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자고 먹고

독일 함부르크 (2016~2017 세계 여행)

by Nell Kid
여행 뭐 있나

최근의 연이은 이동으로 누적된 피로가 임계치를 맞이한 듯했다. 영국에서 여행할 때는 며칠에 한 번 꼴로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날도 있었는데, 아일랜드부터는 그런 여유를 누리지 못했고, 독일 함부르크에 도착해서는 아주 극심히 피로한 상태였다. 전 날 코펜하겐에서 충분한 잠을 자지 못하고, 함부르크로 오는 길에 이용했던 버스 내부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이 아마도 그 이유였다. 덴마크에서 독일로 버스로 이동할 때는, 중간에 50분 정도 배를 타고 해협을 건너야 했다. 버스가 선박 안으로 들어간 다음, 승객들은 배에 올라 잠시 시간을 보내다 다시 버스로 내려와 남은 길을 달리는 체계다. 호스텔에서 바쁘게 나오느라 아침을 챙겨먹지 못했었는데, 덕분에 배에서 간단한 샌드위치와 탄산 음료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이 순간이 덴마크에서 독일로 이동할 때 있어서 유일하게 쾌적했던 순간이었다. 저가 버스였던 만큼 버스의 모든 좌석이 꽉 찰 정도였고, 무척이나 비좁은 상태로 다닥다닥 붙어 있어야 했다. 널찍한 선박 안에 들어서니 그제야 조금 숨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호스텔이 버스 정류장에서 5분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온 뒤,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잠시 기운을 차리고는 무엇이든 먹으러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함부르크로 온 건 여기에 딱히 볼 게 있어서가 아니라 덴마크에서 가까운 독일 도시라서였는데, 그러다 보니 여기로 오면서도 딱히 궁금증이나 기대감은 없었다. 하지만 함부르크도 독일의 중요한 도시들 중 하나고, 그러니 이 곳에서도 독일 전통 맥주를 마실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피어났다. 독일의 객관적인 물가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보름 정도를, 그 전의 영국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여행 전체를 지독하고도 지나치게, 혹은 악랄하게 비싼 곳들을 여행했던 지라 오히려 이 곳은 비교적 저렴하게 느껴졌다. 따라서 오래간만에 괜찮은 식사를 하며 영양 보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두 시간 정도는 시내를 관광했다. 천천히, 터벅터벅, 시청까지 걸어갔다. 해질녘의 풍경이 나름 예쁘기는 했으나 아주 매력적인 곳은 아니었다. 시청까지의 도보 관광을 하고 났더니 훨씬 더 배가 고팠다. 돌아다니다 괜찮은 음식점이 있으면 들어가자고 생각했는데, 마땅한 게 없어 다시 숙소 근처까지 오고 말았다. 숙소 주변에는 몇몇 음식점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 곳에 들어갔다. 자리를 안내 받고, 맥주 한 잔과 소시지, 그리고 슈니첼을 주문했다. 슈니첼은 돈가스 같은 독일 음식이다. 오랜만의 정식 식사에 괜히 마음부터 풍요로워지는 느낌이었다.


소시지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한국의 평범한 호프집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맥주는 아스트라라는 맥주였는데, 이 곳 함부르크에서 유명한 맥주라고 한다. 그래도 소시지는 소시지고, 맥주와의 조합이 상당히 잘 어울렸다. 맥주 한 잔에, 여독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슈니첼은 꽤 맛있었다. 돈가스를 먹는 느낌이기는 했으나, 돈가스가 원체 맛있으니 슈니첼도 맛이 없을 수 없었다. 양도 나름대로 푸짐한 편이었다. 맥주 한 잔을 더 주문하여 식사를 즐겼다. 이렇게나 주문했는데도 가격이 노르웨이에서의 맥도날드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참 경악스러웠다. 이렇게 조금이나마 제대로 된 식사를 즐길 때마다, 나는 베르겐에서 충동적으로 먹었던 해산물 요리를 잊을 수 없다. 맛있긴 정말 맛있었으나, 그 어마어마한 가격. 나는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맛있고 즐겁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0원이라는 소리는 없다. 하아, 그래, 내가 언제 그 해변가에서 그 싱싱한 해산물들을 먹어 보겠어. 매몰비용을 신경쓰면 안 된다고 어릴 적부터 경제학 시간마다 들어온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래서 내가 경제를 못 하는 건가. 그런 점에서 독일의 식사는 아주 훌륭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큰 포만감과 꽤 괜찮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맥주와 슈니첼

그리고 돌아온 숙소에서 눈을 붙였고, 오늘 낮까지 차마 일어날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이제 일어나야 해, 관광을 시작해야 해, 라는 자기 주문을 끝없이 되뇌었지만 실은 되도 않은 소리였다. 관광은 얼어죽을. 원래대로라면 내일 또 함부르크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되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몸 상태인 듯 하여 오늘 하루는 아예 휴식일로 설정해놓고 이 곳에서의 숙소를 하루 더 예약했다. 이 후에 별다른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여기 하루 더 있는다고 뭐 달라지겠어. 이렇게 되니 마음이 아주 편해지며,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조금 더 푹 잠을 잤다. 배가 고파 잠을 깼고, 오늘도 숙소 근처의 그 식당으로 갔다. 슈니첼 외에 다른 메뉴 중에서 추천을 부탁했더니, 돼지뼈를 삶은 고기가 나왔다. 야성미와 야만성을 있는 그대로 자극하는 이 음식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포크 두 개를 들고 살코기를 뜯어 먹었다. 뜯는 고기에는 그 만의 맛이 있다. 살코기를 끝까지 자비없이 다 뜯어 먹었다. 같이 나온 독일식 김치(?) 역시 은근히 잘 어울렸다. 충분한 잠을 취하고,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니 몸이 마침내 제대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내일에는 조금 더 기운 내서 관광을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의 음식

한 도시에서 길어봤자 2, 3일 정도 머무르며 바로바로 다음 곳으로 이동하는 여행을 나는 '끊어친다'고 표현하는데, 체력적으로 가장 벅찰 때가 이 지점이다. 기차나 버스에서만 몇 시간을 앉아 있어야 하는 이동 시간 자체가 우선 매우 힘들고, 또 얼마 머무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체크아웃을 위해 짐을 다시 싸야 하는 매 과정이 그리 유쾌하지 만은 않기 때문이다. 어제 오늘은 그 한계에 거의 다다랐던 시점이었는데, 하루를 휴식으로만 보내면서 조금 피로를 푼 듯도 하다. 오직 먹고, 자고, 또 먹기 위한 휴양 여행도 있지 않은가. 언제, 또 어떻게 휴식을 취할 지도 긴 여행에서는 참 중요한 과제다. 그나저나, 오늘로서 우리나라 야구 대표팀이 WBC에서 1라운드 탈락을 확정지었다고 한다. 두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인데, 그 때문에 앞으로 와이파이를 애타게 찾지 않아도 될 듯 하다. 모처럼만의 야구에 잠시 신이 났지만, 연속된 비보에 지금은 다소 씁쓸하다. 그래도 조금 더 지나면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개막한다. 내게 있어서 봄의 상징은 벚꽃도, 민들레도, 또 개학도 아닌, 야구 시즌의 개막이다. 그래야 한 해가 완전히 시작된 느낌이기도 하다. 봄이 오기는 오는 모양이다. 이럴 때마다, 시간은 도대체 얼마나 빠른건가 싶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뭐, 봄이 오든 말든 나는 이제 또 잠을 자겠지만.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Teen Daze의 'Hold'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