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역시나 아침에 일찍 눈을 떴다. 어제 좀 늦게 잤다. 새벽 2시 반쯤 잔 거 같다. 4시쯤 옆 침대에 중훈이가 들어와 미친듯이 코를 골기 시작했다. 잠이 깨버려서 1시간쯤 뒤척거리다 안 되겠다 싶어 1층으로 피난을 갔다. 1층 거실에는 충배형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30분쯤 누워있다 에잇하고 다시 3층으로 올라오니 코를 좀 덜 골고 있어 잠이 살짝 들었는데 7시쯤이 되니 옆집에서 공사를 한다고 쿵쾅쿵쾅 너무 시끄러웠다. 그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8시쯤 넘은 거 같다.
기선이와 함께 푸짐하게 아침을 먹고 어제 알게 된 동갑내기 쇼핑몰 사장님 선혜와 베트남 커피를 마시러 갔다. 베트남에서 마신 맛 그대로는 아니지만 나름 맛있었다.
조금 쉬다 수지와 점심 약속이 있어 수지 일하는 곳 바로 맞은편에 있는 유명한 끈적이 국수집으로 갔다. 아침을 많이 먹고 커피도 큰 사이즈로 마셔서 배가 불렀지만 일단 약속이니까 갔다. 선혜도 같이 갔다.
선혜와 나는 배불러서 아무것도 안 시키고 수지만 국수를 시켜서 먹었다.
밥을 먹고 선혜랑 미얀마 대사관으로 갔다. 5월 방콕의 한낮은 살인적이게 덥다. 한발자국 땔 때마다 땀이 주룩주룩 흐른다. 같이 가자고 한 선혜한테 미안하다. 3시반부터 4시반까지 딱 한시간 비자 픽업시간이라 3시 50분쯤 도착했다. 대사관 비자신청장 안은 더 덥다. 에어컨도 없는데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어 밖으로까지 줄이 나올 정도 였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선혜한테는 밖에 시원한 그늘 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30분쯤 줄을 서서 드디어 미얀마 비자를 받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니 거의 6시가 다 됐다. 드디어 내일이면 태국을 떠나는구나. 설레기도 하지만 이번엔 아쉬운 맘이 더 크다. 역시 사람들 때문인가 보다. 마지막으로 카오산으로 가서 공항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아침 7시 15분 비행기인데 4시, 6시 밖에 없단다. 하는 수없이 4시 버스를 예약했다. 카오산에 간 김에 사고 싶었던 바지도 사고 헤어 밴드도 하나 더 샀다.
선혜와 수지랑 같이 맥주 한잔하러 갔다. 듣기 좋은 라이브 음악이 나오는 분위기 좋은 곳에 자리잡고 앉았다. 산 미구엘 큰 병 하나가 89바트라서 한 병씩 마셨다. 바쁘고 유난히 더웠던 하루의 피로가 싸악 사라지는 것 같다. 대화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선혜보다 대부분 수지랑 이야기했던 것 같다.
자리를 옮기자고 해서 람부뜨리에 있는 노점 트럭에 작은 바를 만들어 놓은 곳으로 갔다. 롱아일랜드 티가 80바트 밖에 안한다. 한국이랑 호주는 엄청 비싼데.. 술이 들어가니 갑자기 피곤해져 멍해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숙소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4시 차니까 3시반에 나가기로 해서 그냥 밤새고 가기로 결심했다.
수지. 내가 싫어하는 전형적인 공주과다. 이것저것 다 싫다 그러고 투덜투덜거리고 근데 모르겠다. 그런데 밉지가 않다. 착하고 순수하고 잘 웃는다. 3시반까지 수지랑 내 침대 옆에서 이런저런 얘기하다 짐을 챙겨 나왔다. 1층 거실에는 기선이랑 유나누나랑 동혁이형까지 안자고 있었다.
혼자 외롭지 않게 공항버스 픽업장소까지 같이 가주었다. 고맙다. 누가보면 미얀마에 몇 달 있다 오는 줄 알겠다. 2주만 있다 다시 올껀데.
픽업오토바이를 타고 새벽 4시에 잠도 안자고 여기까지 나와준 사람들에게 팔을 있는 힘껏 휘저으며 잘 있으라고 고맙다고 말하고 픽업버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픽업버스에 타자마자 기절해서 눈 뜨니 내리란다. 비몽사몽으로 버스에서 내려 편의점에서 캔커피 한잔을 사서 조금만 더 버티자고 다짐하고 공항 수속을 간신히 마치고 미얀마 양곤행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여기서 잠들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눈을 부릅뜨고 버텼다. 그리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립겠지. 뭐 금방 다시 올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