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프라하

체코 프라하 (2016~2017 세계 여행)

by Nell Kid
이름값을 증명해낸 하루

프라하를 배경으로 촬영된 멋진 영화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 이를테면 <뷰티 인사이드>라든가, 또 <뷰티 인사이드> 라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뷰티 인사이드> 라든가. 애정해 마지 않는 수준을 넘어, 대사를 달, 달, 달 외울 정도로 많이 본 이 작품의 마지막 배경이 바로 프라하다. 이별을 고하고 프라하로 떠난 우진을, 이수가 찾아가 그들은 재회한다. 애정해 마지 않는 작품이고, 대사까지 달, 달, 달 외울 정도지만,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바로 프라하에서의 에피소드다. 뭐랄까, 너무 작위적으로 동화스러운 마무리 같았다. 물론 이 영화 자체가 판타지 장르에 기반을 두고 있긴 하지만, 프라하에서의 장면 만큼은 미학적, 혹은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연출해내려는 의도가 지나치게 노골적이었다. 그러나 <뷰티 인사이드> 자체는, 내게 있어 그 해의 영화였다. 특히 두 사람이 헤어지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영화관에서 주먹까지 물고 울었다. 사랑과 노력이라는 주제를 이런 식으로 풀어냈다는 것도 참 신선했다. 개인적으로 한효주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의 작품은 단연코 <뷰티 인사이드>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개봉했던 <아가씨>에서 김민희 이외에 다른 배우를 쉽게 상상하기 어렵듯, <뷰티 인사이드>의 이수 역할도 한효주가 아니라면 누가 그렇게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싶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더불어, 가끔 울적해지고 싶을 땐 이 영화를 자주 꺼내 볼 정도다. 스테이크가 좋아요, 초밥이 좋아요? 아마 이 대사부터, 나는 <뷰티 인사이드>에 푹 빠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뷰티 인사이드>의 마지막 장면

그렇게나 좋아하는 영화에서, 딱 하나 별로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지금 여행하고 있는 프라하에서의 재회라는 게 새삼 신기했다. 여행지를 돌아다니다, 좋아하는 영화의 좋아하는 장면이 촬영된 곳을 겸사겸사 둘러보는 일은 있었지만, 좋아하는 영화의 딱 하나 좋아하지 않는 장면이 촬영된 장소를 찾아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뭐 이게,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아주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소리지, 싫어한다는 말은 아니다. 영화 전체의 흐름속에서 마지막의 재회 장면이 꼭 삽입됐어야 하나 싶은 의구심이 있을 뿐이다. 아마도, 그 무렵 종료되었던 내 연애에는 '재회'의 가능성이 별로 없어서 배가 아팠는 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영상미가 전반적으로 아주 우수하며, 특히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그 자체로만 떼놓고 보면, 눈이 내리는 언덕길에서 두 사람이 헤어질 때 다음으로 가장 감성적인 영상미를 뽐내는 장면이다. 특히 영화에 등장했던 모든 '우진'들이 등장하여 이수와 키스하는 장면의 배경이 참 예뻤다. 어제 저녁, 구간 반복을 여덟 번 정도 하며 이 영화의 마지막 촬영지를 찾아내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나 철저한 고증으로 기껏 발견해서 기뻐하고 있었더니, 네이버에 '뷰티 인사이드 프라하'라고 검색하니 한 번에 나왔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참 많았다. 맥주를 마시며 그 장면을 여덟 번 정도 돌려보니, 하아, 음악과 영상이 참 좋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왜 이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아마 이별 장면에서의 울컥함이, 너무 동화적인 장면으로 쉽게 희미해지는 것 같아 그랬던 듯 하다. 영화를 처음 보던 시기에는 그들의 이별에 더욱 공감이 되었고, 그러니 마지막 장면까지의 개연성이 그리 탄탄해보이지는 않았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까지 했던, 그래서 헤어지는 순간 다소 안도감까지 느꼈다는 이수의 마음이, 어떤 생각의 변화를 거쳐 프라하까지 오게 되었는 지에 대한 설명이 다소 빈약했다. 매일 얼굴이 변하는 남자를 사랑해야 했던 이수의 입장을 조금 더 보여주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따라서 그 동안 이 영화를 돌려볼 때도, 두 사람이 헤어지는 장면까지만 주로 봐왔다. 오늘의 관광을 위해 어제 프라하에서의 장면만 돌려보면서, 내용과는 크게 상관없이 영화의 영상미에 몇 번을 감탄했다. 이 영화의 음악도 워낙 좋은데,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재회'라는 OST가 그 근사한 배경에 함께 깔리니, 아예 넋을 놓고 지켜보았다. 너무 넋을 놓고 지켜보느라, 다섯 번이면 끝났을 고증을 여덟 번의 구간반복에 걸쳐서 마무리 지었는 지도 모르겠다. 70일 넘게 여행을 하다 보니 아주 많은 사진들을 찍고 있는데, 그러면서 더욱 절감하는 건 내 부족한 사진 실력이다. 그러다보니 잘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진심으로 감탄하게 되는데, <뷰티 인사이드>의 이 마지막 장면이 그랬다.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하며, 영화에서만큼은 아니라도 꽤 괜찮은 사진을 몇 장 건지리라 하는 비장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 저녁에는 너무 어두워 잘 몰랐는데, 프라하는 상당히 아름다운 도시였다. 강 건너에는 구시가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저 바라보며 걷는 것 만으로도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기도 했다. 12년 전에도 이렇게 예뻤던가. 당시에는 큰 감흥을 못 느꼈던 것 같은데. 확실히 사람이, 자라면서 많이 변하기는 하나 보다.

