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09 (나미비아 힘바 부족 방문)
사람이 사람을 구경하는, 이런 기괴함과 왜곡됨.
여행자의 윤리라면 무엇이 있을까. 거창한 주제이긴 하지만, 이는 여행을 하며 내가 종종 의식적으로 생각하려고 했던 생각거리이기도 하다. 섣불리 우선 내린 결론은, 나의 유희를 위해서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낙후된 골목이 미관적으로는 예쁠 수 있지만, 그 곳에서는 매일의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혹시 내가 무심코 찍는 사진이 그들에게 불쾌한 의미로 인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순례길을 걸을 때부터, 아마도 그 길이 너무 힘들었고 또 이런 고민할 거리 자체가 별로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에 대해서 생각하는 걸 멈추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오늘의 일정은 다소 마음을 복잡하게, 또 조금은 착잡하게 만들었다. 아프리카의 원주민 부족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힘바 부족이었다. 그들은 정말, 원주민들이었다. 속옷조차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그들의 모습에 처음에는 조금 충격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구경’하는 건 또 무슨 행위일까 싶었고, 자신들을 구경케 함으로써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이들의 삶은 또 어떤 것인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원주민들이고, 이런 생활이 그들에게는 전통이고 문화이기에, 안동의 하회마을을 방문할 때와 마찬가자의 기분이면 족할 것을 괜히 불편하게 고민한다 싶었다가도, 너무 낙후된 그들의 생활, 그리고 빙 둘러 앉아 값 싼 기념품 하나를 팔기 위해 내내 ‘헬로’라고 이야기하던 모습을 보면 또 어지러워지는 게 사실이었다.
한 상인으로부터, 팔찌 하나를 구매했다. 바가지인 것 같았으나, 굳이 값을 깎지는 않았다. 그리고, ‘부르는 값’을 그대로 주는 ‘착한’ 소비를 했다는 우습게도 으쓱한 윤리적 자아도취에 잠깐 빠지기도 했고, 이윽고 그런 수준의 윤리 의식에 자족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약간의 자기 혐오도 들었다. 순식간에 내 바닥을 목도한 듯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다소간의 수치심에,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잠깐 땅을 내려다보았다. 아,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고작 이런 소비를 하고, 잠시나마 스스로를 ‘윤리적’이었다고 ‘우쭐’했었다니. 결국 여행은 즐겁자고 하는 것이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집에서 가만히 쉬는 게 편하기는 하겠지만, 여행보다 즐겁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어서 굳이 비행기를 타고 이 멀리까지 왔다. 그래서 매 순간 가장 우선시되는 건 나의 행복이고, 쾌락이다. 하지만, 그걸 굳이 어떤 이의 기분을 훼손하면서까지 추구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왕이면, 현지의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의 일상을 종중하는 여행자가 될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바라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속 깊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라는 식의 자기 충족적 뿌듯함 만을 좇았던 게 아니었을까. 괜한 자괴감이 들었다. 다 컸다고 생각할 때마다,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앞으로의 길이 보인다. 언제쯤이면 조금 더 단단하고 속깊은 어른이 될 지 모르겠다.
복잡한 기분의 투어를 마치고, 캠핑 사이트로 돌아왔다. 사막에서의 날은 어제 끝나고, 이제 내일은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동물들을 구경하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참 빨리 흐른다. 벌써 9일 째다. 처음 이, 삼일의 캠핑은 너무 느리게 흘렀는데, 이젠 정신을 차려보니 전체 캠핑의 4분의 1이 지나 있다. 아프리카가 끝나면, 내 여행도 역시 종결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네팔에서의 보름 정도가 남아있기는 하다만, 그건 전체 여행의 에필로그로써의 여행이다. 인적 드문 낯선 곳에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요양을 취할 생각이다. 안나푸르나 하이킹을 이, 삼일 정도라도 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러기에는 순례길 이후 겨우 괜찮아진 짐을 다시 어떻게 하이킹 모드로 바꾸고 해결할 방안이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안나푸르나가 궁금하긴 하다만, 그건 포카라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다 한 두 번쯤 가보는 것으로 하지. 어쨌든. 아주 심한 치매가 찾아오지 않는 이상, 그리고 그런 치매가 찾아오더라도 이 날들의 기억만큼은 선명히 남을, 이 여행이 정말 끝나간다. 전체 일정이 7개월에 가깝기에, 남은 한 달 이상의 기간은 분명 길긴 하지만 그 무게가 그리 무겁지는 않다. 이게 어떤 의미로 내 삶에 기억될지, 나 역시도 기대되고 또 궁금하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도대체 아프리카에 가는 날이 오긴 오나 싶었고, 아니, 심지어 그 때는 순례길을 걸을 수 있으리란 생각조차도 못했었지. 한국의 내 방이 조금 그립기도, 그러면서도 이 여행의 마지막이 못내 아쉽기도 한 복잡한 마음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내내 마음이 복잡했네. 이런 날도 있는거지. 단순하고 단촐하게 생활한다고, 어찌 맨날 생각까지 단순할 수 까지 있겠나.
여행의 끝을 생각하니, 아쉬우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아, 이제는 익숙한 곳에서 아무 걱정도 없이 그저 쉴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몰려오기도 한다. 앞으로도 별 일이 없어야 되긴 하겠다만, 지금까지 우선 무사했다는 것도 참 따뜻하고 다행스러운 사실이다. 차를 놓친 것도 손에 꼽을 정도니. 나처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한 두 번의 실수로도 깊은 회의감에 빠질 수 있다. 그런 큰 슬럼프 없이 지금껏 여행을 잘 할 수 있었다는 것에, 우선 정말 깊은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오늘 캠핑사이트에는 바가 있고, 바에는 생맥주를 판다. 오랜만이야 친구. 역시 하루의 마무리에는 너지.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라즈베리필드의 ‘스물셋,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