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여행의 고백

아일랜드 더블린(모허 절벽) (2016~2017 세계 여행)

by Nell Kid
자연의 예술은 시간이라는 물감으로 아주 조금씩 채색하는 작업

더 남아있기에는 피곤하고, 그렇다고 집에 가기에는 택시비가 아까운, 그런 새벽 세 시의 술자리 같은 날들을 살고 있었다. 그러니 말하자면 그저 턱을 괴고 첫차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듯한 일상이기도 했다. 그 건조한 술자리에서, 내 삶은 어느 날 여행이라는 놈의 고백을 받았다. 거창한 프로포즈였다. 비천, 타락, 절망, 슬픔, 혼돈, 평범, 따분을 제 것으로 하고 우아, 숭고, 희망, 기쁨, 평화, 매혹, 섹시만을 내게 허락할 듯한 포부가 느껴졌다. 나의 여행은, 새벽 세 시 술자리에서 주저리주저리 내뱉는 헛소리 같은 생각으로 시작되었다. 여행 동안의 매 순간이 우아, 숭고, 희망, 기쁨, 평화, 매혹, 섹시로 가득차지는 않았다. 비천과 타락은 아니더라도, 슬픔, 혼돈, 평범, 따분은 오히려 여행에서의 일상적 감정들 중 하나다. 그러니 여행의 고백은 사기였고, 허풍이었다. 하지만 모든 공약이 실천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건 공약을 이행함으로써 자신의 직업윤리를 지켜내야 할 정치인들에게도 쉽게 기대하기 힘들다. 너를 영원히 행복하게 해줄 거야, 라고 삶의 경이에 온 몸을 전율하며 자신의 마음을 전달한 연인들이, 그 진실하고도 깊은 다짐을 채 몇 년 도 안 되어 접어버리는 것도 아주 흔한 일이다. 세상에 영원한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런 입에 발린 되도 않은 소리에 깊은 감동을 느끼는 것도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원이란 게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랑만이 두 사람을 충만하게 한 건 사실일테니. 그 순간의 강렬함과 따뜻함은 지루한 권태와 무력함을 버텨내는 데 큰 힘이 된다. 여행도 그랬다. 우아, 숭고, 희망, 기쁨, 평화, 매혹, 섹시만을 허락하지 않을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그의 고백을 수락했다. 인생에서의 '결정적 순간'이 조금 절실할 무렵이었다.

50일에 방문했던 더블린 근교의 Hawth

'비천, 타락, 절망, 슬픔, 혼돈, 평범, 따분을 제 것으로 하고'는 영화 <러브픽션>에서 하정우의 대사였다. 프로포즈라기 보다는 출사표에 가까웠다. 그리 비장하게 시작한 그들의 연애도 불가피하게 권태를 마주했다. 설렘이 사라지면 익숙한 편안함이 깃들지만, 그것이 지루함을 동반하는 경우들도다. 이건 연애나 여행이나 비슷하다. 삶의 대부분이 그런 편이기도 하고. 여행 기간 동안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의 지리멸렬한 마음이 한 번 도 들어본 적 없는 건 아니나, 나는 여행이 내뱉는 허언의 진실을 다 알면서도 속아준 내 삶이 고맙다. 이 여행이, 그리고 여행의 기억이 없는 인생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모든 순간이 경이롭진 못하겠지만, 여행은 현재의 삶을 긍정케 하는 힘이 있다. 그 여행이 어제 50일을 넘겼다. 50일을 자축하는 별 다른 기념식은 하지 않았다. 그저 호스텔에서 '프리 맥주 데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맥주들을 밤새 폭음한 정도. 덕분에 아주 어지러운 51일 째 아침을 맞았다. 우아와 숭고는 얼어죽을. 주종을 하나로만 달려서 그나마 속은 덜 쓰린 게 나름의 다행이었다. 퀭한 눈으로 대충 씻고 가방을 쌌다. 오늘은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더블린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 떨어진 'Cliffs of Moher'를 당일치기로 다녀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처음에는 거기가 그저 아일랜드 서해안의 '골웨이' 옆에 붙어있는 곳인 줄만 알았다. 그 곳에서부터 두 시간 가까이 버스를 또 타야 한다는 걸 골웨이에 근접해서야 깨달았다. 혹시 내가 조금만 더 야무지고, 꼼꼼하며, 계획성 있는 인간이었다면 더 많은 우아와 숭고가 허락됐을까.


