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이만큼 시간이 흘러

독일 로스토크 - 체코 프라하 (2016~2017 세계 여행)

by Nell Kid
내가 자랐긴 자랐구나

3년 전의 여행에서 전혀 뜻하지 않게 굉장히 뭉클했던 곳은 파리였다. 파리에 갔던 건, 그래도 유럽까지 왔는데, 라는 마음에서였다. 정말로, 오로지, 그것 뿐이었다. 파리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고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일정 중에 상당히 뜬금 없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 때문에 당시의 여행 루트는,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를 찍고 다시 베네치아로 내려오는 굉장히 기형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파리로 가는 야간 열차는 어쩐 이유인지 취소되어, 폐기차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더군다나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길치였고, 여행 초보자였다. 거리 감각이라는 것도 아예 없었다. 지금도 길을 썩 잘 찾는 편이 아닌데, 이 보다 더하면 더했던 여행이었다. 숙소는 하필 또 파리의 교외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몇 번의 환승을 거쳐 그곳까지 가야 했는데, 그 환승 구간들이 어마어마하게 길다 보니 망할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몇 번씩이나 오르내리기도 했다. 자연스레, 숙소에 도착해서는 거의 방전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그 때 나를 버티게 했던 건, 한국에서 가져 온 고추장 볶음과 햇반, 그리고 영혼의 컵라면이었다. 당시에는 불안한 마음에 교통편 예약을 한국에서 다 마치고 여행을 떠났었다. 지금처럼 전 날 저녁에서야 표를 알아보고 숙소를 예약하는 느긋함과 게으름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야간 열차까지 취소되니, 관광할 수 있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온갖 짜증이 뻗친 상태로 자신을 원망했다. 여기를 왜 왔지, 내가 미쳤구나, 싶은 마음에.


마음이 조금 풀린 건, 노트르담 성당을 거닐면서였다. 언제였더라, 노트르담 드 파리라는 뮤지컬을 아주 감동적으로 본 적 있었다. 아마 중학생 때였을 것이다. 그 이후,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 넘버를 노트르담 성당 근처에서 들으며 여행하는 게 내 삶의 버킷리스트에 추가되었다. 막연히 품어왔던 희망이 이렇게 실현되는 게 꽤 감동적이었다. '대성당들의 시대'로 시작하여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로 이어지는 그 넘버들을 주욱 들으며 노트르담 성당 내부와 주변을 걸었고, 곳곳에서 뮤지컬을 떠올려보았다. 저 큰 종이 콰지모도가 치던 것이었을까, 이 앞에서 클로팽과 에스메랄다를 위시한 집시들이 무리지어 다녔던 걸까, 이런 끝없는 상상들이 이어졌다. 오리지널 프랑스어 버전의 음악들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 현지에서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이 뮤지컬의 프랑스어, 영어, 한국어 버전들 중, 프랑스어 버전이, 당연한 소리겠지만 가장 좋다. 귀에 착 감기는 느낌이랄까. 물론 무슨 말인지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어쩐지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 만큼은 '댄스'도 아니고 '단쎄 몬 에스메랄다'가 되는 게 가장 옳아보인다. 파리의 관광지들은 센 강 주변을 따라 이어져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노트르담 성당에서부터 출발하여 에펠탑 근처까지 가는 유람선도 있던 듯하다. 물론, 나는 걸어다녔다. 그러니 기억이 정확히 안 나겠지. 유람선의 루트를 보고, 아 뭐야, 그냥 강 따라서 계속 걸으면 되네, 하는 마음에 정말 계속 걸었다. 그 때 날씨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작은 소망 하나가 이루어진 것 만으로도 조금은 벅찬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잠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뒤, 저녁에는 에펠탑의 야경을 보러 나갔다. 이걸 굳이 봐야하나, 에펠탑이 별 거 있겠나 그냥 커다란 탑에서 불이 반짝 하는 거겠지, 싶은 마음에 많은 고민을 헀지만, 결국은 나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사람이었다. 당시 여행에 가져갔던 책 중에는 가을방학의 정바비가 쓴 '너의 세계를 스칠 때'가 있었는데, 그 책에 이런 비슷한 구절이 나왔다. 프랑스 여행을 가면 반드시 루브르를 봐야 한다는 생각은 외규장곽 도서의 조속한 반환 만큼이나 시급히 청산되어야 할 문제라고. 어쩐지 뜨끔하는 소리였다. 내게는, 유럽을 가면 반드시 파리를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깟 파리따위, 라고 쿨함을 뽐내는 여행자가 되지 못 한 게 내심 아쉽긴 했다. 하지만 이왕 파리까지 왔고, 또 다음 날이면 다시 떠나야 하는 이 촉박한 여행 일정에서, 쉬면 뭐하나 잠이나 자겠지, 라는 마음으로 숙소에서 힘겨이 발걸음을 뗐다. 에펠탑까지는 역시 길고 긴 환승 통로를 몇 번이나 거쳐야 했다. 그러면서 내일 또 이 저주 받은 지하철 통로를 더 저주 받은 캐리어와 함께 다녀야 한다는 경악스럽기 그지 없는 현실을 조금 개탄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에펠탑에 도착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야경이 실망스럽긴 하겠지만 얼마나 실망스러운지 눈으로 보기나 하자, 라는 생각으로 지하철 역을 나왔다. 그런데, 참 마법같이 뭉클한 순간이 펼쳐졌다. 파리는, 열 두살에 가족 여행으로 방문한 뒤 거의 10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온 곳이었다. 살면서 두 번 째로 방문하게 된 첫 외국 도시이기도 했다. 외국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었을 때 만큼이나, 이미 방문했던 낯선 곳에 아주 긴 시간이 지나 다시 찾을 때도 정말 커다란 울림이 있었다. 시간의 흐름과, 그 시간 동안 버텨내고 견뎌냈던 일들이, 파노라마나 주마등 처럼은 아니지만 꽤 먹먹하게 스쳐갔다.


