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27 (말라위 호수)
여행자로서의 꿈을 포기하지 않다면 젊음은 여전할 수 있지 않을까
말라위 호수에서 할 수 있는 액티비티들은 아주 다양하고 또 다채롭다. 그 중에는 스노클링처럼, 말라위 호수의 맑은 물을 들여다볼 수 있는 멋진 액티비티도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별의 별 사교육을 받으며 성장해온 나지만, 투자한 금액에 비해 어떠한 성취도 이루어내지 못 한 영역들이 몇 개 존재한다. 우선은 미술이고, 다음은 수영이다. 부모를 원망하기도 미안할 만큼 이 두 영역에 상당한 지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수준은 언제나 기대치에 미달되었다. 하지만 내가 화가나 수영 선수가 될 것은 아니기에,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장점과 한계가 있으므로, 미술과 수영을 못 한다는 게 스트레스가 된 적은 단 한 번도 었었다. 오늘 할 액티비티를 예약하던 어제 저녁까지는. 나는 스노클링을 하고 싶었지만, 수영을 못 한다는 이유로 신청할 수 없었다. 이렇게 억울할 수가. 이 스노클링을 위해 빅토리아 폭포에서 돈도 아꼈는데, 조금은 허무했다.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골로 갈 수는 없으니. 케이프타운부터 여행을 함께하며 친해진 일행들과 의견을 나누었고, 나를 포함한 세명은 '폭포 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이 하이킹을 결심하게 된 첫 째 이유는 가격의 저렴함이었고, 다른 차선책은 이미 우리가 오카방코 델타나 쵸베 강에서 경험한 보트 크루즈 밖에 없었다. 하이킹의 딱 하나 단점은 아주 일찍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굉장히 이른 새벽에 눈을 떠야했던 오늘 아침이었다.
간단하게 준비된 빵과 차를 마시고, 캠프 사이트의 리셉션 쪽으로 향했다. 혹시 몰라서 사과와 바나나 하나 씩을 가방에 더 챙겼다. 케이프타운의 테이블마운틴 이후 참 오랜만의 등산이었다. 더 적확히는, 참 오랜만에 몸을 쓰는 날이기도 했다. 오직 도보로만 다녔던 순례길과 달리, 아프리카에서는 트럭 위에 올라서 편안히 이동하는 중이었고, 텐트를 접거나 펼 때를 제외하고는 딱히 몸을 쓸 일이 많지 않았다. 원체 몸을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생활이 30일 가까이 지속되니 어쩔 수 없는 지뿌둥함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타이밍의 등산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리셉션에서 산 입구까지 차로 데려다주었고, 가이드 한 명과 우리 셋, 그리고 다른 그룹의 어떤 스위스 할아버지와 함께 산을 오르기 시작헀다. 산은 생각보다는 험했고, 그러면서 역시 생각보다는 높았다. 순례길과는 또 다른 느낌의 '야생' 등산이었다. 중간중간에는 마을들도 있었다. 어제 마을 투어에서의 마을보다는 조금 더 작고, 조용했다. 어제의 사람들이 주로 어업에 종사한다면, 산 쪽의 사람들은 작물 카사마 등을 비롯한 농업에 더욱 열심인 듯 하였다. 굉장한 이국적임을 느끼며, 계속 걸어나갔다. 다른 그룹에서 함께 온 할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종종 뒤쳐졌다. 우린 그 할아버지를 기다리느라 가다서다를 반복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꿋꿋하게 사진까지 다 찍으면서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오는 할아버지였다. 인내심 없는 우리 일행들 중 한 명은 많이 불평했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계속된 산행 끝에 폭포에 도착했다. 우와, 저것도 폭포라니. 열흘 전 즈음에 빅토리아 폭포의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경험해서일까, 그저 앙증맞아 보였다. 기념사진을 찍고, 싸온 과일을 먹으며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폭포가 별로 멋있지는 않았지만, 여기까지 오는 중에 몸을 썼다는 것 만으로도 그저 상쾌했다. 가끔은, 등산을 해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가끔은. 산길을 걸으면서 순례길 생각도 많이 났다. 그 긴 길을 어떻게 걸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참 무모했고 무지했던 젊은 날의 상징이 아마 순례길이지 않을까, 뭐 그런 혼자만의 생각을 했다. 케이프타운에서부터 함께한 다른 이들 역시 '몸을 썼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불편하지는 않아도 역시 편하지도 않은 트럭에 장시간 몸을 구겨 앉아있는 행위를 한 달 가까이 반복하고 있으니, 적당한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어제 마을 투어를 마치고는, 오죽했으면 우리끼리 캠프 사이트의 모래밭에서 배구까지 하고 놀았을 정도였다. 