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아비스코 (2016~2017 세계 여행)
오로라를 봤다, 보긴 봤다.
미래의 행운을 끌어오는 동앗줄이 생명줄이라는 걸 그땐 몰랐다. 복리로 열심히 살겠다고 했지, 내가 언제 덜 살아도 괜찮다고 했나. 역시 눈은 혐오 물질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았던 마법 같은 풍경에 잠시나마 변절했던 자신을 뼈저리게 반성했다. 태어나고 자라기를 도시에서만 했던 나는, '눈이 많이 내린다'라는 이 건조한 문장의 실제적인 참담함에 전혀 무지한 사람이었다. 오전에 국립 공원을 다녀오면서도, 세상이 다 눈이네, 따위의 순수한 감상만 했을 뿐, 그 깊이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리 눈이라는 자연 현상에 관심이 없었던 걸까. 오로라를 보기 위해 눈길을 걷다가 허리 높이까지 빠지게 되었을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의 무서움을 느꼈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주변의 공기가 거의 오염되지 않아야 하고, 인공 조명 역시 없어야 하며, 이 말은 들고 나온 랜턴 하나와 핸드폰 불빛이 비추는 아주 좁은 지역을 제외하고는 시야가 극히 제한된다는 소리다. 공포 영화도, 무시무시한 귀신이 차라리 대놓고 나오는 게 그나마 낫다. 진짜 공포는, 공포의 기운이 영화 내내 자리하고 있는 그런 무서움이다. 눈길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디의 눈이 깊을 지도 모르니 매 걸음이 조심스럽고 두려웠다. 한 두 번 빠지고 나니 더욱 그랬다. 아, 오로라가 뭐길래.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만반이란 건 열반과 비슷한 단어라서, 결국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은 남방을 우선 입었고, 그 위에 티셔츠에, 후리스에, 후드 집엎을 한 상태로 패딩까지 껴입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다시 그 위에는 베르겐에서 오슬로로 가던 열차 안에서 챙긴 담요를 망토처럼 두루었다. 하체는 조금 부실하긴 했다. 몇 겹 껴입는다고 입었으나, 청바지로 밤의 눈길을 걷겠다는 건 미친 짓에 가까웠다. 미친 짓이라는 걸 눈에 빠지고 나서야 절감했다는 게 조금은 슬픈 사실이다. 문제는 신발이었다. 현지에서야 다음 여행지를 결정하는 그런 즉흥 여행을 다니고 있는데, 여행을 출발하던 60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의 나는 내가 오로라를 보기 위해 스웨덴 최북단까지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못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게 겨울 장비가 있을 리 만무했다. 추위야 옷을 껴입으면 된다고 하지만, 물론 그것도 부족하긴 한데 어쨌든, 신발이야 말로 이 눈길에서는 가장 취약한 약점이었다. 아비스코는, 정말 겨울 왕국 같다. 예뻐서? 그건 낮의 아비스코 이야기고. 오후의 아비스코는, 마법에 걸린 엘사가 사는 겨울 왕국이다. 정확히는, 엘사가 만약 중2병에 걸렸다면 대략 이런 모습의 세상이 탄생했을 것 같았다. 아비스코의 숙소 외부에는 '액체' 상태의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 생수통 안의 물에도 살얼음이 생길 정도였다. 보이지 않는 엘사의 손은 내 신발을 특히 적극적으로 공격했다. 평범한 운동화니 그 안에 눈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게 발의 체온과 만나서 잠시 녹았다가, 아주 빨리 얼었는데, 지 혼자 어는 게 아니고 내 발과 같이 어는 듯했다. 이쯤되면, 빌어먹을 오로라 새끼라고 불러도 모자를 지경이다.
그래도, 봤다. 오로라를 봤다. 보긴 봤다. 희미하긴 했지만 하늘에 떠있는 오로라를, 눈으로 보았다. 번쩍, 하는 섬광이나, 빛의 파도 같은 오로라는 없었다. 그런 사진은 정말 전문가가, 전문가의 사진기로 찍었을 때 가능한 작품이었다. 운이 좋았던 건, 물론 그 고생을 하며 다녔는데 이 정도 운도 없으면 너무 억울하겠지만, 오로라가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나름대로는 굉장히 선명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아비스코로 오는 열차 칸에서 만난 스웨덴 사람에 따르면, 오로라는 사람 눈보다는 카메라로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한다. 빛에 있어서 카메라가 훨씬 더 예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면 카메라 렌즈로만 오로라를 만날 확률도 꽤 높다고 하며, 그는 괜찮은 카메라 없이 무작정 아비스코로 향하는 나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 때부터 든 생각은, 참 내가 대책없이 여행 다니고 있구나, 라는 자성적 깨달음이었는데, 뭐 그래도 두 눈으로 오로라만를 '목격'했으니, 소기의, 아니, 이곳까지 온 유일한 목적을 달성했다. 이런 종류의 여정이라는 건 결국 합격과 불합격으로만 구분되는 시험이 아니겠는가. 석차가 어떻든, 합격만 하면 끝이다. 수석이니 차석이니 이런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여행 역시도, 더 선명한 오로라를 본 사람도 있을 테고 나처럼 굉장히 희미하게만 보았던 사람도 있을 텐데, 어쨌든 우리 모두는 오로라 보기 고시에 합격한 이들이다. 이건 마치 평생 유효한 전문직 자격증과도 같다. 세상이 뒤집혀도 내가 오로라를 봤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이 경험담을, 각색하고 꾸며내어 조금 더 멋지고 드라마틱하게 조미하는 일만 남았다. 그걸 증거하는 사진이 너무도 빈약한 게 가슴 아프지만.
