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좋고 날도 좋고

독일 함부르크-로스토크 (2016~2017 세계 여행)

by Nell Kid
그리고 그 글은 정말 완벽했고

나는 내 그릇과 분수를 잘 알며, 가능한 주제 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내게 있어 중요한 삶의 가치란 도전이나 성취보다는, 무탈함과 안정성이다. 자연스레, 오르지 못 할 나무는 쳐다 보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약간의 질투나 시기도 있었는데, 이젠 그 마저도 희석되어, 오르지 못 할 나무에 기어코 오른 사람을 보면 진심어린 경탄을 내뱉을 수 있게 되었다. 와, 저길 오르네, 이런 식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한창 고민하던 시기에, 물론 이건 여전히 가장 주된 고민거리이긴 하나, 지금보다 더 심한 절박함과 강박으로 현실을 대하던 어떤 때에, 나의 부모님은 로스쿨 진학을 권유한 적 있었다. 하아, 친애하는 부모님, 당신의 아들은 그럴 그릇이 아니랍니다. 법관으로의 삶은 내가 절대로 오르지 못 할 나무라는 걸, 어쩌면 그 때부터 본능적으로 알았던 듯하다. 이 곳 시각으로 새벽 3시 즈음에 시작된 탄핵 심판 생중계를 지켜보며, 행여의 짧은 시간이라도 법관을 준비하느라 인생을 허송세월하도록 방임하지 않았던 지난 날의 내 직감에 작은 감사를 표했다. 판결문은 정말 명문이었다. 평생을 노력한다고 해도 저런 수준의 글은 흉내조차 못 낼 듯했다. 굳이 그 시각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던 건 이 나라 청년으로서 으레 지녀야 할 애국심과 우국충정의 자연스러운 발로였기 때문이었다, 라면 참 군대에서의 복무신조같은 이야기겠지만, 실은 그저 다음 여행 계획을 고민하다보니 밤이 많이 기울었고, 그러다 보니 선고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였다. 그렇다, 항상 놀고 먹는 여행이지만, 가끔은 이렇게 머리를 쓸 때도 있다.


대부분의 매체에서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될 거라 예측했지만, 선고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던 판결문은, 무엇 하나 뺄 수도, 더할 수도 없는, 그 자체로 단단한 작품 같았다. 정확을 넘은 적확함 안에는 치밀하고 탄탄한 논리가 있었고, 공정과 신뢰가 함께 피어났다. 선고 과정을 지켜보며, 영화 <스티브 잡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을 그리면서, 애플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아이팟과 아이폰은 차치하고 그를 이야기했던 작품이었다. 아이팟과 아이폰은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의 신화적 성공담을 더욱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소재들이다. 분명 영화를 만들면서도 아이팟과 아이폰은 커다란 유혹이었으리라. 하지만 영화는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 출시 이전에 진행했던 세 번의 프리젠테이션에만 집중하고, 이들 장면을 통해 그가 본질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는 지를, 아이팟과 아이폰 없이도 충분히 다각도에서, 또 깊이 드러내었다. 오늘의 선고를 영화 <스티브 잡스>에 비유하는 것이 아주 적절하지는 않겠지만, 법관과 영화 연출자의 태도 만큼은 유사한 지점들이 보였다. 지난 수 개월 동안 거대한 국민적 분노를 내내 유발했던 이 사건 앞에서, 이성과 지성으로 파면 사유를 하나 하나씩 짚어낸 법관들의 냉정함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법관들은 그 거대한 분노에 어느 정도 동감은 했지만 동조하지 않았고, 법리적 논리들로 차분하게 각각의 쟁점들에 결론을 냈다. 그 과정을 통하여 앞의 몇몇들은 파면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결론도 도출됐다. 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통령을 파면할 수 밖에 없던 최종적인 쟁점이 얼마나 중대한 파면 사유였는지를 역설적으로 부각하였다.


한 기사가 언급했던 것처럼, '그러나'의 힘을 새삼 느꼈던 선고문이기도 했다. 역접의 접속사가 가진 힘이었다. '그러나'를 비롯하여, 가장 적확한 지점에, 가장 적확한 단어와 문장들로 이루어진 이 판결문에는 다른 어떤 주장이 끼어들 여지조차 없어 보였다. 판결문 속 모든 단어와 문장들은 명료함의 미덕을 실현하기 위해 복무하는 존재들인 듯 했다. 판결문은 쉬운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문장 역시 드물었다. 냉정하고도 침착한 어투로 각 쟁점들의 법리적 시시비비를 가려내던 판결문은, 마침내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라는 종반부까지 이르렀다. 수사어가 거의 배제된 채 작성된 이 판결문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던 '압도적으로'라는 구절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이전까지 쉽게 예단할 수 없게 팽팽하게 진행되던 판결문의 무게추가 파면쪽으로 확 기울어지던 순간이었다. 좋은 글이란, 결국 최대한 많은 것들을 '버리는' 글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한 시간은 족히 넘으리라 예측됐던 이 선고가 채 30분이 안 되어 마무리되었고, 그 압축 과정에서 아주 많은 것들을 버렸을 이 판결문에는 중요하지 않은 문장이 단 하나도 없었다. 30분도 안 되는 이 판결문을 작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수정이 있었을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좋은 글의 요건들에 죄다 성립하는 한 편의 글이었고, 그래서인지 문학 작품도 아닌 이 판결문에서 상당하고도 유효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뜨겁디 뜨거웠던 이 사건을, 지성과 이성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최선의 냉정함과 침착함으로 대했던 고뇌의 흔적이 느껴진 것도 감동을 받았던 한 이유였다.

