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의 첫날밤

양곤

by nelly park

어제 밤을 새서 피곤해져 호카이네서 낮잠을 잤다. 아까 마신 커피에 카페인이 거의 없나 보다.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눈을 뜨니 3시간이나 잤다. 자고 일어나니 호카이의 친구들이 와 있다. 초이초이라는 친구와 이름이 어려워 잘 기억이 안 나는 그 친구. 잠이 떨 깨서 멍하게 앉아 있으니 셋이서 조심히 나를 쳐다본다. 조심히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 친구들도 호카이와 함께 한국어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단다. 그래서 한국어로 인사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로 말하는 것이 처음이라 뭐가 쉬운 단어인지 잘 모르겠지만 최대한 천천히 풀어서 얘기했다. 그들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다. 나를 필요이상으로 어려워하는 것이 느껴진다. 한국말로 더듬더듬 나에게 말을 걸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내가 더워 보이면 부채도 부쳐주고 내 물컵이 비면 계속해서 물을 떠왔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해도 소용없다.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지만 한국인을 만난 것도 처음이고 한국인과 한국어로 얘기한 것도 처음인 것 같다.


“미얀마에서 어디에 가고 싶어요?”


초이초이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음 나도 몰라요. 다 좋아요. 미얀마 다 좋아요”


셋이서 미얀마어로 짧게 고민하더니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구경을 가기로 했다. 시내라 그런지 차도 많고 복잡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번쩍번쩍 세련되고 큰 건물은 안 보인다. 이것이 미얀마의 매력이 아닐까. 시간이 멈춘듯한 이 곳.


아침에 양곤에 도착해서부터 계속 그랬지만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가던 길 멈추고 쳐다보기도 하고 흠칫 놀라기도 하고 나를 지나치고도 고개를 돌리고 계속 쳐다보면서 걷기도 한다. 이 나라는 아직 외국인이 많이 없나 보다. 내 옷차림과 머리스타일이 좀 요란한 것도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걸어 다니며 구경하고 나니 조금 피곤하기도 하고 저녁 먹을 때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영화를 보려고 극장으로 가기로 했다. 할리우드 영화를 아무거나 봐도 영어니까 괜찮겠지 하고 극장 앞에 갔더니 시간표가 이상하다. 영화를 2시간에 하나씩 상영한다. 하루에 총 네 번 상영한다.


“미얀마에서는 영화 하루 네 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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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어쩔 수 없지. 택시타고 그냥 다시 집으로 왔다. 흘린 땀을 시원하게 씻고 선풍기 앞에서 쉬다 날이 점점 어두워져 맥주 한잔하러 나갔다.


“술 좋아해요? 맥주? 미얀마 술 있어요?”


“미얀마 비어 좋아요. 너무 맛있어요”


초록색 병에 예쁜 로고 디자인의 미얀마 비어. 쓰지 않고 청량한 맛이다. 정말 맛있다. 이것저것 미얀마식 안주도 시켰다. 모든 음식이 다 맛있다. 그런데 그 음식들 이름을 다 물어봤는데 너무 길기도 하고 어려워서 기억이 도저히 안난다. 적어 놓을걸 그랬다.


여기서도 사람들이 쳐다보기는 마찬가지다. 이 세 친구들은 한국인인 나와 같은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은근히 자랑스러운 눈치다.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불편한 정도로 나에게 잘해준다. 술잔이 비면 두 손으로 너무 공손하게 따라주고 한국어학당에서 배웠는지 고개를 돌리고 술을 마신다.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술을 한참 마시는데 모든 전구가 픽 하고 꺼지더니 갑자기 정전이 돼서 온 세상이 시꺼매졌다. 가로등도 없고 간판에 불도 반짝거리지 않는 동네라 한 순간에 어둠의 도시가 되었다. 옆에 있는 친구들 얼굴도 잘 안 보인다. 나는 너무 놀랬지만 항상 있는 일이라는 듯이 점원이 오더니 맥주 컵을 뒤집어 그 위에 촛농을 조금 떨어뜨리고 양초를 그 위에 세워 고정시켰다. 이런 정전이 흔한 일인가 보다. 촛농으로 온 테이블이 밝아지니 더 분위기 있다.


그렇게 양곤에서의 멋진 첫날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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