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오슬로-스웨덴 스톡홀름 (2016~2017 세계 여행)
야간버스 신드롬
여행을 다니고 있는 유럽 도시들 중, 런던이나 파리, 혹은 로마처럼 누구라도 알고 있는 유명한 도시들을 제외하고 다른 곳들의 이름을 언제부터 알고있었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부분은 축구팀으로부터였고, 그 외에는 굉장히 의외의 장소와 시간에서였던 경우들이 많다. 지금 머물고 있는 스톡홀름이란 도시를 기억하게 된 건 중학교 1학년 때부터다. 그 이전에도 스웨덴의 수도는 어디, 따위의 상식 퀴즈 같은 데서 '스톡홀름'을 들어는 보았겠지만, 이 이름이 머릿속에 각인된 건 당시 다녔던 영어 학원에서였다. 토플 독해 영역을 공부하고 있었을 땐데, 그랬다, 그 동네는 만 13살의 중학교 1학년 생 조차도 토플을 공부할 정도로 제 정신이 아닌 곳이었다, 어쨌든, 문제집의 지문에 '스톡홀름 신드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한 지문 때문에 '스톡홀름'이란 이름을 지금껏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지리나 세계사도 아닌 영어 학원 교재에서조차, 꽤 오랜 시간 유효할 무언가를 얻어 내는 모범적인 학생처럼 보이겠지만, 토플 공부를 하며 숱한 주제들을 접했어도 지금껏 기억나는 건 오직 '스톡홀름 신드롬' 뿐이다. 심지어 그 학원은, 모든 독해 지문들을 한 줄 한 줄 해석하고, 역시 청해 영역의 모든 대사들을 한 마디 한 마디 받아쓰기 하는 숙제를 매 번 내주던, 그러니 지옥같이 빡셌던, 스파르타식 학원이었다. 자연스럽게 아주 많은 주제들을, 그 보다 더한 불평과 투덜거림으로 접하게 되었지만, 언제나 기계적인 해석과 받아쓰기에만 열중하던 나였고, 숙제가 마무리되면 지문과 강의의 내용 역시도 머릿속에서 완전히 소거되었다.
그럼에도 '스톡홀름 신드롬'만큼은 유독 선명히 기억나는 건, 그때가 중학교 1학년이었기 때문이다. 아, 중학교 1학년이란 어떤 나이인가. 사춘기의 초입으로, 세상이란 나를 중심으로 하는 천동설의 원리로 작동되는 곳이라는 안쓰러울 착각을 시작할 나이다. 교복을 처음 입으면서도 스스로가 '다 컸다'고 생각하기 쉬우며, 그것이 착각인 줄도 모르고 철저히 믿게 되고, 모든 일상과 삶도 그 믿음에 복무하도록 정의내리고 규정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 사춘기 소년에게, '스톡홀름 신드롬'은 유난히도 '간지나는' 단어였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설명하지 못해도, 살면서 '신드롬' 하나쯤은 알아 두는 것도 멋있는 삶을 사는 하나의 방안인 듯했다. 거기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락밴드들 중 하나인 '뮤즈'의 노래들 중에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곡이 있다는 학원 강사의 여담 역시도 이 도시를 기억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강사에게 수업 받았던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고, 그러니 얼굴 역시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의 내 감수성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언젠가 수업에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너네 토이라고 아니, 유희열이라는 사람 모르니,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이거 모르니, 하아, 어쨌든, 그런 사람이 있는데 이번에 새 앨범이 나왔거든, 그런데 오늘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토이가 나와, 그러니 집에 가면 꼭 봐, 라는 이야기를 했다. 동방신기를 좋아하던 그 수업의 여자애들은 '잘생겼어요?'라는 질문을 했고, 선생은 단호히, 아니, 그런데 엄청 매력있어, 라고 대답했다. 사춘기 초입의 나는 스스로를 음악 좀 듣는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 나이가 되도록 '토이'라는 이름은 들어도, 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심한 충격이었다. SG워너비 이외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찾아' 듣기 시작한 것도 그 '사건' 이후였다.
