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엔

독일 함부르크 (2016~2017 세계 여행)

by Nell Kid
그래서 그 때

여행은 삶의 모습과 퍽 비슷하여, 대부분의 기대는 실망으로 귀결되곤 한다. 영국만 벗어나면 쾌청한 날씨가 계속될 거란 막연한 기대 역시도 그랬다. 지랄스러운 날씨는 국경을 가리지 않았다. 방문하는 국가들에 대해 얼마나 무심했고 무지했는지, 매 번 현지에서야 뒤늦게 깨닫고 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너와 함께한 모든 날이 다 좋았다고 하려면, 우선은 '너와 함께한'의 '너'가 있어야 하고, 거기에, 내가 도깨비여야 한다. 혼자 다니는 이 여행에서 좋은 날은 좋은 날이고, 나쁜 날은 나쁜 날일 뿐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지랄스러운 날이 있다. 가장 악랄한 놈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나쁜 놈인 게 낫다. 오히려 그러면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아주 악질의 나쁜 놈인데, 꽤 매력 있지 않은가. 처음부터 화끈하게 비를 퍼부었다면 조금 시원한 맛이라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오늘 아침까지, 함부르크는 그리 나쁘지 않은 날이었다. 물론 오후의 일기 예보를 확인하지 않고 나온 내 잘못이 크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비가 오리라는 예상을 쉽게 하기도 어려운 날씨긴 했다. 하지만 늦은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간사한 자식. 비가 이렇게나 오는 줄 알았다면, 식당에 조금 더 눌러 앉아 있을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이미 식당에서는 나왔고, 숙소까지의 거리는 멀며, 아주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불안한 눈빛으로 거친 생각을 한 뒤에, 커피숍에 들어가서 잠시 비를 피하기로 결심했다.


독일은, 당연하게도, 유로화를 쓰는 나라다. 유럽 여행을 왔으면서도, 정작 유로화를 쓰는 국가는 아일랜드 이 후 이번이 두 번 째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그리고 덴마크 모두 각자 국가들의 '크로나'란 화폐 단위를 사용했는데, 이들은 서로 호환되지 않았으며 환율 자체도 미묘하게 달라 매 번 익숙하지 않은 암산 과정을 거쳐야 했다. 북유럽 국가들의 지나치게 높은 물가 때문에, 암산의 결과는 언제나 경악스러웠다. 노르웨이의 항구 도시 베르겐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지출은 맥도날드에서였다. 세트 하나와 치킨 세 조각을 주문했는데 15,000원 정도의 금액이 나왔다. 아니 세상에, 이 돈이면 한국에서는 두 마리 치킨도 먹을 수 있는 걸. 독일의 물가가 아주 낮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 국가들에 비해 인간적이기는 하다. 더불어 유로화를 쓰는 국가라 추가적인 환전이나 새로운 암산 공식이 필요하지도 않고. 비를 피해 들어온 스타벅스 간판의 유로화가 괜히 포근한 느낌이었다. 자, 이 곳이야 말로 비를 피할 장소야, 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한국 첫사랑 설화의 근원인 단편소설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가 비를 피하던 오두막도 생각났다. 참, 소나기라는 작품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보라색만 보면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빈곤한 상상력의 시발점이 바로 소나기를 배우던 학교 수업 시간이었다. 이걸 주입식 수업이 진행되는 교과서가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 접했다면, 아리고도 쓰린 이 소설을 통해 거대한 감수성을 사춘기 초입에 함양해 볼 수 있었을 텐데.

