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08 (나미비아 스피츠코프)
필요한 것들은 다 있는 걸
캠핑이 다시 시작됐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정확히는, 와이파이를 향한 그 절실하고도 간절한 열망들아. 가엾은 내 스마트폰, 또 비행기 모드에 갇혔네. 그래도 습관이 참 무섭다고, 캠핑과 트럭킹의 관성이 지난 이틀의 휴식에도 불구하고 남아있었다. 이틀동안 무척이나 잘 쉬었더니 다시 시작할 힘이 충분하기도 했고. 스카이다이빙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껏 제 멋에 취한 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제의 다이빙 동영상을 한 번 더 보았다. 와, 이건, 내가 봐도 조금은 존나 멋진 걸. 스스로가 존나 멋지게 느껴지는 순간은 살면서 별로 없다. 앞으로도 드물 테고. 그러니 ‘겁나 멋지게’ 보이는 이 순간을, ‘겁나게’ 즐겼다. 출발 시각이 그리 이르지는 않아, 아침을 먹고도 침대에 꽤 오래 앉아 있었다. 며칠 후 빈드후크까지는, 다시 텐트에서의 취침이 계속된다. 순례길 위에서의 알베르게 침대들이 무척이나 불편한 축에 속했는데, 텐트의 불편함은 매트리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래도, 이 딱딱한 매트리스에, 또 나름 캠핑 만의 낭만이 있다. 잘난 척을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지만, 한국에 돌아가서 아주 잘 정비되고 또 잘 ‘차려진’ 캠핑장에 가면, 그것들이 다소 귀엽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아주 편하고 감사하게 그 순간을 즐기기야 하겠지만. 그 때 혹시라도, 내가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말이야, 따위의 식의 재수 없는 소리 만은 안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틀 만에 다시 탄 트럭의 덜컹거림이 나쁘지 않았다. 가끔은 이렇게 트럭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 무척 고되고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쩐지 아프리카에서 벗어나는 날부터 이 날들을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 역시도 불현듯 들었다. 첫 날 부터 지금까지 내내, 참 좋고 재미있는 여행이지만 내 인생에 두 번은 못 하겠다, 라는 모순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젊기에 가능한 여행이다. 나의 젊은 날은, 아프리카 캠핑의 40일로도 대신 묘사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여행을 하며 어떤 도시를 방문하든, 나는 어쩌면 이번이 이 도시에서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견지하고 있었다. 여행의 기회는 평생 동안 무척 제한되어 있고, 그러니 어쩌다 생기는 그 감사한 기회들에, 나는 주로 가보지 않은 곳, 그리고 더 낯선 곳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프리카는, 또 이런 트럭킹 캠핑 여행은, 기약이 없는 것도 모자라 평생에 다시 한 번 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치조차 없다. 일단 이 정도로 시간을 뺄 수 있는 날이 쉽게 오는 게 아니니까. 모르지 뭐. 이러고 몇 년 후에 다시 방문하게 될 수도. 사람 일은 누구도 확신하지 못 하니까. 그렇게 좋았던 톨레도에 단 3년 만에 다시 찾아올 수 있으리라고, 그 때 당시에는 생각조차 못했었다. 그래도, 정말 큰 결심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여행이 바로 이 트럭킹인 건 사실이다. 고생을 하면서도, 이게 순례가 아닌, 또 고행이 아닌 여행이라는 게 참 좋다. 텐트를 치고 트럭에서 이동하고 하는 것이 다소 벅차기는 해도, 여행의 일부니까 행복하게 즐길 수 있다. 내 젊은 날에 이 강렬한 기억을 남길 수 있다는 게 그저 행운이기도 하다.
오늘의 이동 거리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덧 사막에서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내일 모레에는, 아주 큰 국립 공원인 에토샤 국립 공원으로 진입한다. 처음 사막을 보았을 때가 벌써 일주일 전이었다. 어느덧 투어도 8일 째에 접어들었고. 어떻게 흐르는 지도 모르는 채, 매 순간이 모두 다 신기하고, 또 대부분은 재밌었던 날들이었다. 그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어제 했던 스카이 다이빙이겠지만, 난 매일 저녁부터 쏟아지는 별들이 더욱 좋고 사랑스럽다. 아프리카라는 대륙은, 내게는 ‘별’이다. 이토록이나 빛났던 하늘을, 아마 평생을 살아가며 내내 그리워하겠지. 조용히 별을 보며, 참 ‘별별’ 생각들을 다 하곤 한다. 미래에 대한 막막한 고민부터, 지난 사랑, 또 삶 까지. 물론 그렇게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다. 지난 후회든 앞으로의 진로든, 온갖 데이터들을 놓고 아주 골똘히 고민한다고 해도 답이 나오기란 정말 어려운 질문들이다. 별은 별이고, 별이 답을 줄 수는 없다. 그걸 뻔히 잘 알면서도, 나는 매일 밤마다 다시 별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풀어 놓는다. 생각의 별자리를 그려나가는 과정인데, 어쩐지 이 별자리에는 유난히도 '희망'이란 별이 가장 빛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매일 밤마다 이런 별들을 볼 수 있다는 게 아직도 그저 신기하고 황홀하다.
오늘 숙소는 여태까지의 캠핑 사이트들 중 가장 자연주의적인 곳이었다. 샤워 시설이 없는 건 물론이고, 변기도 그냥 아주 큰 구멍 하나만 있는, 그런 좀 뜨악한 부분도 있었다. 분명 열악한 것인데, 이게 ‘열악’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열악이란 표현을 쓰기 위해서는, 삶을 지탱하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 결여되는 수준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이 곳에서는 와이파이든 뭐든 별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부족과 결핍의 차이랄까. 부족하기는한데, 무언가가 결핍되었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물론 와이파이든 뭐든, 있으면 좋다. 아주 편리하기도 하고. 와이파이가 있었다면 저녁 시간이 훨씬 덜 심심하긴 했겠지. 샤워도 마찬가지다. 모래가 묻은 몸을 따뜻한 물에 씻어낼 수 있었다면, 그것도 참 개운했겠고. 하지만 그런 게 없이도 우리의 캠핑은 충분히 가능하다. 모닥불을 피우고, 가스 하나로 음식을 하며. 또 되도 않은 영어로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한다. 내 평소 성향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같이 별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 게 꽤나 즐거운 일이다. 유일한 소일거리이기도 하고. 순례길과 아프리카를 연달아 여행하며, 내 세계의 외연이 조금은 넓어지는 듯한 느낌도 든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같은 곳을 가고, 또 같은 곳에서 자는 이 신기한 경험을 통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 살면서는 '같이'라는 단어들에 거부감부터 느낄 필요는 없을 지도.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로이킴의 ‘상상해봤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