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으로 자라든

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26 (말라위 호수)

by Nell Kid
참담한 짓을 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

3일간 머물게 된 말라위 호수가 정말 예뻐서, 아침에 텐트를 열고 나오자마자 기분이 좋았다. 여태껏 아프리카의 모든 캠프사이트들을 통틀어도, 가장 멋진 곳들 중 하나였다. 물론 그 보다 더 기분이 좋았던 건, 이 곳에서 2박 3일을 머무르니 오늘과 내일에는 텐트를 펴고 접는 행위를 안 해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고작 텐트를 하나 안 접을 뿐인데, 꽤나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아주 한가롭게, 하품을 크게 했고, 우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스트레칭을 쭈욱쭈욱 했으며, 세면 도구를 챙겨 샤워를 하러 갔다. 나는 스스로를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에서 가장 청결한 사람들 중 한 명이라 자부하고 있다. 왜냐하면 보통 샤워를 아침 저녁으로 두 번 씩 하기 때문이다. 사실 아침의 샤워는 굳이 할 필요가 없기도 하나, 텐트에서 자고 나면 유난히도 머리가 부시시해져 사진을 찍게 된다면 영 별로다. 그래서 잠을 조금 줄여서라도 아침의 샤워는 꼭 하려고 한다. 머리만 감을 수 있늘다면 그렇게 할 텐데, 그럴 만한 시설은 대부분 못 되니까. 이제는 아프리카 캠핑 사이트들의 샤워실과 화장실에 어지간히 적응이 되었다. 의외로 냄새도 별로 안 나고(아니면 익숙해진 건가), 도마뱀 등의 각종 동물들이 벽에 붙어 있어도 크게 놀라지 않으며, 너무 어두워 무엇을 쉽게 찾을 수 없더라도 당황하지 않는다. 딱 하나 아직껏 괴로운 건, 차가운 물이다. 이건 매일매일 새로운 고통이다. 어지간해서는 캠핑 사이트들에 뜨거운 물이 나오지만, 후반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조금씩 많아지는 중이다. 오늘 아침에는 더럽게나 추운 물이 틀어졌다. 덜덜 떨면서 샤워를 했다. 호화스러운 거품 목욕이 조금 생각나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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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_075108.jpg 오전의 캠프장 주변

빵과 계란, 그리고 이런저런 샐러드 채소들에 곁들여 차를 마셨다. 전반까지는 주로 커피를 마셨는데, 설거지하기가 귀찮아 차로 바꾸었다. 고작 숟가락 하나 더 씻는건데, 고작 그게 귀찮아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차는 티백만 넣었다가 빼면 되니 훨씬 간편하다. 인스턴트 커피가 그리 맛있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다. 전반기 때의 네스카페보다 훨씬 더 맛이 없다. 차든 커피든, 쌀쌀한 아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뜨거운 것을 마시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늘은 가뜩이나 찬물 샤워 때문인지 이 따뜻함이 더 좋았다. 아침을 먹으며, 가이드로부터 오늘 일정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들었다. 정말 간단해서 다소 놀라울 지경이었다. 굿 모닝 한 마디와, 이제 저 사람이 오늘 하룻동안 여러분들을 마을 투어로 안내할 것이다, 라는 한 마디가 전부였다. 뭐랄까. 확실히 지난 전반기 때의 가이드들에 비하면, 열의가 조금 부족해보이는 게 사실이다. 후반기의 가이드들은 종종 우리들에게, 자신들에게 찾아와 아프리카에 대해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고 알아가라고 말을 하지만, 이 광활한 대륙과 그것 만큼 다양한 생활 방식에 거의 무지하다시피한 우리로서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부터 모르겠다. 오히려 가이드들이 먼저 이야기 소재를 꺼내면, 같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텐데. 그렇게까지 하겠다는 열정은 아직 많이 보이지 않아서 조금 아쉽다.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전반기에 정말 훌륭한 가이드들과 함께했던 걸 큰 행운이라 여겨야지. 오늘의 일정은 가이드가 언급했던 마을 투어 하나 뿐이었다. 조금 더 밀도있게 프로그램이 진행돼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이 점도 조금 아쉽기는 하다.

20170612_081312.jpg 달려오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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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_082558.jpg 호숫가 주변
20170612_082645.jpg 초록색 아이가 제이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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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_082813.jpg 쾌청한 날씨의 호숫가 주변