멀리 보이는 프라하성
카를교 위에서
카를교와 그 주변

다리 몇 개를 지나 카를교까지 도착했다. 카를교에는, 정말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바글바글한 인파를 본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순간적으로 긴장이 되었다. 혹시라도 소매치기가 있지는 않을까. 자물쇠로 배낭을 잠그었지만, 어쩐지 꺼림칙한 느낌이 계속 됐다. 그 긴장 때문에 프라하를 온전히 즐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즐겁게 감상하기에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카를교를 반 쯤 걷다, 다시 돌아와, <뷰티 인사이드>의 촬영지로 향했다. 캡쳐해둔 화면과 강 건너의 풍경을 번갈아가며 대조했다. 마침내, 그 장소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했다. 이수와 우진이 입을 맞추었을 만한 지점에 서 보기도 했다. 키스 장소로 이만큼 아름다운 배경도 또 없겠다 싶은 곳이었다. 멀리에는 프라하 성이 있었고, 우측에는 카를교가 위치해있었다. 오히려 이곳의 인적이 더 적어, 조용히, 또 오래 방해받지 않고 경치를 감상하기에는 카를교 주변보다 더 좋았다. 얼마 있지도 않은 미적 감각을 총동원하여 사진을 찍어보려고 노력했다. 만족할 만한 사진은 끝내 나오지 않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 중 하나인 <뷰티 인사이드>의 촬영지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괜히 좀 기분이 남달랐다. <뷰티 인사이드>의 OST를 함께 들었는데, 그 순간에는 소소한 뭉클함까지도 느껴졌다. 이수와 우진이 어렵게 재회했듯, 나와 프라하도 12년 만에 다시 만난 인연이었다.

<뷰티 인사이드>의 촬영지 부근. 다 비슷해 보이지만 감상하자.
다리를 건너 보이는 구시가지의 풍경들.

오랜 시간을 촬영지에서 머물다가, 마침내 발걸음을 떼고 카를교로 다시 향했다. 그리 넓지 않은 폭을 가진 이 다리 곳곳에는, 여러 예술가들이 있었다. 카를교의 초입에는 많은 잡상인들이 있었는데, 막상 다리 위는 오히려 다소 한적한 편이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블타바 강의 모습이 꽤 이국적이었다. 프라하가 이 정도로 예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12년 전의 희미한 기억에만 의존한 채, 이 곳을 건너 뛰었다면 많이 아쉬울 뻔했다. 다리를 다 건너니, 프라하 관광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구시가지에 도착했다. 유명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동안 무수히 많은 도시들을 돌아다녔지만, 프라하의 모습은 독보적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북유럽에서 머물다가, 동유럽으로 내려오니 날이 많이 풀려있었던 것도 한 몫 한 듯 했다. 날이 맑진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전혀 춥거나 쌀쌀하지도 않았다. 그런 포근함이 도시 전체에 깃들어 있었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 특히 동구권의 수많은 지역들을 황폐화시켰던 2차 세계대전 동안, 몇 안 되게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던 프라하였고, 이제 이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까지 지정되었다. 이런 걸 보면, 전쟁이 앗아갈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새삼 그 참혹함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한 도시의 모든 역사를 단 한 번에 지워버릴 수 있는 게 전쟁이고, 이는 그 문화를 음미할 후대의 수많은 사람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일이기도 하다.