걸어다니기 나쁘지 않았던 함부르크 시내

가장 예민하고도 불안정한 그 날들에, 정작 사랑에 대해서는 느끼고 배울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게 안타까운 사실이다. 연애시로 해석하는 게 훨씬 더 와닿고 감동적인 작품들도, 거대한 사회적 담론으로 우겨 넣어지며 괜히 그 울림이 방해되었던 경우들이 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 괴리가 가장 참담했던 건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다. 아, 물론, 민주화라는 것 역시 참 중요한 주제이기는 하나, 애타는 기다림과 그리움을 절절히 표현해낸 이 시에서마저 그런 도식화된 해석을 들어야 하다니. 진심 어린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려 본 사람이라면,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다소 울컥할 수밖에 없다. 기다리는, 혹은 기다려야 하는 이의 마음을 이토록 섬세하고도 적확하게 표현한 작품이라니. 학교의 문학 교육은 감수성을 배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통로다. 학창시절 동안 사랑의 아찔함과 이별의 저밋함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이기도 하다. 유난히 우리 교육은 연애나 사랑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이성 교제'니 하는 식의 점잖떠는 표현으로 그것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겠지만. 이건 아무래도 촌스러운 사고방식이다. 특히, '이성 교제'라는 표현은, 동선간의 연애를 태초부터 배제하고 있기도 하다. 이리도 궁핍한 상상력을 주입하는 교육이라니. 다른 과목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문학 교육이라면, 그 지향점은 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맞추어져야 되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소나기'만 보아도 가슴 아픈 구절들이 얼마나 많은가. 소녀에게 끝내 전해주지 못한 소년의 호두알, 입던 옷을 그대로 입혀 묻어달라는 소녀의 유언, 이를 이야기하는 부모의 대화를 들으며 흐르는 눈물을 참아야 했던 소년. 이에 대한 기계적인 해석 만을 들은 채, 내신 기간이 되면 자습서의 요점 정리로만 작품을 기억해야 했던 학창 시절이야 말로 소년의 호두알 만큼이나 안타까운 날들이었다. 교육 입안자들 중에 드라마 <경성스캔들>을 봤던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거기 마지막 장면에, 먼저가신 분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이 땅에서 마음껏 연애하고, 마음껏 행복하십시오 라는 자막도 나오는데. 정작 그 감수성을 배양할 기회는 없다시피 하니.


시를 보며 처음으로 마음이 동했던 건, 중학교 3학년 때 영어 학원에서 외우게 시켰던 예이츠의 '수양 버들 가지 아래서'였다. '그때 난, 너무 어리고 어리석어 당신에 동의할 수 없었죠', 라는 그 구절이 왜 그렇게나 와닿았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으나, 더군다나 그때는 아주 어린 나이였는데 말이지, 하지만 그 시는 내 감수성에 있는 그대로 '박혀버린' 작품이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언제나처럼 어떤 달의 모의고사 문제를 풀 때 였는데, 거기서 도종환 시인의 '가을 비'라는 작품을 만났다. 시험을 보고 있다는 것도 까먹고, 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꽤나 멍한 상태로, 시를 한참이나 읽었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바람만이 불겠지요/바람이 부는 동안/또 많은 사람들이/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이 구절이 특히나 인상 깊었다. 그 후 고등학교 3년 내내 가끔씩 울적해지거나, 울적해지고 싶을 땐 이 시를 찾았다. 가끔은 그렇게 부러 감성적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다가 대학교 1학년 글쓰기 수업 시간에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글을 발표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나는 주저없이 이 시를 선택했다. 그 이유로는 뭐랬더라, 좋은 글이라는 건 사람들의 걸음을 멈출 만한 울림이 있어야 된다고 적었나, 뭐 그런 식의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 때나 지금이나, 좋은 글이 무엇인지는 쉽게 답하지 못하겠다. '좋은'이라는 게 무엇인지 조차도 잘 모르겠고. 하지만 여행을 떠나오고 그래도 거의 매일 그날 그날의 기록을 남기며, 하나만큼은 어렴풋이 느끼는 중이다. 글을 위한 글, 또는 오직 써야 하기에 쓴 글은 좋은 글이 되기 어렵다는 것. 귀찮아 죽겠는 상태로 남긴 지난 여행기치고 멀쩡한 글이 별로 없다는 게 그 슬픈 반증이다.

