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30 (미쿠미 국립공원)
헬로, 심바
꿈에나 그리던 수컷 사자를 드디어 보았다. 갈기는 선명했고, 듣던대로 게을렀다. 동물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나지만, 그럼에도 이 수컷 사자는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어린시절 내가 가장 재밌게 본 애니메이션은 라이언킹이었다. 오죽하면 부모님이 라이언킹 영화 포스터를 앨범으로 만들어주셨을 정도다. 그 뿐일까.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러니까 내가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 부터, 나는 삼성라이온즈의 팬이었다. 그리고 그 팀의 자부심이자 자존심인 이승엽의 별명 역시도 '라이언킹'이었다. 중학교 국어 시간에 존경하는 사람을 발표하는 수행 평가를 할 때, 반에서 나 혼자서만 이승엽이라는 야구 선수 이름을 말했다. 또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상징도 사자였던 것 같다. 또 하나만 더 말하자면, 카카오톡 이모티콘들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도 '라이언'이고. 다른 동물들은 보면 좋고 안 보면 어쩔 수 없고 그런 마음이었지만, 유독 수컷 사자만큼은 꼭 보고 싶었다. 수컷 사자여야 했다. 암사자들도 좋지만, 내가 바란 건 갈기가 있는 수컷 사자, 라이언 킹에서의 바로 그 사자였다. 그렇지만, 수컷 사자를 발견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지난 몇 번의 게임 드라이브들에서도 암사자들을 몇 번 보았지만 수컷 사자는 단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포켓몬 고의 전설의 포켓몬도 아니고. 세렝게티를 가지 않으니,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 수컷 사자를 볼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있었던 미쿠미 국립 공원 게임드라이브에서 행여나 수컷 사자를 볼 수 있기를 '바란' 건 맞지만, 그건 정말 '소망'이었지 '기대'는 아니었다. 그런데, 수컷 사자를 보았다. 아주 가까이, 또 아주 선명히.
언제나처럼 아침 일찍 지난 캠프 사이트를 출발한 우리는 점심 전에 미쿠미 국립 공원 근처의 캠프 사이트에 도착했다. 조금의 보슬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원래 비를 참 많이 좋아하지만, 비 오는 날의 캠핑만큼은 어쩐지 사양하고 싶다. 텐트를 치고, 그 위에 방수포를 덮어놓았다. 점심을 먹고 조금 쉬다가, 우린 게임 드라이브 차량에 올라탔다. 여행 막바지가 되면, '이것도 마지막이네'라는 생각에 퍽 슬퍼질 때가 있다. 세렝게티를 가지 않는 나로서는 이것이 마지막 게임 드라이브였다. 그 생각에 다소 울적해졌다. 세상에 무언가가 끝나서 오직 좋기만 한 건 군대밖에 없는 것 같다. 쉽지 않은 아프리카에서의 날들이었음에도, 그래도 이게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는 게 많이 아쉬웠다. 아마도 다신 없을 날들이어서 그렇게 느낀 걸 수도 있고. 하긴, 언제 또 이렇게 아프리카를 오랜 시간 캠핑을 하며 여행을 해보겠는가. 다소간의 감상적임은, 날씨때문에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게임 드라이브 차량이 출발했고, 약간의 보슬비에 바람이 겹쳐 물방울들이 우리 얼굴을 정면으로 때려대기 시작한 것이다. 어푸푸, 거리면서 주위 멤버들과 크게 웃을 수 있었다. 흔히 부정적인 생각들이나 감정들이 '씻긴'다고 하는데, 이게 메타포에만 그치는 언어의 조합은 아니었음을 이 여행에서 깨닫는 중이다. 특히 지난 빅토리아 폭포에서 폭포비를 흠뻑 맞을 때, 다소간의 권태와 스트레스가 날아가버렸을 때 온 몸이 젖었음에도 무척이나 상쾌한 느낌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나의 여행은 끝났다고, 그래서 좋은 날은 다 가버렸다고, 괜한 울적함이 들었는데 차량으로 들이치는 비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많이 소제됐다. 덕분에 훨씬 더 가볍고 상쾌한 마음으로 내 마지막 게임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처럼 익숙한 동물들이 먼저 나왔다. 얼룩말과 코끼리들에게는 미안하다만, 더 이상 그들에게 깊은 공명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다가, 4x4 트럭이 소리를 죽이고, 가이드가 무언가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말했다. 저기, 사자가 있다고. 그것도 수컷 사자가. 세상에. 암사자와 수컷 사자가 함께 있었고, 암사자가 자리를 뜨자 수컷 사자만 남았다. 아, 드디어. 너를 만났구나. 순간 심장이 벅차올랐다. 사자와 관련한 유년기의 내 모든 추억들이 함께 떠오르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에게 점점 다가갔다. 조금씩, 더 조금씩, 더욱 선명한 사자가 보였다. 갈기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게으르게 응시하고 있었다. 4x4 트럭은 풀숲 안으로까지 잠시 들어갔고, 그러면서 사자를 정말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사자와 눈을 마주쳤다고 믿고 있는 중이다. 너무 선명한 갈기와, 정말 영상과 사진 속에서만 봤던 그 동물이 눈 앞에 있으니 그저 벅찼다. 