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슬로베니아 피란 (2016~2017 세계 여행)
잃어서는 안 되는 것
여행을 하며 잃어버려도 괜찮은 건 정말 없다. 고리타분한 소리겠지만, 다들 나름대로의 쓰임이 있다. 당장 펜 하나만 사라져도 꽤나 많은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다. 한국에서부터 여행에 필요한 것들 만을 골라왔으니, 정확하게 기억해낼 수는 없지만 분명 그때 선별 기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지품의 중요도나 우선 순위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모든 짐을 아침 저녁으로 검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반드시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들을 위주로 챙기게 된다. 여권, 지갑, 노트북 등이 당연히 최우선이다. 셋 중 하나라도 없어진다면, 모든 일정에 제동이 걸릴 정도로 큰 문제가 발생할 게 뻔하다. 그래서 여행이 80일을 넘어가는 이 순간에도 틈만 나면 이들이 내 주위에 잘 있는 지부터 몇 번 씩 확인한다. 내 신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가장 적은 물품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딱 하나만,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딱 하나만 고르고 다른 모든 걸 버려야 한다면, 나는 여행동안 찍은 사진들이 저장되어 있는 하드디스크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 잘 찍은 사진들도 아니지만, 여기에는 이 여행의 총체가 담겨있다. 내 삶에 이런 여행이 있었다는 걸 증거할 수 있는 기록들이다. 그 기록들을 자꾸 꺼내보며 이 날들의 기억을 떠올려 보고, 이 기억은 여생의 여비가 된다.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들 중에,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란 일본 영화가 있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주인공에게, 스스로를 악마라 부르는 한 사내가 찾아온다. 그는 주인공에게 거래 하나를 제안한다. 세상에서 굳이 필요없어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지우면, 그 대신 하루씩을 더 살게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제거된 건 '전화'였다. '전화'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옛 여자친구를 이어주었던 매개체였다. 이것이 사라지자, 그녀는 주인공을, 또 그와 함께한 시간을 잊는다. 이런 형태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영화였는데,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우리는 결국 '한 줌 추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란 느낌까지 받게 되었다. 주인공에게 추가된 '하루'는, 호흡과 생존의 의미로서의 '하루'였을 뿐이었다. 그건 그가 살아가는, 혹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하루였기도 했다. 살아짐과 사라짐 사이에는, 그 발음에서 보듯 큰 차이가 없다. 잔존하는 호흡에 삶의 이유와 생기를 불어 넣는 건 추억의 몫이다. 하드디스크 안에는, 분명 언젠가 내 삶의 화양연화였다고 말하게 될 이 여행의 모든 게 담겨있다. 단순한 사진들이 아니다. 그 사진들을 보며, 나는 어떤 도시에서 어떻게 지냈고, 또 다른 곳으로는 무엇을 타고 이동했는지, 그리고 그때의 기분은 어땠는지 반추해볼 수 있다. 그러니 하드디스크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하드디스크의 소중함이, 노트북이나 여권, 혹은 지갑의 그것을 초월한 순간이 얼마 전에 있었다. 내가 지금 내 인생의 화양연화를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그때였다. 지금과 비슷한 여행은 언젠가 다시 가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여행은, 영영 할 수 없다. 모든 물리적 조건이 동일하게 설정되어도, 지금의 마음과 정신까지 복원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 중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 이 여행이 될 거라는, 그런 마음이 종종 든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는 여행을 하다가, 이 디스크를 백업할 무언가가 없다는 게 갑자기 꽤 두렵고도 무섭게 느껴졌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여행 전체를 상실해버리는 듯한 아찔함이 들었다. 결국 그 날 저녁에 바로 클라우드 유료 계정을 하나 개설했다. 느려터진 와이파이 때문에 모든 사진들을 전부 업로드하지는 못 하고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안심은 된다. 