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이, 오, 와이파이

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31 (다르에스살렘)

by Nell Kid
살면서 이들을 다시 볼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내게 삶의 열정을 몸소 보여준 이들일 테니, 아마도 꽤 긴 시간 기억할 테다.

와이파이가 잘 잡힌다. 이 건조하기 짝이 없는 한 문장이 엄청난 행복을 머금고 있다. 우리는 오늘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에스살렘에 들어왔다. 이제 당분간은 텐트가 아닌 침대에서 잘 수 있다. 전반기의 경우, 대략 6일에서 7일 이후 한 번은 숙소에서 자는 패턴이었는데, 후반기에서는 내내 텐트에서 잤기에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따라서 텐트가 아닌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거나하게 행복에 취한 상태였다. 그런데 세상에. 와이파이까지 잘 잡힌다. 오 와이파이, 나의 와이파이. 와이파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 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그 하이에나가 바로 우리였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며 세상과의 접촉에 집중했다. 나도 역시 각종 팟캐스트를 다운 받았고, 또 심지어 야구 게임 하나를 실행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이 게임에서는 나의 팀 삼성 라이온즈가 강팀으로 군림 중이다. 그런데 어째서 현실에서는. 아무튼. 정말 편했다. 남이 하는 텐트 생활과 캠핑은 낭만이지만, 실제로 겪는 텐트는 고역일 때가 있다. 진화와 발전을 거듭해온 인류가 침대에 정착한 이유가 있었다. 침대 위에서 즐기는 와이파이라니. 빅토리아 폭포 이 후 열흘 만이었는데, 말이 열흘이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생활 이외에는 단 한 번도 스마트폰과 분리되어본 적 없는 내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힘든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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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7_071823.jpg 아침. 미쿠미 국립 공원을 떠나며.

와이파이를 즐길 만큼 즐기다, 로비에 모여 간단한 게임을 했다. UNO라는 카드 게임인데, 전반기를 같이 했던 호주 부부가 우리에게 주고 간 선물이다. 이게 상당히 유용할 줄은, 당시 이 선물을 받을 때는 전혀 몰랐다. 이동이 주를 이루는 후반기 루트의 특성 상, 도로 위에서나 캠핑지에서 심심핧 틈이 많은데, 그때마다 이 카드게임으로 시간을 떄우는 중이다. 그렇다. 아무리 아프리카라도, 매 순간이 다이나믹하거나 짜릿할 수는 없다. 나중에는 이렇게 지루함을 느꼈던 시간까지 그리워할 게 뻔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순간의 지루함이 지루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뭐지. 점점 한국어 능력이 퇴보하는 것 같다. 이 무슨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비슷한 문장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영어를 아주 잘 하게 된 것도 아닌데. 점점 내가 할 수 있는 언어가 0개 국어로 소멸하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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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7_114920.jpg 다르에스살람으로 가는 길.

영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순례길에서부터 지금까지 이런저런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고 이들과 얘기를 하며,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들과 동일한 수준으로 영어를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말은, 설사 나의 영어가 조금은 부족하다고 해도, 이들에게 괜히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 놀러와서, 한국말을 어눌하게 하거나 문법에 틀리게 말하는 외국인을 타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어 컴플렉스를 어느 정도 털어낸 것이,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얻게 된 최고의 수확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영어 원어민들도 아니면서, 우리 사회는 이상하게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 하면 어쩐지 스스로 겸연쩍어지게 만드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혹시나 나같은 컴플렉스가 있었던 사람이라면, 부디 마음을 편하게 가져도 될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도 된다고. 어차피, 죽어라 죽어라 노력해도 원어민들처럼 될 수 없다면, 어느 정도의 어휘력과 문장들로 자신의 말을 조리있게 전달하는 연습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이를 위해서 선행 되어야 할 노력들이 또 나름대로 꽤 있겠지만. 그리 좋지 않은 영어 실력임에도, 지금껏 여행하면서 의사소통의 큰 어려움을 느낀 적은 별로 없다. 못 알아듣는 게 있으면, 다시 말 해달라고 하면 되고. 이런 것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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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7_141359.jpg 다르에스살렘. 무척이나 도회적이다.

저녁 식사로는 호텔 측에서 준비한 뷔페를 먹었다. 말이 뷔페지, 그 중에서 가장 맛있는 건 감자 튀김이었을 정도로 형편이 없었다. 식사를 하면서 우린 가이드로부터 내일의 잔지바르에 관한 간단한 브리핑을 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멤버들을 환영했고, 동시에 떠나는 멤버들에게도 작별을 고했다. 70의 나이에 캠핑 여행을 했던 이들의 열정을 나는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 할 것이다. 살면서 이들을 다시 볼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내게 삶의 열정을 몸소 보여준 이들일 테니, 아마도 꽤 긴 시간 기억할 테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와이파이가 되는 김에 케냐 E-비자를 미리 받으라는 조언을 했다. 헌데, 케냐에는 트랜짓 비자라고 하여, 케냐를 잠깐만 경유하는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비자가 따로 있고, 이것이 훨씬 저렴하다. 가이드에게 이 비자에 대해 물으니, 그도 잘 모른다고 한다. 이들의 전문성에 대해 자꾸 의구심이 들지만, 뭐, 이제는 이들을 험담하기에도 조금은 지친 상태다. 그냥 우리들끼리 술을 마시고 카드 게임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더 낫지. 그런 의미에서, 술을 마시려고 했더니,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이 호텔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다. 알고보니 지금이 라마단 기간이고, 이쪽 동네는 이슬람을 믿는다고 한다. 어머나 세상에. 내가 살다살다 라마단을 경험하게 될 줄이야. 그렇다면 휴양지인 잔지바르에서도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는 없는 건가. 신기하고 궁금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또 걱정도 된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레드벨벳의 'Rookie'다. 선곡에는 별 의미가 없다. 그냥 루키루키가 자고 귀에서 맴돌아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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