함부르크의 랜드마크가 된 콘서트 홀과 그 주변

함부르크에 내리는 비가 소나기인 줄 알았는데, 소나기가 아닌 모양이다. 음, 최소한 변덕스럽지는 않구나. 다만 지랄스러울 뿐. 오늘 거리를 걷다 보니, 꽃이 핀 곳들도 있었다. 꽃이라니. 그렇다면 이 비는 봄 비인 건가. 지랄스러운 소나기를 봄 비라 생각하니, 어쩐지 덜 지랄스러워 보이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꽃을 선물하는 걸 꽤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꽃다발 만큼이나 풍요로운 그 사람의 웃음을 보는 게 좋았었다. 모든 꽃은 언젠가 시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또 꽃이다. 그걸 알면서도, 우린 즐거운 마음으로 꽃을 주고 받았다. 그 화려한 꽃도 언젠가 시들고 죽겠지만, 그게 꽃을 선물하는 데 거리낌이나 주저함을 느끼게 하지는 않았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또 그 사이에 아주 많은 꽃들이 피고 죽겠지만, 우리라는 계절만큼은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생각해보면 참 아둔하고 바보같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두 사람이 나누는 사랑에도 꽃 만큼이나 유효한 생명이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꽃이 시드는 것에 지금도 종종 아쉬움과 무력감은 들지만, 그 사실마저 부정하려 들지는 않는다. 관계에도 그처럼 끝이 있다는 게 왜 그땐 그리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까. 예이츠의 시처럼, 어리고 어리석었기 때문이었던 걸까. 뭐, 지금이라고 막상 그때보다 덜 어리고, 덜 어리석은 것 같지는 않다만. 영원하리라 생각했던 계절이 끝나고서는, 거대한 허무감이 온 마음을 지배했다. 그것 역시도, 꽃의 멱살, 아니 줄기를 잡고 이렇게 질 거면서 왜 피어났니, 라고 따지는 것과 비슷한 어리석음이었다. 때가 됐으니 피고, 또 때가 됐으니 지는 것인데, 이 '때'라는 것이 나의 소망과 희망과는 언제나 괴리가 있는 생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세상 다 산 것 같고 너무 나이들어 보이긴 하는데, 어쨌든 그 땐 그랬다.

시청까지 걸어오면서 카메라에 담은 함부르크의 전경
작은 음악회 사진

비가 조금이라도 그칠 때까지 앉아 있자는 마음이었는데, 여기 카페에서도 '때'가 되니 작은 음악회가 연주되기 시작했다. 뭐 이런 고급스러운 스타벅스가 다 있나 싶어 잠시 놀랐다.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아마도), 그리고 드럼의 단촐한 조합인데, 잘은 모르지만 재즈나 보사노바 풍인 듯하다. 이걸 듣고 저건 스윙 즈고 이건 이런 재즈야, 라고 말 할 수 있는 교양인이면 얼마나 좋으련만. 영화 <라라랜드> 때문인지, 이런 카페에서 피아노 치는 사람을 볼 때 마다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이 생각난다. 누구라도 한 번은 품어보았을 만한, 그 때 그랬다면, 또는 그 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란 환상을 아주 멋지게 풀어낸 영화의 마지막이었다. 앞의 계절들은, 결국 5년 후의 겨울을 위해서 복무한 것들이었구나 싶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 전혀 뜻하지 않은 때에 듣고 있는 이 재즈 연주회가 꽤 좋다. 이러니 창밖의 비가 조금 용서되는 느낌이다. 이 정도 아량을 베풀었으면, 내가 숙소를 갈 때 즈음에는 지도 알아서 물러날 줄을 알면 좋을텐데. 과연 그래줄 수 있을지.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이제는 디에이드란 명칭으로 이름을 바꾼, 어쿠스틱 콜라보의 '다시, 봄'이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겨울이 지나가는 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마치 저 재즈 선율처럼 은근하고도 선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