지금이라고 사진 찍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건 아니지만, 여행 초기의 사진들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한심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는 그렇게 초창기의 어리숙하고 어설픈 맛이 있다. 사진만 어설펐던 게 아니라, 나 자신도 무척이나 서툴렀다. 아주 사소한 것들에도 괜히 바보같이 긴장하고, 걱정하고, 또 굉장히 자주 잘못 짚기도 했다. 그런 순간들을 의연하게 대처해왔다고 믿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열심히 의연한 척 했을 뿐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주 성숙하고 어른스러우며, 발생하는 모든 일들에 탄력적이면서도 과감하게 결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건 역시 아니다. 자그레브에서 출발한 버스는 슬로베니아와의 국경 지대에서 검문 때문이지 꽤 오랜 시간 정차했고, 그러다보니 슬로베니아의 수도 루블랴나에서 예약된 다음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여유를 감안하지 않고 버스를 예약했던 것도 아니기에 더 화가 났다. 혹시라도 버스가 연착될 걸 대비하여, 꽤 충분한 시간을 두고 환승할 수 있는 일정을 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전의 정차 때문에 결국 뒷 버스에 탑승하지 못했다. 급하게 열차 티켓을 사서 코페르로 간 다음, 그 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최종 목적지인 피란에 도착했다. 돈도 아까웠지만, 우선 무거운 짐을 이끌고 환승을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불쾌했다. 두 시간이나 더 소요된 것도 상당히 짜증나기는 했다. 여행은 이런 면에서도 인생과 참 닮아 있다. 성실히 노력한다고, 또 최선을 다한다고 하여 모든 게 이루어지지는 않지 않나. 공부도, 연애도 그렇고, 여행도 마찬가지다. 치밀하다시피 계획을 해놓아도, 이런 변수가 발생하면 아무런 도리가 없어진다. 할 수 있는 건, 입에 담아도 될 만한 말들과, 입에 담지 못 할 말들을 모두 입에 담아내는 것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무슨 욕인들 못 하리. 슬로베니아 최서단의 피란. 피란이라니. 피난도 아니고. 어쩐지 이름부터 조금 불길하더라. 극심히 짜증나는 순간에도, 이런 해학과 유머는 잃지 않아야 여행을 미워하지는 않을 수 있게 된다.
아주 검은 세상에 버스가 도착했다. 그 검은 것들이 죄다 바다라는 사실로부터 묵직한 고독이 풍겨왔다. 짠내가 나는 걸 보니, 바다가 맞는 듯했다. 슬로베니아의 피란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해있다. 그 때문인지 지도상에서는 베네치아와 양 꼭짓점에서 아드리아해를 품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다. 이렇게 대놓고 나 바닷가입니다, 라며 스스로를 열심히 증명하는 도시도 또 참 오랜만이다. 영국 본머스의 밤바다도 떠올랐다. 피란에서의 날이 밝을 때의 모습이 참 궁금해졌다. 물론 나는 날이 밝은 줄도 모르고 늦게까지 푹 자겠지만. 운 좋게, 그리 나쁘지 않은 가격에 여행 중 최고의 숙소를 이용하게 되었다. 아파트인데, 혼자 쓰기에는 다소 민망하고도 미안할 정도로 좋다. 근처 마트에서 만두와 소시지, 그리고 슬로베니아식 하몽과 바게트를 사왔다. 와인 한 병, 그리고 맥주 몇 캔과 함께. 바닷가인 피란은 관광, 또는 휴양으로 꽤 유명한 도시다. 곧 순례길을 떠나야 하는 입장에서, 이곳에서는 24시간 내내 취해있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왔다. 소시지를 데치고, 만두를 삶았다. 물만두를 기대했지만, 밀가루 맛이 너무 강했다. 근처에 한인마트라도 있으면 라면을 하나 사서 같이 끓여먹으면 딱일텐데, 그럴 수는 없겠고. 소시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 오랜 시간 여행을 다니며 스스로 차려먹은 식사는 손에 꼽는 수준인데, 오늘 덕분에 손가락 하나는 더 꼽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슬로베니아 하몽이 나름대로 괜찮다. 짭조름한 게, 와인 안주로 딱이다. 이곳의 와인이라고 슈퍼마켓 주인이 추천해줘서, 게다가 가격도 아주 싼 편이라 사 왔는데, 향이 나쁘지 않다. 요즘에는 내내 맥주만 마셨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마시는 와인이 맛있다. 이 정도 가격이면, 내일 오후에는 햇살이 내리쬐는 바다를 바라보며 와인을 마실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쩐지 설레는 계획이다. 여행을 굳이 휴양지로 떠나는 사람들을 그 동안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왜냐하면 쉴 것이면 그냥 집에 있지 뭘 돈을 내고 쉬나 싶기도 했고. 하지만 여길 오니 그 마음을 조금 헤아려볼 수 있을 듯하다. 와인과 하몽 덕분에 입에 담지 못 할 말들도 서슴치 않고 입 밖에 내뱉었던 아까의 분노가 많이 가라앉게 되었다. 정말 별 소리를 다 했던 것 같은데.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옆집 남자의 '연서'다. 듣고 있으면 괜히 울컥하게 되는 지점들이 꽤나 있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