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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처음은 추억이 되겠지

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12~13 (보츠와나 첫 날)

by Nell Kid
지금, 바로, 여기서, 내가 여행하고 있음을

나미비아를 벗어나 보츠나와로 이동했다. 이 나라에 들어온지 딱 열흘 만이었다. 며칠 후에 잠깐 하루 정도 다시 경유하기는 하고, 그 하루 때문에 복수 비자를 받느라 돈을 더 내야 했지만, 나미비아에서의 본격적인 관광은 이제 끝이났다. 살면서 처음 해 본 것들이 나미비아에는 참 많이 있다. 모래 언덕을 올랐던 것, 사막에 방문했던 것, 야생 동물들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것, 그리고 스카이 다이빙까지. 어릴 때부터 세계 지도를 보며, 아주 어줍잖게나마, 언젠가는 저 나라에 가는 날이 있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은 나라도 있었고, 또 한 편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방문하는 일은 없으리라 확신했던 나라들도 있었다. 나미비아는 후자였다. 더 솔직히 말해서는, 나미비아가 어디 어떻게 위치한 나라인지도 잘 몰랐다.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하며 여기가 남아공의 인접국이라는 걸 처음으로 제대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 나미비아를 지나 지금 보츠나와까지 왔다는 건, 이 자체로도 조금은 믿기지 않는 사실이기도 하다. 노마드 트럭킹 투어라는 여행 특성 상, 한 도시에 머무르는 시간은 정말 얼마 없다. 머무른다고 말 하기도 뭐 하지. 그냥 텐트를 치고 자는 게 끝이니까. 그렇게 바쁘게 이동하고, 텐트치고, 다시 이동하다 보니, 열흘 정도만에 나미비아의 참 많은 걸 ‘압축적으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아프리카로 자유 여행을 다시 올 지는 모르겠다. 만약에 혼자 계획하는 여행을 하게 된다면, 이 보다는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이번 루트를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모든 게 낯설었던 이 국가에서, 안전과 치안, 그리고 교통과 먹거리에 대한 걱정 없이 관광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여기서만큼은 패키지 여행의 은총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

DSC03175.JPG 보츠와나 국경 근처에서 식사를 즐기는 우리들

아프리카에서의 여행이 끝나기까지는 아직 정확히 4주가 남아있다. 하지만 전체 여정은 빅토리아 폭포 전후로 크게 나뉠 수 있다. 그 측면에서는, 여행의 전반전은 3분의 1도 안 남은 셈이다. 빅토리아 폭포에서는 호텔에서 이틀 정도 휴식을 취하고, 그 다음에는 열흘 정도의 캠핑 일정이 계속 이어진다. 30일이 되기 전까지의 그 열흘이 아프리카 여행에서의 가장 큰 고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조금은, 아침 일찍 일어나 여행 채비를 하고, 다시 저녁에는 내가 잘 곳을 만들어야 하는 생활이 약간 버겁기도 하다. 익숙해지긴 했지만, 익숙해졌다고 모든 것들에 무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다만, 나처럼 지랄맞게 예민한 사람이 아직까지는 별다른 회의감 없이 이 여행을 즐기고 있는 건 조금 스스로도 기특하고 신기한 지점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재수 없을 정도로 온갖 깔끔을 다 떨어대곤 하는데, 여기는 별 기대치가 없어서 그런가, 작은 청결함에도 감복하고 큰 불결함에도 그러려니 하고 있다. 그리고, 내 감각이 너무 많이 무뎌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크게 더럽게 느껴지는 순간도 별로 없었다. 물론 많은 곳들이 열악한 건 사실이다. 별 두 개 짜리 싸구려 호텔 방이라도, 그곳이 천국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 품었던 우려에 비하면, 아직은 이 만 한 게 어디냐, 라는 수준이다. 열흘이 넘게 지났음에도, 또 그런 ‘열악함’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당장 오늘 숙소의 샤워 시설도, 세상에나, 또 이렇게 열악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열악함을 보면 와, 엄청난데, 싶은 헛움음이 나온다. 그러다가 오늘처럼 뜨거운 물이 그 와중에 나오는 날이면, 어머나, 너 좀 수줍게 멋진 친구구나, 라고 혼잣말을 하며 행복한 샤워를 할 수도 있다.

DSC03143.JPG 나미비아의 수도 빈드후크
DSC03176.JPG 오늘 일정이었던 전통 춤 관람
DSC03202.JPG 모닥불에서 구워 먹은 마시멜로. 진짜 맛있었다.

케이프타운에서의 투어를 출발할 때는 21명이 있었는데, 각자마다 목적지가 달랐던 관계로 이제는 한 두 명 씩 이별을 하고 있다. 어제는 그 이별들 중에서 특히 더 아쉬운 이별이었다. 매일 밤마다 함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던 크로아티아 친구들이 떠났다. 아, 역시 우정은 나쁜 걸 같이 할 때 피어나는 것이었다. 애틋한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21명의 사람들 중에, 나이로비까지 가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단 세 명에 불과하다. 투어의 첫 여행기를 쓰던 날에,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하게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모였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가장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 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게 조금은 뿌듯한 사실이기도 하다. 41일의 여행을 모두 마치면, 아프리카 남단을 횡단한 셈이 된다. 스페인을 가로질렀던 순례길이 너무 고생스럽고 강렬한 기억이라 그렇지, 이 역시도 참 대단하고도 멋진 여정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렇다. 이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이고, 그래서 매일 텐트를 치고 트럭에서 불편하게 이동하는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가끔은 딱히 낭만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만, 처음 트럭킹 여행이 있다는 걸 들었을 때 이 여행객들을 얼마나 동경했었는지 생각해보았고, 그러자 그 멋지고 부러운 여행을 직접 하고 있다는 실감이 어렴풋이 들었다. 7월에 귀국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라는 고민이 조금씩 들고 있었는데, 굳이 바로 복학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아직은, 영국, 유럽, 그리고 순례길 여행이 내 삶에 어떤 의미로 남을지 잘 모르겠고,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틈도 없었다. 여행 역시 고민, 결정, 노력, 최선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이들로부터의 진공 상태에서 지난 7개월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게 나의 삶에 꼭 필요할 듯하다. 너무 지각 인생을 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순례길을 걸으며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희미하게나마 받았다. 뭐, 정 늦으면 순례길에서처럼 기차를 타면 되지. 내 삶에 그 정도 호의는 베풀어줄 수도 있으니까.


밤이 깊었고, 저녁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러던 중 비보를 접했다. 오늘은 고기가 없다는. 세상에. 아쉽긴 하다만, 눈물을 머금고 채식을 해야지.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홍재목의 ‘당신이 그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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