투어로 다녀오면 딱 적당한 곳이었다. 패키지 투어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딘가를 찍고 와야 할 때는 그것만한 게 없다. 일단 낯선 곳에서 길을 헤매고 교통편에 긴장할 필요가 없다는 게 가장 크다. 'Cliffs of Moher'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거대한 절벽으로, 그 엄청난 경관을 '보고 왔다' 정도만 돼도 크게 상관없는 관광지다. 아일랜드는 비교적 작은 나라고, 지도상으로만 보면 골웨이와 'Cliffs of Moher'는 아주 가까워 보였다. 골웨이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모든 투어는 출발한 뒤였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시외 버스들을 환승해가며 그 곳까지 가야 했다. 전 날의 숙취와, 그리 좋지 않은 도로 상태 때문에 평소 안 하던 멀미감까지 조금 느끼면서도 구글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투어 없이 이 절벽에 가는 건 이런저런 모든 '혹시라도'들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야 온전히 가능했다. 이 곳으로 가는 교통편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고, 하나를 놓치거나 잘못 내리면 모든 게 꼬여버리는 일정이었다. 'Cliffs of Moher'는 영화 <해리포터>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검색해보니 덤블도어와 함께 호크룩스를 파괴하는 장면을 여기서 찍은 듯했다. 혹시 가는 길에 마법사가 실수로 놓고 간 지팡이를 하나 발견한다면, 순간이동을 해서 절벽까지 한 번에 가고 싶었다. 정말 다행히, 버스는 제 때 출발했고 또 제 때 도착했다. '제'라는 말은 참 넉넉하고도 든든한 단어다. '제' 때도 있고, '제' 몫도 있고. 특히 여행에서 '제 때'가 주는 안도감과 위안은 더욱 각별하다. 대학 과제를 제 때에 제출했다, 에서의 제 때 따위와는 비교조차 안 될 중요성을 갖는다. 여행에서의 '때'는 작게는 의식주부터 최악의 경우에는 안전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버스의 정류장

'Cliffs of Moher'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세 시 즈음이었다. 9시에 호스텔에서 나왔으니 장장 6시간이 걸린 셈이다. 차가 막히지 않는다면 서울과 대구를 왕복하고도 남을 시간동안 숙취, 불안, 긴장과 싸우느라 진이 다 빠져서, 정작 절벽에 도착하자 지금 내 인생과 상태가 이미 절벽인데 뭘 또 이렇게 여기까지 와서 이걸 보고 있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버스에서 내려 바람을 맞으니 상쾌했다. 아침에 부리나케 준비했던 커피를 한 모금 홀짝 마시며, 절벽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망 포인트에 다다를 수록 절벽의 모습이 조금씩 보였다. 절벽이 베일을 벗을수록 조금씩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그게 구토감이 아닌가 잠시 의구심을 가져 보았지만, 이건 정신적 벅차오름, 그러니까 감동이었다. 자연만한 예술은 세상에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들으면서도, 정작 그 위대함을 자주 잊어버리고는 한다. 하지만 오직 자연만이 자아낼 수 있는 효과와 아우라가 분명 있다. 자연의 예술은 시간이라는 물감으로, 아주 조금씩 채색해내는 지리한 작업이다. 바다와 어우러진 절벽의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꽤 덩치가 있는 새들조차 돌에 새겨진 흰 자국 정도로 보일만큼 정말 거대한 절벽이었다. 아일랜드의 서해에 해당하는 이곳의 바다는 마치 호수처럼 잔잔한 듯 보였다. 하지만 절벽을 향해서는 선명한 파도가 쉴새없이 몰아치는 중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됐을 바다의 모진 물살에 곳곳에 생채기를 입은 절벽의 벽면이었다. 그 어떤 진일보한 현대 기술이라도 똑같이 재현해내기는 힘들 그 흔적들에 몹시 감탄했다. 파도가 절벽을 때리는 걸 계속 지켜보았다. 보고 있으면,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싶은 느낌도 들었다. 물론 뒤를 돌아 주차장을 바라보는 순간 현실로 돌아왔지만.