그때와 비슷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들 중 하나라지만 나는 '뮤즈'의 음악을 단 하나도 알지 못했다. 토플 모의고사 성적이 잘 안 나오는 건 견딜만 했다. 혼자 좋아하던 여자애한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도 못 견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또래들에게 문화적 선구자를 자처하고 있다는, 그런 선민의식 비슷한 비뚤어진 자의식으로 살아가던 내게, '모르는 음악'은 특히 심한 자괴감이 드는 요인들 중 하나였다. 거기다,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니, 이 무슨 신비로우면서도 멋진 용어인가. 나는 몇 번을 되뇌었다. 스톡홀름, 스톡홀름, 스톡홀름 신드롬. 이걸 외우지 않고서는 간지나는 인생을 살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편협한 사고방식을 아무렇지도 할 수 있던 게 역시 중학교 1학년 때였는 지도 모르겠다. 뮤즈를 처음 접하게 된 것도, '스톡홀름 신드롬'을 기억하게 된 것도, 다 그때부터다. 내게 있어서는 '토이'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과 '뮤즈'의 '스톡홀름 신드롬'이 이런 의미에서 비슷한 노래들이다. 인질들이 범인에게 동화되고 동질감을 느끼는 게 스톡홀름 신드롬이고, 실제 스톡홀름에서 발생했던 인질극에서 비롯된 정신분석학 용어라고 한다. 이 용어를 처음 배울 때만 하더라도, 내가 나중에 스톡홀름으로 여행올 거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스톡홀름은 둘 째 치고 언제 다시 비행기를 타보기는 할까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니 오슬로에서 스톡홀름으로 출발할 때는, 조금은 설레고 애틋한 마음도 들었다. 그랬었다. 야간 버스가 스웨덴 국경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23시 15분에 오슬로를 떠난 버스는 한 시간 쯤 지나 국경 지대에 도착했고, 버스 전체의 불이 환하게 밝혀지며 검문을 받았다. 무섭게 생긴 탐지견을 대동한 검문이었고, 두 세 마리의 개들이 담당 공무원과 함께 차례로 버스에 올랐다가 내렸다. 버스 안의 모든 가방들을 전부 냄새 맡게 했다. 탐지견들의 무서운 기세때문에, 걸릴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괜히 초조하고 겁이 났다. 아무리 잘 훈련 받았더라도 개는 개일텐데, 저 무서운 개가 실수로라도 나를 물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도 들었다. 버스는 국경 지대에 꽤 오래 정차했고, 그 시간 내내 불은 꺼지지 않았으며, 아주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잠이 달아나 버렸다. 버스가 다시 출발할 때에, 나는 아주 말똥말똥한 상태였다. 사춘기 초입의 풋풋하고 앳된 감수성을 추억했던 애틋함은 모두 증발했다. 남은 건 극심한 짜증과 피로 뿐. 이런 신드롬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뭐긴 뭐야, 그냥 불쾌함이지. 새벽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숨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이틀 간격으로 야간 열차와 야간 버스를 이용하는 건 지옥의 일정이었다. 스톡홀름에서 3일은 머무르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어쨌든 그 3일은 침대에서 잘 수 있을테니까. 하필이면 버스에서 스톡홀름의 치안이 그리 좋지는 않다는 어떤 블로그 글까지 읽게 되었다. 하아, 그 새벽에, 그로기에 가까운 몸 상태로, 긴장까지 바싹 하며 숙소를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로 찾아왔다. 여행의 매순간이 즐거워 죽겠고 행복하다는 사람에게는, 한 번 쯤 그 여행의 진위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게 진짜라면, 롤모델이나 평생의 친구로 삼을 만하다. 그 정도의 긍정주의자를 만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숙소에 도착했다. 젊음의 한복판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정말로, 몸이 예전같지 않았다.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로 찾아오는 길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야간 이동을 숙취에 비유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술을 어지간히 섞어 마시지 않는 이상 이 정도의 숙취를 느낄 리 없다. 숙소에서 얼리 체크인이 가능하지 않았다면 정말 그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아 버렸을 수도 있다. 방에 들어와서는 침대에 엎드려 스톡홀름에 대한 정보들을 뒤적였다. 피곤하긴 하지만 잠은 오지 않는 상태였고, 두 시간 정도를 그렇게 뒤척이다 오전 10시 즈음에서야 잠이 들었다. 그 상태로 네 시간을 자고, 대충 양치질만 한 채 호스텔 밖을 나섰다. 어차피 3일이나 이곳에 더 있을 터이니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물 등을 사고, 간단히 식사를 해결한 후, 아주 잠깐 스톡홀름 시내를 산책했다. 스톡홀름은 직전에 방문했던 노르웨이의 두 도시들보다는 조금 더 전형적으로 생각해 온 북유럽 국가의 모습에 가까웠다. 날 자체도 굉장히 우중충하기도 하고. 걸으면 걸을 수록 조금씩 매력이 느껴졌으나, 더 관광할 여력은 못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어차피 3일이나 있을 것이니, 오늘은 무조건 쉬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침대가 이렇게 푹신한 존재였나 싶었다. 약간의 돈을 더 내고 10인실이 아닌 6인실을 선택한 건 정말 잘 한 일이었다. 덕분에 다소 고요한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그 6인 중에 별종이 하나 있기도 했다. 욕조도 없는 욕실에서 홀로 50분 가까이 씻는 사람이었다. 그러더니 온 방의 불을 다 켜고,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 미친 놈.
그 엄청난 짜증이 느껴지도록, 날카롭고도 잽싼 손목 움직임으로 스위치를 껐다. 진심은 통한다더니, 내가 불을 끈 이후로는 조금 자중하는 모습이었다. 그래, 쟤도 양심이 아예 없지는 않구나. 이 고요, 이 평화, 그리고 이 '머무름'이 정말 사랑스러운 저녁이다. 잘자요, 우리 이제 잘까, 난 네 꿈 꿔, 등등 알고 있는 모든 심야 라디오 클로징 멘트를 중얼거려 본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프롬의 '반짝이던 안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