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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에 환영합니다

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10~11(나미비아 에토샤국립공원)

by Nell Kid
우린 잠시 초대된 사람들이었을 뿐

아프리카에 왔다는 것이 꼭 문자 그대로 동물들의 천국으로의 방문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틀동안 에토샤 국립 공원에 있었다만, 나도 많은 동물들을 보지는 못 했다. 사자 두 마리, 치타 세 마리, 하이에나 여섯 마리, 코뿔소 여덟 마리, 코끼리 40마리,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던 얼룩말과 스피링복, 그리고 기린과 겜스복 등 이런저런 다른 동물들까지. 이 정도면 자랑하는 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을 텐데, 당연하다. 자랑이다. 이걸 어떻게 자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황홀한 순간들이었다. 고화질의 디스커버리 채널이 눈 앞에서 바로 재생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라니. 세상에나.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역시. 사실 나는 자연의 동물들이 있든 말든, 또 죽든 살든 별 관심이 없다. 과학을 워낙에나 싫어하고, 자연 현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흥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토샤 국립공원을 방문하면서도, 보면 보는 거지, 라는 식으로 생각했었다. 에토샤 국립 공원은, 자연이 정말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는 곳이다. 환경 보존을 위해 지켜야 할 것도 많고, 지키지 않았을 때 내야 하는 벌금도 상당하다. 아주 넓은 공원 여기저기에 동물들이 살고 있고, 우린 그들의 거주 지역을 잠시 탐방하는 방문객일 뿐이었다. 주된 개체가 인간이 아닌 세상이 이 지구 상에 얼마나 더 있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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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6743049223.jpg 너무 많이 보아 이제는 시들해진 기린과 얼룩말들

사파리를 목적으로 개조된 트럭 답게, 우리의 트럭 암스트롱은 국립 공원에서의 게임 드라이브를 하기에도 참 적합한 친구였다. 게임 드라이브는, 아프리카의 세렝게티나 다른 국립 공원들을 여행할 때, 차를 타고 관람하는 사파리 투어와 비슷한 의미다. 공원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도 않아, 얼룩말과 스프링복들이 보였다. 이들을 시작으로, 대자연이 그대로 펼쳐졌다. 대자연은, 너무도 대자연이었고, 따라서 동시에 동물원은 아니었다. 어디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우리 그룹은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창문 밖을 바라보며 게임 드라이브를 진행했다. 그토록이나 신기했던 얼룩말과 스프링복이 다소 지겨워질만큼, 얼마 되지도 않아 정말 많은 동물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린이 등장했다. 야생 기린. 새끼 기린까지도 보였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나쁜 점을 딱 하나만 꼽자면, 좋은 것들을 볼 때 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다는 점이다. 비현실적으로 좋고, 이게 과연 정말 진짜인가 싶은 마음에, 오히려 마음은 조금 덤덤할 때도 있다. 마치 내가 애정해 마지 않는 밴드 넬의 콘서트에 가서, 너무 벅찬 나머지 현장의 라이브를 들으면서도 쉽게 현장감을 느끼지 못 했을 때와 비슷하다. 그래서 그 밴드의 노래들 중에 '믿어선 안될 말'이 있는 건가. 이건 아닐 테고, 아무튼. 듄 45도 그랬고, 또 스카이 다이빙도 마찬가지였으며, 바로 앞에 얼룩말과 기린들이 돌아 다니는 데도 조금은 멍한 기분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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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3934_10209077768246022_2945098345789196725_n.jpg 첫 날 저녁, 캠프 사이트에 찾아온 코뿔소들