아비스코의 경우, 낮에는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어딜 돌아다닐 수가 없을 정도로 눈이 부시었다. 햇빛도 쨍쨍하고, 또 땅위의 하얀 눈이 그 햇빛을 반사하여 세상이 다 반짝거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밝았던 날도, 오후 네 시 정도를 기점으로 해서는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일몰 즈음이, 이 곳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다. 흔히 말하는 '감동'은, 사실 오로라보다는 일몰의 풍경에서 더 많이 느꼈다. 그때까지는, 참 모든 게 괜찮았는 데 말이다. 아침의 설국, 또 점심 즈음의 아비스코 공원, 그리고 기가 막힌 일몰까지. 이렇게 멋진 광경을 계속 보았음에도, 나는, 그래, 이 정도면 오로라를 보지 못해도 괜찮아, 라고 생각할 만한 대인배가 못 되었다. 보지 못해도 괜찮기는, 지랄. 그거 하나를 보기 위해 장장 몇 시간을, 어떻게, 이곳까지, 달려왔는데. 내 여행에 모토나 컨셉은 없지만, 어쨌든 지켜내려고 하는 거의 유일한 신념은, 이걸 신념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거창하기는 한데, 모든 '반드시'와 '당위'들로부터 자유로운 여행을 하는 것이다. 여행할 때 만큼은, 나는 성격적으로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다. 뭐 그냥 있으면 보는 거고, 아님 말고, 이런 식의 마인드가 여행의 주를 이룬다. 그러니 3년 전 파리에 방문했을 때, 루브르 박물관이 휴관하는 걸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았을 정도였다. 박물관이 닫았구나, 싶었을 뿐. 자연스럽게, 이런 내가 '반드시'라고 생각하는 건, 정말 절박하고도 간절한 희망으로 자리하게 된다. 오로라는 정말 오랜만의 '반드시'였다. 얼마 만인지를 굳이 또 생각해보자면, 런던에서의 새해 불꽃놀이 이후 거의 처음이었다.
그 과정이 조금은 고행에 가까웠고, 오로라 자체도 생각만큼 강렬하지는 않아 조금은 허탈하고 허무하긴 했으나, '못 봄'과 '흐릿하게라도 봄' 사이의 어마어마한 간극을 떠올려보니 지금은 그저 다행이라는 마음 뿐이다. 스톡홀름발 아비스코행 열차를 예약한 건 단 며칠 전이다. 구글을 포함하여 이런저런 기상 정보를 모조리 뒤져가며 오로라의 가능성을 계산해 보았는데, 이 날 내가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거란 확신은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었다. 모험과 도전에 가깝게, 더 적확히 말해서는, 도박에 근접한 마음으로 열차 표를 끊었고, 이후 5분 만에, 아, 씨발, 이러고 못 보면 어떡하지, 따위의 불안감이 며칠 내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비스코의 숙소들이 그렇게 싼 편도 아니라, 느긋한 심정으로 내가 오로라의 꼬라지를 볼 때 까지 이곳에서 기다린다, 하는 결의를 다질 수도 없었다. 오늘 오로라를 보지 못했다면, 모든 게 어렵고 골치 아파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제와 따뜻한 침대에 누워 가만히 떠올려보니, 물론 꽤나 큰 물리적 난관이 있기도 했지만, 어쨌든 참 다행스런 하루라는 간사한, 혹은 감사한 마음도 피어 오른다. 추위와 눈이라는 그 난관 덕분에, 희미한 오로라였음에도 별 미련을 아비스코에 남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아비스코로 온 건 잘 한 결정이었다는 자평, 혹은 자뻑을 내렸다. 이때가 아니면 오로라는 특히 더 볼 수 없기에, 그리고 아마 언제 다시 내 생에 이런 기회 비슷한 게 찾아올 지도 모르기 때문에, 만약 아비스코에 않았더라면 오로라의 '오'자만 들어도 상당히 가슴 저밋했을 듯하다.
언젠가부터 여행기의 마지막에는 그 날 인상깊게 들었던, 혹은 하루의 여행과 관련된 음악을 하나씩 선곡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혼자 다니는 여행에서 음악 듣는 것 만한 일상이 또 없으니, 오로라를 보러 나가기 전에 우선 두 곡을 골라놨었다. 못 볼 것에 대비해서는 015B의 '슬픈 인연', 운이 좋아 오로라를 직접 보았다면 솔튼페이퍼의 'What A Place(A.E.I.O.U)'를 선택하려고 미리 결심해 놓았다. 그리고, 숙소를 나서면서부터 내내 이 노래만 들으며 어떤 주술적인 효과를 기대했다. 'What a place'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오로라가 진하고 선명하진 않았으나, 그래서 오늘 찍은 오로라 사진 어디에서도 이 노래의 벅차오름을 느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로라와 내가 슬픈 인연이 아니라는 건 엄청난 행운이고, 다행이다. 정말 진심이다. 여행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건, 좋았던 일들을 위주로 기억하고, 나쁜 일들 역시도 좋은 쪽으로 생각나게 된다는 아전인수격 기억 편집증에 있다. 오늘 추위의 기억마저 완전히 녹을 때 즈음에는, 아마 스웨덴 최북단의 작은 도시에서 어두운 눈밭을 헤매었던 그 고난과 역경도 '추억'이라 불리게 될 지 모른다. 그 때 즈음되면, 오로라를 보았던 이곳이 'What a place'까지는 못 되더라도, 여길 오기 위해 애태우고, 준비하고, 열차 안에서 지루해하고, 또 도착해서는 오로라를 보겠다고 혼자서 한참을 헤매고 떨었던 그 모든 순간들이 'What a moment' 정도로 불릴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천만 다행히도, 솔튼페이퍼의 'What A Place(A.E.I.O.U)'다, 라고 적을 수 있어서 지금은 다소 행복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