작 더 중요한 나의 배짱과 용기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것이었다. 세상에. 그 상공에서 뛰어 내린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그저, 긴장되고 두려울 뿐이었다. 안전하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겁을 먹는다는 것 역시도 한 번 해보고 나면 촌스러운 기우로 승화 될 일이라는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새로운 차원의 자극이고 경험이며, 미지의 세계로 입장하는 것에 가까웠다. 미지와 무지는, 종종 두려움을 수반한다. 아무리 무서운 놀이기구라도, 일단 이 놀이기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하다는 걸 이런저런 경험으로 알게 되면 크게 두렵지 않고 오히려 순간을 즐길 수 있다. 스카이다이빙은, 여태껏 내 인생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감각의 영역이었다.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감쌌다. 으, 별 일은 없겠지만, 별 일이 생길 것 만 같은 이 느낌은 도대체 뭐지. 그룹 내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래 언덕 위에서의 바이킹을 선택했다. 그래, 저것도 충분히 재미있고 안전할 텐데, 나는 왜 이 미친 선택을 내린 걸까. 주로 이런 '뼈아픈 후회'들로 어제 저녁을 보내다 잠이 들었고, 그래서 오늘 아침은, 기어코 찾아왔다. 나의 스카이다이빙은 오후 시간대였고, 그래서 아침에는 멤버들 대부분이 바이킹을 하러 가 무척이나 조용했다. 나의 룸메이트도 떠난 모양이었고, 모처럼만의 독방 침실을 잠깐이나마 만끽했다. 그 상태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어차피 고민을 해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겠다는 생각에, 낮잠을 청했다. 고작 두 시간 정도 밖에 안 잤지만, 근 보름 만의 숙면이었다. 덕분에 기분과 컨디션이 모두 나아졌다.


바이킹에서 돌아온 이들은, 내게 스카이다이빙을 앞 둔 기분이 어떠냐고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내 영어가 짧아서 다행이었다. 한국어로 이야기 할 수 있었다면, '씨발, 좆 된 것 같아'라고 대답했을 텐데, 다행히 영어로 이야기해야 해서 나의 경박하고도 천박한 언어 습관을 들키지 않았다. 예약한 두 시가 되자, 스카이다이빙 업체에서 숙소로 나를 픽업하러 왔다. 아, 마실 차는 아직 안 주는 걸 보니 저승사자는 아니구나. 이제 정말 가는 것이었다. 시내를 벗어나 조금 달리니, 작은 비행장이 나왔다. 사무실로 들어가, 우선은 서류 작성을 먼저 했다. 본인은 자발적으로 이 스카이다이빙에 참여 하는 것이고, 또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며... 잠깐, 책임을 진다고? 어떻게? 뭐 이런 공포스러운 내용이었다. 이걸 다 읽고 외운다 한 들, 어차피 만일의 사태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저 얼른 사인을 했다.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다. 만일의 경우는, 그저 모르는 채로 두고 싶었다. 이후의 시간은 조금 정신없게 흘렀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았고, 어떻게 뛰어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있었다. 자세는 비교적 간단했다. 생의 의지에 불 타, 열심히 그의 설명을 들었다. 이후, 장비를 착용했다. 두근. 전문가와 함께 뛰어내리는 것이기는 하자만, 그래도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하필, 그리고 어쩌면 다행히도, 나의 순서가 가장 먼저였다. 활주로로 나가, 비행기를 맞이했다. 아무리 봐도 별로 튼튼해보이지는 않는 비행기였다. 조종사가 먼저 탔고, 나는 그의 바로 앞에 앉았다. 이윽고, 비행기가 이륙했다. 정말로 빼도박도 못하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생각보다 너무 높이 올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밑의 바다와 사막의 풍경이 아름답긴 했다만, 그걸 신경쓸 겨를 따위가 존재할 리 만무했다. 어느 정도의 고도에 이르자 조종사는 그와 나의 몸을 하나로 연결했다. 자, 이제 당신과 나는 운명 공동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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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4_143754.jpg 차는 비행장에 도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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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4_144402.jpg 장비들이 이 곳에 보관되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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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4_142624.jpg 여기서 동의서를 썼다.

우린 함께, 비행기의 문 쪽으로 조금씩 자리를 옮겼다. 그가 나의 뒤에 있었기에, 발을 먼저 비행기 밖으로 내미는 건 나의 몫이었다. 정말 떨리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발을 밖으로 내밀었다. 이윽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 그가 카운트다운을 외쳤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공기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 자유 낙하의 순간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아까 오리엔테이션의 자세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면 이런 느낌 비슷할 것 같다고, 지금에서야 조금 추측이 될 뿐이다. 아무런 정신도 없이 부우웅, 내려가던 중에, 뭔가 '탁' 걸리는 느낌이 들더니 하늘로 조금 솟구쳤다. 낙하산이 아주 안전하게 잘 펴진 순간이었다. 그러자, 그렇게나 세상 평화로울 수 없는 풍경이 나를 반겼다. 조용하고, 또 적막하고, 그러면서 주위의 사막과 바다를 한껏 구경할 수 있었다. 원을 그리며, 우린 하늘을 날았다. 때론 왼쪽으로, 때론 오른쪽으로. 천천히 비행을 하던 와중에는 새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윽고는, 비행 전체를 즐기기 시작했다. 정말 재미있었다. 롤러코스터 같기도 했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풍경과 스릴이었다. 두 팔과 다리를 쭉 뻗고, 하늘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마음껏 소리지르기도 했다. 이런 차원의 자유로움도 역시 처음이었다. 낙하산이 제대로 펴졌다는 게, 엄청난 안정제였던 것 같다. 더 이상 별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그때부터 느꼈고, 다행히 대부분의 비행을 잘 즐길 수 있었다. 오히려, 마지막이 되자, 너무 짧아서 아쉬울 정도였다. 안전하게 착지까지 하였고, 나의 첫 비행은 이렇게 끝났다. '첫'이라고 한 것은, 아마도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도전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스카이다이빙을 하기 전과 이후의 내 인생이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 무모하고도 겁 없던 '뛰어내림'은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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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0027061.JPG 대충 이 정도의 높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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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8).png 이렇게 뛰어
1 (69).png 이런 풍경을 감상, 혹은 이 풍경에 절규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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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2).png 무사하게 착지라는 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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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4_160849.jpg 바에 앉아서 본, 다른 이의 스카이 다이빙.

내려와서는, 아주 뿌듯한 감정으로, 이승에서의 맥주를 즐겼다. 오래도록 쌓여있던 긴장이 풀리며, 취기가 조금 더 빨리 오르는 듯도 했다. 바 건너편의 비행기들을 보며, 내가 방금 저기서 뛰어내렸다는 걸 복기하려고 애썼으나, 동시에 쉽게 믿어지는 사실은 또 아니었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이 계속됐고, 정말 강렬한 자극이 이어졌다. 아프리카는, 참 여러 의미의 '처음'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다. 그 '처음'들은, 아직은 모두 다 기분이 좋은 것들이기도 하다. 미지의 세계와 미지의 대륙에서의, 미지의 도전.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메이트의 '하늘을 날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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