아프리카 여행 뿐만 아니라, 이번 여행을 전체를 통틀어 생각해보아도, 나는 운이 무척 좋은 편이다. 큰 불상사가 여태껏 없었기도 했고, 중요한 걸 잃어버린 적은 아직은 없으며, 또 설렁설렁 다니던 중에 하루이틀 정도는 굉장히 목적지향적인 사람이 되어 반드시 봐야할 게 있으면 그걸 볼 수도 있었다. 이를테면 오로라를 목격했을 때 처럼. 에토샤 국립 공원에서의 이틀 동안도, 목격하기 쉽지 만은 않은 동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첫 날 첫 게임 드라이브에서는 치타와 사자를 보았다. 저 멀리서 치타와 사자가 움직이고 있다는 가이드의 이야기를 듣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망원경을 빌려서 그들을 확인했다. 화면을 아무리 확대해도 도저히 그들을 담을 수 없는 내 카메라의 한계를 절감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좋은 카메라를 들고 오는구나. 싸구려 디카라도 들고 올 걸 그랬다고 조금 후회했다. 뭐, 그 디카라도 아마 사자와 치타를 담을 수는 없었을 것 같지만. 특히 사자를 볼 때 무척이나 뭉클했다. 어릴 적 가장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이 바로 라이언킹이었고, 지금도 좋아하는 야구 팀은 삼성 라이온즈며, 거기서 가장 존경하는 선수의 별명이 역시 ‘라이언 킹’이기도 하다. 내 삶은 사자와 궤를 같이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갈기가 가득한 숫사자가 아니라 아쉽기도 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야행성의 사자를 한낮에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조금은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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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4234_1980587635504552_4428929657648014361_n.jpg 둘 째날 저녁에, 캠프사이트에 찾아온 코끼리들

육안으로는 쉽게 확인할 수 없던 치타와 사자를 보고, 뿌듯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원래 인간이란 동물이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존재라, 좀 더 가까이에서 저런 동물들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했다. 그냥 한 번 앉아서 지켜보기나 해보자, 라는 생각에 첫 날 숙소 근처의 물가를 찾았다. 물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도 설치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조용히 동물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코뿔소가 나타났다. 코뿔소. 정말로 코에 뿔이 있었다. 두 눈으로도 정말 선명히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살다살다 야생 코뿔소가 물을 마시는 걸 다 보고, 이게 진짜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한 마리도 아니고, 못 해도 여덟 마리 정도는 충분히 되어 보였다. 경이로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인내심이 만든 작은 기적이기도 했다. 코뿔소들이 사라지고 조금 후에는, 하이에나들이 그 자리에 등장했다. 라이언킹을 볼 때는 쌍놈들도 그런 쌍놈들이 없었는데, 여기서 보니 그저 반갑고 신기했다. 사실 주위에서 하이에나라고 안 했다면 나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하이에나라는 설명을 듣고, 주변이 조용했던 관계로 그들의 물 마시는 소리와 울음까지 들을 수 있었다. 전율이 돋았다. 야생도 이런 야생이 또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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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9420_10208979381592806_2662570063259417684_n.jpg 진짜 코끼리를 보았다!

하이라이트는 두 번째 날이었던 오늘이었다. 오후의 게임 드라이브였고, 우린 혹시 굉장한 동물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아마도 안 되겠지, 라는 체념이 섞인 채 트럭에 앉아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스프링복과 얼룩말들을 차례로 떠나보내던 중, 일행 중 몇몇이 다급하게 차를 멈추라고 가이드에게 말했다. 코끼리가 나타났던 것이었다. 물가에 한 마리가 있었고, 다른 두 마리는 이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정말 놀란 마음에 코끼리들을 스마트폰에 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 멀리서 족히 서른 마리 가까이 되어 보이는 한 무리의 코끼리들이 물가로 우르르 몰려왔다. 코끼리 런웨이. 새끼 코끼리들도 있었고, 그 작은 몸짓으로 어른 코끼리들을 따라 코로 물을 마시는 게 그렇게 귀여워 보일 수가 없었다. 계를 타도 이렇게 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프리카에 와서, 특히 이 투어를 시작하고 나서는, 날마다 내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는 중이다. 이런 굉장한 것을 살면서 보리라는 상상조차 못 했기에, 아무 준비도 안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오늘 숙소 근처에도 물 웅덩이가 있다. 그리고 또, 코끼리가 와서 물을 마시고 있다. 믿어지진 않아도, 전율이 돋는 순간들이다. 지금 여행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빨리 쟤네를 더 감상해야지.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레이첼 야마가타의 ‘Elephant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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