오후의 로스토크. 모처럼 맑았던 날.

그 고뇌는 비장하게도 보였다. 모두가 아낌없는 비난과 지탄, 또 조롱을 내뱉는 이 상황에서, 그런 감정적 동요에 휩쓸리지 않은 채 오직 법 안에서 탄핵 사유의 합당함을 가리기 위해 고민했던 노력은, 왜 오늘의 이 곳이 최후의 보루여야 하는지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품위와 품격이라는 말 역시 아깝지 않았다. 새벽의 결과 그 자체보다 더욱 감동적이었던 건, 바로 판결문 전문의 완전성과 여기서 언뜻 스치는 법관들의 고뇌였다. 쏟아지는 기사들을 제쳐두고, 이 판결문을 몇 번이나 정독했다. 보면 볼수록 참 멋진 글이었고, 그 동안 법관의 삶을 꿈도 꾸지 않았던 게 오늘의 결과 만큼이나 더 없이 타당했던 삶의 선택이라고 확신했다. 어쨌든 것으로,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여행 중 재외국민 투표가 현실이 됐다. 살다 살다 타지에서 내 투표권을 행사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그것도 내 생의 첫 대통령 선거를. 여행에서 새해 불꽃 놀이를 지켜보고, 축구 경기도 관람하고, 오로라도 보고, 거기에 투표까지 하게 되었다. 패키지도 이런 패키지가 또 없다.


새벽까지 생중계를 본 탓에, 함부르크로 로스토크로 오는 길이 다소 피곤하기는 했지만, 그리 불쾌하지는 않았다. 함부르크와 마찬가지로 독일 북부에 위치한 이 도시는 구 시가지와,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바닷가가 유명하다는데 나는 시내만 걸어서 관광했다. 여행 초창기 영국에서는 기를 쓰고 바닷가에 가려고도 했으나, 이 후 워낙 많은 바다를 보고 나니 이젠 여기에 별다른 미련이나 아쉬움이 없다. 한 때는 거대한 항구 도시였는지, 트램이 지나다니는 선로마저 일반적인 철도와 비슷했고, 이게 꽤나 신기함을 자아내었다. 부둣가 근처에는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 역사와 선로가 보였다. 날이 쾌청하고 기온 역시 낮지는 않아, 바람이 꽤 강했음에도 그리 춥지는 않았다. 아기자기한 시내가 은근히 매력적이기도 했다. 특히 건물들의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알록달록, 이게 한국에서였다면 그저 유치하거나 촌스럽게 느껴졌을 텐데, 이상하게 관광지에서는 굉장히 이국적이다.

역시 로스토크의 거리들.

바람도 좋고, 날도 좋고, 이래저래 기분도 좋고. 어제 함부르크에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내려서 그랬는지, 이 쾌청함이 유독 반갑기도 했다. 쾌청함 덕분에, 그 동안과 비교하여 조금 더 강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사실 봄 만큼 바쁜 계절이 또 없다. 봄은 개강이고, 벚꽃은 중간고사다. 물론 내가 그때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삶을 성실히 살아낸 건 또 아니긴 한데, 아무리 대충 살아도 최소한은 해내야 하는 몫이 있었고, 그러니 온전히 봄의 오고 감을 음미하기는 어려웠다. 사실 봄이 왔다는 걸 절감하다시피 했던 건 훈련소에서 벚꽃을 봤을 때였다. 세상 모든 것들이 나빼고 다 화창해 보였던 그 지랄스러운 시절. 여행을 오니, 시야가 그리 넓어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에도 봄이 오고 있다는 걸 한국에서보다는 더 또렷이 느끼게 된 듯 하다. 그러다 보니 오늘 로스토크에서 이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철길을 보았을 때, <건축학개론>에서의 이제훈과 수지처럼 저 길을 연인과 나란히 걸으며 장난치는 상상을 하며 봄의 설렘을 혼자서 만끽하기도 했다. 대놓고 맑은 날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그런 날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봄이 오는 이 느낌이 나쁘지 않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로는, 원래는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를 선택하려 했으나, 자꾸 다른 노래 하나가 귀에 밟혀 결국 수정하게 되었다. The XX의 'VCR'이란 노래다. 오늘 같은 날에도 'Viva la Vida'가 아닌 다른 노래를 고르는 게, 어쩌면 법관들의 태도와 일맥상통하는 자세가 아니겠는가. 물론, 아주, 아니다. 되도 않은 소리가 자꾸 나오는 걸 보니 글이 길어지긴 길어진 모양이다. 먼 훗날 나의 모든 언어 능력이 아예 퇴화돼버리기 전에, 오늘의 판결문 같이 '압도적으로' 완벽한 글을 한 편 써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어본다. 상당히 요원해보이기는 하지만. 참 많은 걸 느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