이 절벽에서 대략 두 시간 정도를 머무르며 천천히 자연 경관을 감상했다. 여기에 인간이 관여한 건 거의 없었다. 이를 관광지 삼아 이곳까지의 교통비와 주변 숙박비 및 식비를 뜯어내는 아일랜드 정부는 참 운도 좋다 싶었다. 하지만 이 정도 경관이라면 기꺼이 교통비 정도는 지불해도 괜찮았다. 아름답다, 로는 다소 부족한, 조금은 '숨이 막힌다'라는 표현이 오히려 더 적확할 그런 절벽이었다. 크게 압도되었다. 그래, 압도. 압도적이라는 말이 이곳을 형용할 최선의 수사일 수도. 핸드폰 카메라에 이 감흥을 담을 수 없는 게 그저 아쉬웠다. 여행 중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욕구를 가장 강하게 느낀 날이었다. 스마트폰 카메라 어플리케이션이 비록 조금의 부족함은 있어도 아주 모자라진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한계를 절감할 관광지에 그 동안 많이 안 와봐서 할 수 있던 속 편한 착각이었다. 스마트폰으로도 기가 막히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어쩌면 그저 내 사진 실력이 부족해서인 지도 모르겠다. 소프트웨어가 부실하면 하드웨어라도 괜찮은 걸 구비했어야 했는데, 많이 아쉬웠다. 눈으로 봤으면 됐지 싶으면서도, 한국에 돌아가서는 이 따위 부족한 사진으로 이곳의 엄청난 압도감을 추억하겠구나 싶은 마음에 괜히 씁쓸했다. 정말 멋졌다. 거대한 자연이 주는, 무심한 따뜻함이 있다. 자연의 저울은 현실의 무게를 조금 가볍게 측정하곤 한다. 그래 세상에는 이런 절벽이 있는데, 현실이야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논리적으로는 전혀 맞지 않은 상관관계가 홀가분하게 자리한다. 일상의 것들이 다른 곳에서보다는 작게 느껴지기에 오히려 조금 더 큰 그림을 이해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기특한 생각은 아주 잠깐 한 것에서 그쳤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입을 벌리고 절벽에 감탄하는데 소비했다. 그럼에도 전혀 지겹지 않았다.

근처의 도시로 가는 오늘의 마지막 버스를 반드시 타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답이 없는 오늘이었다. 예정 시각이 지났는데도 버스는 오지 않았고, 혹시 버스를 놓쳤거나 정류장을 잘못 안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초조함이 들었다. 아, 이런 곳에 와서도 나는 끝끝내 지독히도 현실적인 사람이어야 하구나. 20분이나 지나서야 버스는 도착했다. 20분이나 늦었음에도, 그래도 포기 않고 결국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싶었다. 이곳에 올때 차가 지연되지 않은 것도 정말 다행스럽게 느껴졌고. 덕분에 손해보지 않고 꽤 긴 시간동안 절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고작 두 시간 동안 이 거대함을 느꼈다고 괜히 절벽의 규모만큼이나 담대하고 대범하며 너그러워진 듯했다. 매일매일 파도의 괴롭힘을 인내해야하는 절벽도 있는데, 20분 쯤이야. 마지막 버스까지 제 때에 탑승하고, 아주 큰 안도의 한숨과 함께 구글맵 어플리케이션을 종료했다. 이제 됐다. 더블린은 내 나와바리니까. 모든 긴장이 일 순간에 풀렸다. 3시간 반을 달려 더블린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훨씬 더 길고 긴 여정이었다. 전날의 숙취때문에 에정보다 훨신 더 고되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가길 잘했다 싶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보지 않고 아일랜드를 떠났다면 후에 얼마나 억울했을까. 방에 들어오니 나의 친애하는 캐리어가 정갈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내일은 더블린을 떠나 킬라니라는 도시로 이동해야 한다. 체크아웃, 그리고 이동. 그 짐을 끌고 숙소를 나와, 버스나 열차를 타고 도착한, 생전 처음 방문한 도시에서 숙소를 찾는 일은, 비천, 타락, 절망, 슬픔, 혼돈, 평범, 따분이 모두 뒤섞인 일이다. 아까의 해리포터 촬영지에서 혹시 지팡이는 없는지 조금 더 살펴볼 걸 그랬다. 나까지 한 번에 순간이동하겠다는 염치 없는 생각은 이제 없으니, 제발 이 가방 새끼만이라도 어떻게 보내버릴 수는 없을까 하는 짜증섞인 바람이 있다.