며칠동안 이동없이 머무르는 여기 말라위 호수에서, 다들 함께, 혹은 각자의 방식으로 남은 열흘을 준비하고 있다. 뒤쳐지는 할아버지가 가이드 역시 신경이 쓰였는지, '산 어느 중턱에 사는 자기 친구'를 불러내어 우리를 먼저 인도하여 마을 초입까지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자기는 할아버지의 짐을 들고 1대 1로 발맞추며 오겠다고. 한결 빨라진 속도로 우린 마을 입구에 금방 도착했다. 그러면서, 이게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액티비티는 아니었다고,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한가로운 마을에서 한가롭게 앉아 쉬었다. 현지인들이 우리를 보고는 반갑게 인사해주었다. 아이들은 신기해했다. 특히 아주 어린 아이들은 쑥스럽고도 궁금한 얼굴로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그 중 가장 어려보이는 한 아이는 연신 기침을 해댔다. 건강한 기침은 아닌 것 같다고, 우린 조금 걱정어린 대화를 나누었다. 어제 학교와 병원을 방문할 때의 기억이 아직은 유효해서 그런 듯 했다. 어제도 느낀 것이지만, 모두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 수는 없겠지만, 의료나 의식주 등의 기초적인 영역만큼은 인도적인 차원에서라도 보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이드와 할아버지가 오는 데 한참 걸려, 우린 썩 건강하게 들리지는 않는 기침 소리를 계속 들어야 했다. 마음이 좋을 수는 없었다. 아프리카 국가들에 여행으로 왔다가, 이런 모습들을 보고 다음에는 자원 봉사를 하거나 아니면 아예 이쪽 계통으로의 취직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꽤 많다고 한다. 나의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지만, 내가 살지 않는 어떤 세계에, 그러나 동시에 내가 방문했던 그런 세계에, 참 많은 것들이 결핍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만큼은 계속 기억하려고 한다. 거대한 무력감에 체념하지 않고, 한 줌의 최선을 보태려고 하며, 그 한 줌들이 모이면 언젠가 무력함의 거대한 장벽을 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침내 할아버지가 돌아왔고, 우린 캠프 사이트로 돌아왔다. 가이드들이 점심으로 파스타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리셉션에서 맥주 한 병을 샀다. 등산 후에는 맥주다. 순례길 때부터 생긴 습관인데, 확실히 좋다. 말라위 캠프 사이트의 바에서는, 나의 이름을 장부에 기입한 뒤에,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는 대로 내 이름 칸에 음료 내역을 하고, 체크아웃 전 날에 이를 한꺼번에 계산하는 방식으로 결제가 이루어진다. 인터넷 환경이 너무나도 나빠서, 카드 결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내일이 체크아웃이라, 오늘 저녁에는 결제를 해야 되는데, 얼마나 나왔을지 확인하기가 조금 두렵다. 점심을 먹고는, 말라위 호숫가의 썬베드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푹 쉬었다. 며칠 전 사왔던 와인을 한 병 마셨고, 등산의 피로와 취기가 겹쳐 조금 졸기도 했다. 바다처럼 넓은 이 호숫가가 참 좋다. 물도 그저 맑고. 호수가 이럴 수도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여유가 생긴 김에, 손빨래를 조금 했다. 독일의 노부부들이 빨랫줄과 빨래 집게를 빌려주어 잘 말릴 수 있다. 독일 출신의 이 노부부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캠핑 여행을 하는 중이다. 언젠가, 이런 여행은 젊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장기 여행도 장기 여행일 뿐더러, 순례길을 걸어야 하고, 또 이번에는 캠핑까지 하는 여행이니까, 이렇게 벅찬 여행은 젊으니까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프리카 전반기의 몇몇 중년의 여행자들이나, 여기의 노부부들이나, 이들을 통해서, 어쩌면 여행자로서의 꿈을 포기하지 않다면 젊음은 여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인상을 받았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디어클라우드의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이 노래가 요즘 나의 자장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