구시가지의 한 음식점에 들어가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만큼 저렴하지는 않았으나, 오늘만큼은 반드시 스테이크를 먹겠다고 결심하고 있었으니 즐겁게 고기를 썰었다. 고기도 물론 맛있었지만, 사실 고기가 맛없기도 힘들긴 하겠고, 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필스너 생맥주였다. 우선 잔이 무척이나 독특했다. 단지, 또는 항아리 모양의 잔이었는데, 이 안에 담긴 맥주가 조금은 꿀처럼 보이기도 헀다. 어제는 캔으로 마셔서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생맥주로 마시니 훨씬 더 풍미가 강하게 느껴졌다. 조금은 쌉쌀하기도 하고. 내 취향이었다. 맥주를 한 잔 더 주문하여, 남은 감자 튀김과 같이 마셨다. 기분 좋은 낮술이었다. 한 도시의 대표적인 음식들을 모두 찾아 먹지는 못해도 유명한 술만큼은 꼭 한 잔씩은 마셔보려고 하는데, 그러면서 도시의 '맛'이 구분되는 게 꽤 즐거운 일이다. 이전에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다가, 아마 <말하다>라는 책이었던 같은데, 책 내용 중에 '오감으로 글쓰기'라는 걸 발견했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감각은 주로 시각으로 한정되어 있고, 오감을 모두 활용하여 사물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다보면 훨씬 더 깊고 생생하게 그때의 경험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작가는 말했다. 이것이 감성 근육을 키우는 일이라던가. 북유럽의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에서 옆에 쌓인 눈을 맛보았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서로 미묘하게 다른 맥주들의 맛과 향은, 다녀온 도시들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기억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맛있었던 맥주
언덕위에서
전망이 멋진 스타벅스
구시가지의 경관들

식사를 마치고는 구시가지의 언덕을 따라 천천히 거닐었다. 맥주를 두 잔이나 마시고 오르게 된 뜻밖의 '등산'에 조금 헥헥거리기도 했으나, 이렇게 높을 줄은 정말 몰랐기도 했고, 어쨌든, 언덕에 올라 밑에 내려다보이는 프라하 시가지의 모습 역시 꽤 멋졌다. 참, 사랑스러운 도시였다. 조금 더 생생히 기억하고 싶어, 주변의 냄새를 깊게 마셔보기도 했다. 음, 근처 레스토랑의 고기 냄새가 조금 느껴졌다. 약간의 취기가 오른 상태가, 그게 오히려 감상을 더해주는 듯했다.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는 게 분명 쉽지만은 않고, 때로는 그 모든 과정이 지리멸렬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여행을 미워할 수 없느 건 바로 이렇게 기막힌 순간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다른 쪽의 언덕을 역시 천천히 걸어내려오니, 뜻밖에도 숙소로 가는 길과 연결이 되었다. 어제의 이동으로 인한 피로가 아직은 다소 남아있었고, 어차피 내일도 이곳에 머무를테니 오늘은 이쯤에서 관광을 마무리하자고 결론 짓고 숙소로 바로 돌아왔다. 약간의 피로함만 있는 정도인 줄 알았는데,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눕자마자 두 시간 정도를 푹 자버렸다. 프라하에서 2박이 아닌 3박을 하게 된 게 참 다행이었다. 석양과 일몰은 내일 보면 되겠지. 프라하가 이렇게나 매력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3일의 일정들 중 하루는 근교로 다녀올까 싶기도 했는데, 내일도 그냥 이렇게 여기저기 걸어다녀도 괜찮을 듯하다. 오늘도 꽤 많이 걸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가보지 못 한 곳들이 많이 남아있다. 생각보다, 프라하는 은근히 큰 도시다.


어차피 관광을 할 순 없으니, 침대에 누워 <뷰티 인사이드>를 또, 보았다. 오늘 다녀온 곳을 영화로 보니 또 새롭게 느껴졌다. 이전에 파리를 여행하며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OST를 들으며 상당히 감회가 새로웠던 적이 있었는데, 프라하의 <뷰티 인사이드>도 그와 비슷한 감상을 불러 일으키는 중이다. 그 둘의 재회만큼이나, 오늘 프라하와 나의 12년 만의 재회 역시도 참 뭉클하고도 따스했던 하루였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당연하게도, <뷰티 인사이드>의 OST였던 The Soundtrack Kings의 '재회'다. 이제와 보니, 영화 <아가씨>의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에 참여했던 뮤지션이기도 하다. 최근 '김혜리의 필름클럽'이란 팟캐스트를 즐겨 들으며 영화 음악에 대한 관심을 조금씩 가져보고 있는 중인데, 아마도 이들이 이름을 선명히 기억하게 될 첫 영화 음악가가 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