9년 전에 열 두 살이었던 꼬마는, 자라고 자라 혼자서 유럽을 돌아다니는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 어렸던 꼬마가 어른이 되기까지의 시간이 마냥 쉬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아파야 어른이 되는 거고, 아픈 것은 어른이 되는 과정이며, 그러니 그게 성장통이라면, 차라리 자라지 않는 편이 몇 배는 더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꽤 많았다. 에펠탑의 불빛은, 그런 시간들을 위로해주는 듯했다. 쉽지 만은 않았던 날들을 그래도 어떻게 흘려 보내고, 결국 이렇게 다시 이곳에 왔구나, 라는 무언의 위안도 받았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찾아간 에펠탑과 센강 주변이었는데, 그 반짝이는 따뜻함에 울컥하기까지 했다. 별 게 없을 것이 뻔하니 그냥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센강을 따라 불빛을 바라보며 한참을 걸었다. 3년 전 여행을 통틀어서, 가장 좋았던 순간들 중 하나였다. 아주 어릴 때 딱 한 번 방문했을 뿐이었음에도, 조금은 그때의 기억도 떠오르는 듯했다. 해외 여행을 그리 많이 다닌 편은 아니기에, 나는 왔던 곳을 또 찾을 때 어떤 감흥과 놀라움이 있을지에 대해 아예 무지한 사람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그리도 따스한 반전이 숨어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다음 날 저녁에는 야간 열차를 타고, 그때도 한참을 달려 베네치아까지 가야 했지만, 쉽게 잊을 수 없는 선물을 마음 가득 안고 떠나게 되니 파리를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을 이렇게라도 와서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로스토크에서 프라하로 가던 중 환승을 했던 드레스덴 역, 혹은 정거장
프라하의 야경