사진은 형편없지만 함께 감상해보자 2

물론, 그건 실현 불가능한 바람이다. 그러니 나는 얄짤없이 내일도 이 짐을 끌고 낯설디 낯선 곳을 찾아가야 한다. 너무 귀찮아서 아직 짐을 싸지도 않았다. 체크아웃 전 날 마다 겪는 여행의 조삼모사다. 저녁에 귀찮냐 아침에 빠듯하냐 사이의 고민인데, 보통 선택은 후자다. 원래 삶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니겠나. 걱정거리와 귀찮은 것들은 내일의 나에게 미루고, 내일의 나는 그걸 보고 어제의 나를 저주하고.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내일과 비내일의 투쟁이다. 역사 시간에 이 비슷한 말을 본 것 같은데, 누구였더라. 아, 생각해보니, 아일랜드는 기네스의 나라일 뿐만 아니라, 시인 예이츠의 국가이기도 하다. 예이츠, 그는 누구인가. 예전 여자친구에게 예이츠의 '첫사랑'이란 시집을 사주기 위해 광화문 교보문고를 전전하게 만든 사람,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어 시를 해석해보는 노력을 기울이게 한 위대한 시인.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다녔던 영어 학원에서 예이츠의 'Down By the Salley Garden'이란 시를 외우게 했다. 이건 또 무슨 개같은 숙제일까 불평하며 시를 받았는데, 자꾸 읽다보니 사춘기의 여린 감성이 자극되었다. 엄청나게 어렸던 나이였음에도, 시의 중간 부분 'But I, being young and foolish, would not agree with her', 해석하자면 '그러나 나는 어리고 어리석어서 그녀의 말을 굳이 듣지는 못했죠' 정도가 될텐데, 물론 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 구절이 그 나이에도 그렇게 와 닿았다. 그때에 비해서는 나이가 들긴 들었으니, 너무 어리고 어리석었다고 밖에 변명할 수 없는, 그래서 후회되고 돌이키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들이 정말 몇 개 생겼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저 구절을 볼 때마다 조금씩 멈칫할 때가 있다.


몇 년 전 여자친구에게 예이츠의 시집을 사주려고 했던 건 어린 날의 그런 기억과 감정을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광화문 교보문고의 시집 코너를 다 뒤졌지만 책은 찾을 수 없었다. 재고는 있는 것으로 나왔으나, 직원 분도 결국 포기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당시 베스트셀러 시집이었던 류시화 시인의 책을 대신 선물했다. 맞아, 아일랜드가 그 사람의 나라였지. 이게 이리도 새삼스러운 사실일 줄이야. 한국에서 가져온 책 세 권들 중 한 권이 시집이다. 이제니 시인의 '아마도 아프리카'라는 시집인데, 그 중에서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이란 시를 가장 좋아한다. '안녕 잘가요 안녕 잘가요', '헤어질 때 더 다정한 쪽이 덜 사랑한 사람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나는 더 다정한 척을 척을 척을했다' 이 두 부분 때문에 이 시집 한 권을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이 시를 보고, 아주 한참 동안 멍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문학소년이 된 것 같은데, 읽은 시가 별로 없고 아는 것도 그리 없으니 이리도 당당하게 아는 체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16살의 예이츠를 기념하고, 또 시를 읽겠다는 뻔뻔스러운 핑계로 짐을 싸는 걸 미뤘다. 굳이 변명을 한 번 더 하자면, 오늘 그 기가 막힌 자연을 보고 왔는데 속세의 일 따위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 아니다, 이건 너무 거짓말이다. 그저 귀찮아서 짐은 내일 아침에 대충 싸서 나가려고 한다. 50일이든, 51일이든, 그리고 52일이든, 귀찮은 것은 여전히 귀찮고 초조한 것들은 여전히 초조하다. 역시 여행 한 번 왔다고 사람이 괄목상대하게 성장한다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그게 여행 중 발견할 수 있는 정말 몇 안 되는 삶의 진실인 것도 같고. 그럼에도, 무사했던 지난 반 백일을 자축하고, 또 다가올 반 백일 역시도 별 탈 없기 정도는 간절히 바라는 바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못의 '먹구름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