아침을 먹고, 각자 준비를 하여 투어를 나섰다. 투어를 나서자마자, 저 멀리서 아이들이 '와아'하고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한 사람씩 손을 잡았다. 어제 이 곳에 도착하여, 자신을 안을 거면 1달러를 달라던 어떤 자본주의적인 꼬마 아이도 그 무리들 중에 섞여 있었다. 우리 일행 중 하나가 얘네들은 학교를 안 가는지 물었더니, 마을에 딱 하나 학교가 있는데 임금이 체불되어 교사들이 파업 중이라고 한다. 나는 제이슨이라는 아홉 살 아이와 손을 잡고 다녔다. 아홉 살인데, 저스틴 비버를 좋아한다고 했다. 오, 나보다도 조숙한 꼬마인 걸. 독일 출신의 노부부들 중 한 명에게 폴라로이드 사진기가 있었다. 그는 그것으로 같이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아이들이 정말 좋아헀다. 나와 제이슨도 같이 사진을 찍었다. 제이슨에게 폴라로이드 필름을 흔들면 사진이 점점 또렷해진다는 걸 알려주었다. 이를 배운 제이슨은 여기저기 아는 체를 하고 다녔다. 천진한 친구들이 워낙에 왁자지껄 돌아다니는 통에, 지루할 틈은 없었다. 오늘 투어한 마을의 말라위 사람들은 의외로 호숫가에서 어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굳이 '의외로'라는 표현을 집어 넣은 건, 아프리카라고 하면 광활한 대륙에서의 역시 광활한 플랜테이션만 있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난 참, 너무도 무지한 상태로 이 대륙에 왔다. 생선을 늘여놓아서 다소간의 비린내가 나기도 했는데, 역한 수준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거룩함이라는 것을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하는 생활에서 발견하곤 했다. 기본적인 의식주와 관련된 가장 세속적인 것들에서 더 묵직한 거룩함이 느껴졌다. 생업에 몰두하는 말라위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거룩함과 그와 비슷한 경외감을 동시에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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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_083314(0).jpg 어업에 주로 종사하는 말라위 호숫가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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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_085058.jpg 이들의 생활

옆의 제이슨과 이야기를 나누고, 또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우린 마을을 걸어다녔다. 행여라도 섣불리 들이댄 카메라에 현지인들이 불쾌해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미리 말을 해주었고, 또 현지 사람들도 반가운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따뜻한 마음들의 나라'라는 게, '충효의 고장'처럼 되도 않은 슬로건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과 우리 사이의 이질적인 괴리는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여행 기간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최소 몇 백 만원을 소비하여 여행이라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적은 돈일 수도, 또 나같은 사람에게는 아주 큰 액수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정해진 돈이 지불되었기에 우린 이렇게 아프리카를 여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정겨운 인사는 반갑고 고마웠지만, 물이 부족해서 관광객들에게 한 모금만 달라던 아이들의 요구나, 아니면 매우 불청결해보이는 집에서 생활해야 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에는 다소 겸연쩍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잘 살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은 결코 오지 않을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다만 최대한의 사람들이 21세기의 기준으로 사람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라는데, 이것 역시도 요원해보여 조금은 서글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무력했다. 마을 투어 중에는 학교와 병원을 방문하는 일정도 있었다. 열악한 수준의 교실이었고, 경악할 수준의 병원이었다. 특히 병원에서는, 아주 적은 인력들이, 출산, 말라리아나 HIV 바이러스 관리, 기타 응급 처치 등을 비롯한 이 지역의 의료 전반을 책임지고 있었다.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대기하는 환자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학교와 병원에서는 모두 기부금을 정중하게 요구했고, 우린 선뜻 돈을 내었다. 이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게 조금 슬펐고, 이것만으로 윤리적 자족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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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_091714.jpg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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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_100400.jpg 병원, 혹은 보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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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_102758 (1).jpg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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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_142111 (1).jpg 캠프 사이트의 모습

아프리카에서 현지 사람들의 생활상을 접하는 건 종종 괴로운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그 중 최고봉은 전반기에 진행됐던 '힘바 부족' 방문이었다. 여기서는 심지어 누군가가 전통적으로 '샤워'를 하는 것까지 관람의 대상이 되었다. 샤워란, 현대 사회에서는 가장 내밀한 행위들 중 하나가 아닌가. 그 부족의 세계관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구경한다는 게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오히려 참담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이 참담한 관광마저 사라진다면 이들의 생계 자체가 곤란해진다는 게 역시 막막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그 때에 비하면 그래도 괜찮았다. 최소한 누군가의 삶을 대상화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그러면서도 착잡한 심경이 쉬이 지워질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직 내겐 많은 학기가 남아있고, 또 진로를 확정할 시간도 많다. 천성이 그리 착한 사람이 아니어서, 아프리카에서 보았던 이 사람들에게 반드시 도움이 될 어떤 일을 하겠다, 라는 다짐을 섣불리 내릴 수는 없겠다. 다만 바랄 뿐이다. 내가 행할 수 있는 최선의 윤리가 실은 여전히 모자라는 것이는 걸 늘 느낄 수 있기를, 그래서 윤리적인 포만감을 쉽게 느끼지는 않기를. 누군가의 삶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쉽게 잊지 않고, 어느 누구의 삶도 대상화하거나 유희거리로 삼지 않으며, 그리고 주어진 능력과 범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볼 수 있기를, 역시 바란다. 나는 무척이나 속물적이고도 세속적인 사람이라 남을 위해서 스스로를 헌신하는 삶 같은 건 절대 못 살 테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표현처럼 '참혹한' 사람까지 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오지은의 '누가 너를 저 높은 곳에 올라가도록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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