3년 전의 파리 여행기를 저리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오늘 도착한 체코의 프라하 역시 열 두 살의 가족 여행 때 방문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처음의 런던 이후로 60일 가까운 날들을, 그 동안 단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곳들 만을 다녔고, 프라하는 정말 오랜만에 '다시' 찾아오게 된 도시다. 그 때가 열 두 살이었는데, 이젠 그 때의 나이만큼이나 시간이 더 지났다. 오늘 아침 로스토크에서 드레스덴으로 간 뒤, 거기서 버스를 환승하여 다시 프라하까지 오는 여정이었다. 어쩐지 오늘따라 캐리어가 더 무겁게 느껴진 하루였기도 했다. 이게 바로 12년이란 세월의 무게인가, 하는 문학적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지만, 이윽고 낑낑대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가방이 주인한테 개기면 답이 없다. 빼면 뺏지 더 넣은 건 없는데 왜 이리 무거운 건지 이해가 안 됐다. 하도 욕을 많이 먹어 뾰루퉁 해진 건가. 하긴, 생각해보면 얘도 고생은 고생이다. 이 친구가 우리 집에 처음으로 오게 된 것도, 바로 12년 전의 여행을 준비하면서였다. 결국 나와는 세 번의 유럽 여행을 모두 함께 다니고 있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3년 전이든 이번 여행이든, 손만 대면 뭐든 망가뜨리는 내 칠칠맞음과 사려없음을 온 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갸륵한 녀석이다. 보니까 캐리어의 바퀴 부분이 많이 닳아 있었다. 너도 나이를 먹었구나. 이젠 퇴역을 앞 둔 가방이 되었어. 너를 데리고 여행을 하는 것도,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열 두 살의 꼬마가, 그 만큼의 나이를 더 먹어 프라하에 다시 방문한다고 생각하니, 그래도 오늘만큼은 이 캐리어에게 '빌어먹을'이란 욕을 할 수는 없었다.


일곱시가 다 되어 프라하의 숙소에 도착하고, 카를교 근처까지 잠깐 산책을 다녀왔다. 강 건너에, 프라하 성도 보였다. 잘 지냈니. 나는 무척이나 많이 달라졌단다. 아이스크림 하나로 마냥 즐거워 하던 열 두 살의 꼬마 아이가, 이제는 체코에 왔으니 필스너를 마셔야지, 하는 때 묻은 어른으로 변했다. 참, 그 때는 그렇게나 순진한 구석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운전하던 자동차 뒷자석에서 생각없이 자다, 깨다를 반복했던 그 아이는, 이제 여행의 매 순간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 되었다. 이렇게 말하니 아직도 젊은 주제에 너무 나이 먹은 티를 내는 것 같긴 하다만, 그 때의 나이만큼의 시간이 흘러 당시의 여행지에 재차 방문하게 되면 이런 감흥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행은 참, 별 것 아닌 일들에 괜한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끼기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고작 15분 정도 걸리는 숙소까지의 길을 잘 찾아온 것 만으로도 괜히 스스로가 기특하고 대견하다. 그래서인지, 미약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는 스스로의 '자람'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듯 했다. 떠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한국에서 여전한 일상을 살아내야 했다면, 너는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저 한결같이 공부를 싫어하는구나, 정도의 생각밖에 못 했겠지. 12년 전이라는 기준점조차 아마 없었을 테지만. 아직 프라하를 본격적으로 돌아본 건 아니지만, 그때의 이 곳에 왔다는 것 만으로도, 뭐랄까, 내 인생의 <보이후드>를 영사기에서 본 느낌이다. 이 <보이후드>가, 다음 12년이 지나고 나서는 <화양연화>가 되겠지.


평생을 살며, 가능한 만큼 여행을 떠나도 여전히 발길 닿지 않은 곳은 세상에 많을 테고, 가지 못 한 곳들에 아쉬움과 미련은 어쩔 수 없이 남을 테다. 그 아쉬움과 미련을 조금이라도 소제하기 위해, 대부분의 여행은 '새로움'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고. 하지만, 아주 낯선 곳으로부터의 기분 좋은 충격 만큼이나, 어느 정도 시간의 간격을 두고 다시 방문한 도시에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그 날들의 그 순간들을 떠올리며, 이 날들의 이 순간까지의 시간을 되짚어보는 건 이 곳에서만 가능한 경험인 것도 같고. 이런저런 새로운 감회가 드는 저녁이다. 오는 길에 사 온 필스너 맥주를 마시니 조금 더 감상적인 기분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마셨던 필스너 캔과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으면서도 어쩐지 더 풍미가 있는 느낌이다. 이런 게 바로 플라시보 효과인가. 오늘을 마무리하는 플레이리스트는 Camera Obscura의 'Lloyd, I'm ready to be heartbroken'이다. 꽤 긴 시간 달려야 했던 버스를 조금이라도 덜 지겹게 해주었던 고마운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