수컷 사자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 하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닌 듯했다. 우리 팀원들 전체가 숨을 죽이고 그를 바라봤다. 소리가 나면 그가 위협을 느껴 달아날 수 있으므로, 우린 숨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를 제외한 다른 소리들은 모두 꺼놓은 채 그에게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터져나오는 감탄사들은 또 어쩔 수 없었다. 생각보다 사자를 오래 볼 수 있었고, 나는 그와의 셀카 찍기를 시도했다. 이번 여행의 압축판 같았다. 운이 좋을 때도 있었고, 또 운이 특히 나쁠 때도 있었지만, 어찌됐든 오로라도 그렇고 보고자 하는 것들은 대부분 다 볼 수 있었다. 사자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마지막 게임 드라이브에서라니, 이건 조금 극적이었다. 라이언 킹 이승엽도 항상 극적인 순간에 홈런을 친다. 참, 사자스러운 날이라고 느꼈다.
사자를 오래도록 감상하다가, 다른 동물들을 더 둘러보고 마침내 대망의 마지막 게임 드라이브가 마무리 되었다. 악어도 있었고 하마도 있었지만, 미안하게도 수컷 사자로 기인한 흥분 때문에 그 녀석들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사실 오늘의 행운은 여기서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사자를 또 봤다. 이번에는 정말 귀여운 새끼 사자들이었다. 어머나 세상에, 라고 내뱉을 수 밖에 없는 귀여운 새끼 사자들이 도로변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 이건 또 무슨 선물일까.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녀석들이었다. 아까의 수컷 사자가 이제는 완연한 어른이라면, 얘네들은 아기 심바를 보는 느낌이었다. 영화 라이언 킹의 심바나 키아라처럼, 정말 장난꾸러기들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라이언킹 애니메이션부터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저 녀석들을 얼마나 섬세히 그려내고 있는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의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를 즐기기라도 하는 듯, 녀석들은 정말 재밌게 놀았다. 서로의 꼬리를 물기도 하고, 또 나무에 오르고 내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귀엽게 생긴 녀석들이 즐겁게 노니, 걔네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더없이 행복해지는 느낌이었다.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수컷 사자와 새끼 사자를, 이렇게 마지막 게임 드라이브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성시경의 노래라도 불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넌 감동이었다고. 캠프사이트로 돌아왔다. 몇 번의 게임 드라이브가 있었지만, 가장 풍요로운 기억을 안고 온 게임 드라이브였다. 당분간 3박 4일 동안은 텐트 대신 숙소에서 잔다. 다르에스살람과 잔지바르에서는 호텔이 예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임 드라이브를 마치고 돌아온 캠프 사이트에는 바비큐 요리가 한창이었다. 맥주와 함께, 치킨을 맛있게 뜯었다. 이 치킨의 위생 상태는 담보할 수 없겠으나, 그럼에도 이렇게 먹는 바비큐 요리는 아직도 그저 맛있기만 하다. 비가 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쳐서 무사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뜨거운 물도 정말 잘 나온다. 무려 데일 뻔 했다. 먼저 샤워를 마치고 온 내게, 나의 룸메이트가 물이 어떠냐고 물었고, 나는 'Fucking Great'라고 답했다. 우리 일행들 중에는 다르에스살람에서 일정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만남과 작별이 연속하는 게 여행이라는 걸, 역시 새삼 느꼈다. 빅토리아 폭포부터 시작된 후반기 일정에는, 나이가 70에 이르는 지긋한 독일 노부부가 우리와 함께 캠핑 여행을 했다. 매 번 텐트를 치고, 접고, 그런 고된 여행을 이어나갔다. 이들을 보며, 젊어서 여행하는 게 아니라, 여행을 한다면 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기성세대가 어린 세대에게 줄 수 있는 교훈과 감동은, 어쩌면 이런 종류의 그것일 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는, 나도 그들처럼 멋진 삶을 살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있었고. 제대로 얘기를 나눈 적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들이 보여준 넉넉함과 따뜻함, 그리고 열정을 쉽게 잊지는 못 할 것이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엘튼 존의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이다.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라이언 킹> 실사판이 나의 눈 앞에서 펼쳐졌는데, 어찌 다른 노래를 고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